글쓰기가 너무 재밌다. 왜 이걸 이제야 알았나 억울한 마음이 드는 동시에 지금이라도 알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가슴을 쓸어내린다. 이 나이에 이렇듯 즐겁고 신나는 일을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그 일이 몇 년째 질리지도 않는다니! 아무래도 여생을 함께할 놀이를 찾아버린 것 같다.
이런 기쁨을 숨기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숨길 마음도 없지만, 재채기나 사랑처럼 숨길 수도 없다. 만나는 사람마다 글을 만나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그저 기쁨이 줄줄 새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런 나를 보고 지인들은 내가 글쓰기 얘기만 해도 눈이 초롱초롱해진단다. 보진 못 했지만, 거울 속에 내 눈은 아마도 별처럼 빛나고 있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뭐에 관해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내 경우는 쓸 게 너무 많아 문제였다. 곳곳에 글감이 널려 있었다. 그 글감을 줍지 않는 일은, 그것들을 글로 써내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처럼 느껴질 정도로.
예를 들자면 카페에서 ’친애하는 스토커’라는 닉네임을 보고 착한 스토커의 사랑 이야기를 쓰고 ’차트를 달리는 남자’에서 예지능력이 있는 소년을 보고 초능력을 가진 소년이 자라 카페 사장님으로 숨어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쓰는 식이다.
글을 쓰기 시작하니 밋밋한 일상 속, 보고 듣는 모든 것이 흥미로웠다. 소설은 상상력을 키워나갈 수 있게 해줬고, 에세이는 내 삶을 정리하는 수단이었다.
쓸모를 떠나서(아니 어쩌면 더 큰 유용이 되겠지만) 글을 쓸 때 내가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소설 속에서 나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되고 에세이 속에서는 나와 세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관조자가 된다. 자주 내 상상력이 어디까지 뻗어 나갈 수 있는지 도전해보고 싶어지기도 한다.
소소하게는 종이 위에서 연필이 사각거리는 느낌을 좋아한다. 보통 노트북으로 글을 쓰지만, 소설 구상을 할 땐 종이와 연필이 더 좋다. 육아와 가사로부터 떨어져 나온 늦은 밤이나 새벽에 2~3시간씩 한 자리에서 글을 써내기도 한다. 그럴 밤엔 뇌가 각성이라도 되었는지 다시 잠들기 어렵다. 그러나 연필로 종이 위를 사각거리며 하나의 세계를 그리고, 달각이는 자판을 두드려 그 세계를 구체화하는 게 큰 즐거움이다.
물론 처음부터 이 일이 이렇듯 순조로웠던 건 아니다. 가장 큰 어려움은 당연하게도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란 사람은 ’창의성‘ 이란 말만 들어도 자라처럼 목부터 쑥 들어가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글을 쓰기 위해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 땐 실제 머리가 아팠다. 지금껏 써보지 않은 뇌를 써야 하니까 오죽했을까? 다행인 점은 이런 것도 하다 보면 적응하고 또 나아진다는 사실.
나의 경우 글과 러닝을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다. 그래서 초반에 달리는 동안 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었다. 이때 쓰고 있는 소설을 떠올리는 건 내가 만든 세계의 문을 두드리는 행위. 나는 매번 기꺼이 그 세계 속으로 들어갔다.
그것은 내가 상상하기 이전엔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이 세상 어딘가에 꼭 존재할 것 같은 믿음이었다. 주인공들은 마지막으로 상상이 멈춘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내가 다음 이야기를 이어가길 바라면서. 그럴 때 나는 어떤 도의적 책임감마저 느낀다. 당연하게도 더 빨리 구상을 끝내고 더 잘 쓰고 싶은 마음에 몸이 달았다.
이 모든 일이 좋기만 하면 질릴 것이고, 어렵기만 하면 포기를 할 텐데 이 일은 어렵고 동시에 재밌다. 그게 중독적이다! 그러니 힘을 내는 어깨도, 글을 써 내려가는 손끝이 무거워져도 계속 쓰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