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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 방구석 주부 May 16. 2023

아내의 뜨개 모임

D+273 (may 1st 2023)

아내의 취미는 뜨개질이다. 처음엔 아내가 뜨개질을 한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뭔가 이유를 콕 짚어 말할 수는 없지만, 뜨개질과 아내는 서로 매치가 잘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냥 하는 수준이 아니라 제법 그럴듯하게 작품을 만들어내기까지 한다. 팬데믹 시절 아내가 잠깐 일을 쉴 때, 아이의 애착인형을 모두 뜨개질로 만들 정도였다. 곰 인형이나 토끼 인형 같은 것 정도는 하루 이틀이면 뚝딱이였다.


미국에 오고 나서 몇 달간은 아내가 다시 뜨개질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난 그 어렵다는 미국 박사 유학을 시작하는 아내가 미국에 가서 뜨개질을 할 시간이 있을 리 만무하다는 생각에, 코바늘과 실을 짐에 잔뜩 챙기는 아내에게 그럴 시간이 있을 것 같냐며 말리기까지 했다. 아니나 다를까 유학 초반 바쁜 학업에, 뜨개실과 코바늘은 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두 번째 학기에 접어들 때 즈음 아내의 뜨개 욕구를 자극하는 일이 생겼다.


우리가 다니는 한인 교회의 한 장로님께서 은퇴하신 어르신들을 위해 뜨개질 모임을 운영하고 계셨던 것이다! 아내는 그 정보를 알자마자 눈을 반짝였다. 월요일 오전 10시에 교회에서 모이는 모임이었는데, 마침 아내의 수업이나 출근 시간과는 겹치지 않았다. 아내는 내 동의도 없이 덜컥 모임에 나가겠다고 신나서 말해 버렸다. 


혼자 가지도 못하는 모임에 가겠다고 덜컥 약속해 버린 아내. 마음으로는 괘씸한데 미국에 올 때 한 약속이 발목을 잡는다.


‘내가 어디든 다 데려다줄 테니까 걱정 마!’


너무 호언장담 했다. 그렇게 나는 매주 월요일 오전, 아내를 교회에서 하는 뜨개질 모임에 데려다주어야 했다.


아내를 처음 모임에 데려다줄 때, 솔직히 두 가지 마음이 섞인 오묘한 마음이 된 채 길을 나섰다. ‘나는 아내의 취미 생활을 위해 라이드를 해 줄 정도로 다정한 남편이야’와 ‘내가 뜨개 모임까지 데려다줘야 하나’ 하는 마음이다. 뭔가 기분이 ‘찌뿌듯’했다. 모임에 나오시는 일흔이 훌쩍 넘으신 어르신들이 보시면 날 어떻게 생각하실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모두 기우였다.


모임에는 많은 어르신들이 참여하고 계셨는데, 많은 분들이 남편께서 데려다주셨다. 물론 모두 은퇴하신 분들이시지만, 그렇게 아내를 모임에 데려다주시는 분들이 신기하고 멋있었다. 또 데려다만 주고 가시는 게 아니라, 아내분이 모임을 하시는 동안 남편분들께서는 함께 탁구를 치기도 하시고, 몸이 불편한 분은 성경 필사를 하기도 하시면서 시간을 보내시다가, 함께 점심식사도 하셨다. 뭔가 ‘찌뿌듯’한 마음은 아직도 ‘옛날’ 사고방식에 갇힌 나 혼자의 내적 갈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아내만 모임에 데려다주고 집에 오지 않고, 교회에서 남자 장로님들, 집사님들과 담소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냈다. 


재미있었다. 미국에 오신 지 50년이 넘은 분들이 대부분이라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신기했다. 식사 시간도 즐거웠다. 초밥집을 운영하시는 집사님이 거하게 초밥롤을 준비해 오기도 하셨고, 멋진 솜씨의 밑반찬을 다들 준비해 오셔서 한국식 ‘포트락’ 파티가 되기도 했다. 아들 딸 뻘 되는 나와 아내를 무척이나 예뻐해 주신 것은 덤이다.


우리도 그냥 그렇게 예쁨 받기만 하고 얻어먹기만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어서 이번에 식사를 준비했다. 물론 요리 실력도 그다지 좋지 않은 데다 형편이 좋지도 않은 터라 무얼 준비할지 고민하다가, 소박하게 유부초밥과 소고기 멸치 주먹밥, 그리고 부추전을 준비했다. 유부초밥은 마트에서 파는 세트로 만들었고, 소고기 멸치 주먹밥은 불고기 양념 다진 쇠고기 볶음과 멸치 볶음을 이용해 만들었다. 부추전은 부추전 반죽을 와플팬에 눌러 구웠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렇게도 해 먹어요 하면서 대화의 주제가 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


모임 식사 시간에 음식을 내어 드리는데, 어르신 드시는 자리에 너무 퍽퍽한 음식만 준비한 게 아닌가 싶어 아차 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모든 분들이 맛있게 잘 드셔 주셨고, 칭찬도 아낌없이 해 주셨다. 와플팬에 구운 부추전도 훌륭한 대화 소재가 되었다. 식사시간 내내 쏟아지는 칭찬 세례에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모임이나 동호회 같은 곳에 나가는 것을 즐기지 않는 편이다. 여럿이 함께 모이다 보면 설화가 끊이지 않고 불필요한 오해가 생긴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여럿이 함께 관계를 맺는 동호회나 모임보다는 일대일로 관계를 맺는 편이다. 이런 나의 성향 때문에 처음에 아내의 뜨개 모임에 함께 나가는 것이 낯설고 어색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르신들의 모임이라는 사실에 혹시 우리 가정의 형편을 (여자가 일하고 남자가 주부인) 가부장적인 잣대로 지적질당하지는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들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 주셨다. 오히려 나 스스로 너무 선입견을 가지고 지레짐작하거나 경직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Photo by Tanaphong Toochind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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