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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ra Seed Aug 17. 2023

43살, 유럽에서 대학원 다니기

다시 학생으로, Day 1  

2021년 9월 6일, 수업 첫날.

설렘과 긴장감에 한숨도 못 자고 새벽같이 일어났다.

얼마나 기다려 온 날인가!

집 앞에서 2번 트램을 타고 부다페스트 시내에 있는 학교로 향하는 길에 감정이 너울 쳤다.

 

수백 번, 수만 번 상상해 왔던 유학생활이 막상 시작된다고 생각하니, 엄청나게 흔들렸던 콜라의 뚜껑을 따는 것처럼, 내 감정도 용암처럼 폭발했다. 극도의 흥분, 설렘, 걱정, 긴장이 뒤범벅된 채, '이거 실화냐'를 자문하며 학교로 갔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강의를 7년을 했다. 대학 강단에 서는 것이 더 익숙했던 삶에 마치 영화처럼 내 시계는 거꾸로 가기 시작했다.  일찍 도착해, 학교 앞 카페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수업 10분 전 학교에 도착했다.

 

'뭐, 별일 있겠어. 그냥 수업이나 듣고 가면 되지... 다 잘 될 거야.
 괜히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아야지. 곧 익숙해지겠지.'



강의실은 메인빌딩 B137호.

학교지도를 보면서 메인빌딩 위치를 확인하는데, 건물 어디에도 '메인 빌딩'이라는 간판이 없었다.

대충 가장 큰 건물이 메인빌딩이 아니겠는가. 지도의 위치랑도 동일한 곳에 가장 큰 건물이 있어 들어갔다.


'오잉? 어디가 일층이지? 지하층은 어디지?????'


이때까지만 해도 설마, 멍청이 오브 멍청이가 아닌 이상 누가 강의실을 못 찾을까 싶었다. 초등학생도 아니고 강의실을 못 찾는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인가 싶지 않은가? 380년이라는 역사를 증명하듯, 학교는 낡았다. 전형적인 유럽식 ㅁ자 구조였다. 외부에서는 작아 보이지만, 일단 안에 들어오면 중앙 안뜰을 중심으로 된 미음자 구조의 웅장한 건물에 기가 죽는다.


일단, 건물 입구에 들어가면 반층 정도 올라가는 계단이 나오고  비로소 그  계단을 올라가야 '층'이 시작되는데, 또 그 계단 아래쪽으로 학교 전기 설비, 시설 등을 다루는 지하 창고 같은 곳이 보였다.  

처음에는 대충 ㅁ자 구조이니, 삥~돌다 보면 제자리로 오겠지 싶어서 무작정 걸어가면서 생각했다. '유럽에서는 1층이 0층이니 여기가 0층인가? 아니면 반층 올라왔으니 여기가 1층인가?' 애석하게도 강의실에는 층수가 표기되어 있지 않았고, 연결되어 있으리라 믿었던 ㅁ자 구조의 건물에서 막다른 길을 만났다. 다시 원점으로 허겁지겁 돌아와 보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당황해서 무작장 반대편으로 B137호를 찾아 나섰는데 또 막다른 길만 나왔을 뿐이다.


강의시작 2분 전.    

'오 마이갓. 망했다. 첫날부터 완전 망했다. 강의실도 못 찾다니....'


자책과 동시에 착해 보이는 헝가리 학생을 붙잡고 진짜 미안한데 내가 오늘 이 학교 첫 수업인데 B137호를 도저히 못 찾겠다고 징징거렸다. 전형적인 헝가리 학생(그들은 조금 차가워 보일 정도로 차분하고 내성적이다)이었던 그녀는 난리부르스를 치는 내 모습을 보고 수줍게 웃으면서 어색한 영어로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따라가면서, 나는 계속해서 '너도 수업이 있을 텐데. 진짜 미안하다. 너 나 때문에 수업 늦는 거 아니냐. 어쩌지... 진짜 미안해.'를 연발했다. 그런데 그녀가 나를 지하 창고로 데려가는 것이 아닌가? 설마 이런 지하 창고 같은 곳에 강의실이 존재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나는 덜컥 컵이 났다.


'설마 이런 곳에서 수업을 한다고? 이 건물 큰데, 이 큰 건물에 지상에도 강의실이 너무 많던데 왜 지하창고에서 수업을.....?" 내려가 보니, 지하 창고처럼 보였던 곳은 학교 카페테리아의 주방과 식품 창고가 보이는 곳이었고 조금 더 들어가 보면 강의실이 나왔다.


'헐!!!!! 이걸 누가 찾아? 그러니까 B가 basement floor 지하층이라는 말이었어? 그럼 강의 계획서에 제대로 표기를 하고 건물 어딘가에는 여기가 Basement floor라는 사인을 달아놓아야 하는 거 아니야???!!!!'


지하에서 한참을 들어가서 막 다른 곳에 B137호가 있었다. 문을 여니, 영화 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은 90년대 비디오방스러운 강의실에 몇몇 학생들이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2분 정도 늦었지만, 다행히 교수는 아직이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후들후들 강의실로 들어갔다. 다행히, 오리엔테이션때 안면을 터 놓은 동기 소피가 보여 옆에 앉아 아는 척을 했다.


"안녕, 소피. 잘 지냈어? 휴, 오 마이갓. 나 강의실 못 찾아서 한참 헤맸는데 너는 잘 찾았어? 이게 학교야 미로야?"
"오 마이갓, 켈리. 나도 길을 잃어서 한참 헤맸어.... 헝가리 학생이 데려다주지 못했으면 못 찾을 뻔했잖아. 문제는 다음번에 다시 찾아올 수 있을까야...."


소피와 이야기를 나누며 주변을 둘러봤다. 히잡은 쓴 친구, 인도식 영어, 전형적인 미국 서부 악센트 등등 전 세계에서 온 학생들이 각자의 악센트를 담은 영어로 소통하고 있었다. 국적은 다양했지만 그들에겐 나와는 다른 공통점이 있었다.


'어. 리. 다.'


앳된 그들을 얼굴에서는 싱싱함이 묻어났다.

그런 그들이 보고 있자니, 갑자기 나도 모르게 수그러든다. 많게는 나보다 20살은 어린 친구들이랑 수업을 들어야 하는데 잘 어울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급습했고 혹시 나이 많다고 왕따 당하는 거 아닌지 하는 불안함까지 찾아왔다.


아뿔싸!

중년에 유학을 오면서 A~Z까지 모든 것을 다 예측하고 준비해 왔지만, 교우관계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학교 가서 수업이나 듣고 공부나 하면 된다고만 생각했다. 이제, 급하게 오느냐 떨리는 다리외에 마음도 덜덜 떨렸다.


'원래 학교생활이 공부가 다가 아니지......... 어떡해.....

친구!!!!!! 맞아. 친구가 중요했어. 동기들이랑 잘 어울려야 하는데 어째. 큰일 났네.

내 나이 들으면 다 도망갈 텐데.... 혼자 쭈글이로 앉아서 수업만 듣고 가는 거 아니야? 아무도 나한테 수업 정보 공유 안 하고, 지들끼리 웃고 떠들고.. 나는 안 끼워주면 어쩌지....ㅠㅠ.... 이래서 나이 먹고 공부하는 게 힘든 거구나.'  


마침, 강의실 문이 열리고 교수가 들어왔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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