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설을 다 써놨다 해도 생각보다 많은 과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책을 출간하기 위한 퇴고는 그 수준이 달랐다. 시작도 하기 전부터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글 앞에서 망연자실하다가 겨우 시작한 퇴고는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나의 경우 글을 다 쓰면 두 단계의 퇴고를 한다. 하나는 처음부터 차근히 읽으며 문맥을 매끄럽게 수정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아마 10번을 봐도 매번 고칠 단어와 문장 그리고 문단이 눈에 띌 것이다. 어쩌면 플로베르가 주장하는 ‘일물일어설’은 퇴고에 있어 정말 맞는 소리일지 모른다. 대상에 대한 적확한 단어 하나만이 존재한다는 주장인데, 퇴고는 그걸 찾는 과정이기도 할 테니까.
이후엔 한글 프로그램에서 제공하는 맞춤법 검사/교정을 사용한다. 의외로 이 과정을 거치지 않는 사람이 많은 데 꼭 사용하시길. 단축키 F8을 누르면 맞춤법을 검사 후 수정할 수 있다. 참고로 내 글에서는 맞춤법보다 띄어쓰기 수정이 많은 편이다.
물론 이렇게 검사를 해도 오·탈자가 나오는 경우는 흔하다. 절대 내 눈에는 보이지 않던 오·탈자가 꼭 타인의 눈에만 띄고 내 눈에는 출간이 되어서야 보인다는 사실. 그럴 때마다 이미 출간된 많은 책에서도 오·탈자가 있더라며 궁핍한 위로를 삼킨다.
다음은 전체적으로 글을 보고 수정하는 것인데 이게 진짜 퇴고고 어려운 부분이다. 한 소설가가 글쓰기는 무조건 즐겁다고 말씀하시기에 이게 뭔소린고? 했더니 그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다음이었다. 쓰는 건 즐겁고, 퇴고는 어렵다고. 인정, 大 인정!
구조를 보는 눈을 가져야 이런 퇴고가 가능하다. 일부 문단의 위치를 바꾸거나 어떤 부분은 통째로 드러낸다. 때로는 전에 없던 새로운 문장이나 문단을 써넣기도 한다. 어떤 작가는 몇 년간 쓴 글을 버리고 다시 쓰기도 한다.
적당히 떨어져서 글을 전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객관적인 시선이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내가 쓴 글에 너무나 쉽게 감정이 동기화된다. 나는 이런 관점을 탈피하기 위해 약간 흐린 눈을 한다. 매직아이처럼. 에세이는 그나마 이제 이 눈이 생길까 말까 하지만 소설의 경우는 과연 몇 년 안에 이게 가능할까 싶기도 하다.
퇴고할 때마다 매번 깨닫는다. 아! 글은 처음부터 잘 써야 하는구나! 이후에는 그야말로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살피는 정도지 내 경험상 소설은 구조 자체를 흔드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건 어쩌면 처음부터 새로운 글을 써야 할 정도로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한 번 활자화된 글을 전혀 새로운 무드(mood)로 퇴고한다는 건 웬만한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할 것 같다.
퇴고와 관련된 이야기 하나 더. 가끔 글을 쓰다 ‘신이시여, 정년 이 문장을 제가 썼습니까?’ 싶은 (주관적) 명문장이 탄생한다. 이게 또 글 쓰는 맛이다. 그런데 이런 문장이야말로 퇴고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경우가 많단다. 내 눈엔 멋져 보이지만, 오히려 문맥상 튀는 경우라고. 포기하는 건 내키지 않지만, 과감히 삭제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단호함을 발휘할 때 살짝 느껴지는 만족감이 있다는 건 안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