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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 방구석 주부 Apr 20. 2023

40대 박사학생 가족이 미국 대학 축제를 즐기는 법

D+257 (apr 15th 2023)

아내가 다니는 대학교는 학구열로 유명한 대학교다. 특히 과학, 공학 분야, 그리고 경영 분야에서의 성과가 뛰어나고 대학원의 연구 성괴가 워낙 좋아 그 명성을 떨친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하나 있었으니, 공부 이외의 다른 생활에 대한 부분이 매우 부족하단 점이다. 


미국 대학을 다니는 것의 묘미는 학교 스포츠팀 응원, 수많은 굿즈 착용, 넓은 캠퍼스와 대학 주변의 다양하고 저렴한 먹거리 등을 떠올린다. 웬만한 미국의 종합 대학을 다니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들이다. 하지만 아내의 학교는 이런 것들이 거의 없다. 종합 대학 치고는 규모도 조금 작은 편이기도 하고, 특별히 학생들이 모일만 한 주변 먹자골목도 없다. 스포츠팀도 엘리트 스포츠팀이 아니어서 다른 학교와의 라이벌전 같은 것도 없다. 내가 대학이나 대학원을 다니는 것은 아니니 이런 콩고물에만 관심이 쏠렸는데, 나중에 알고서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었다.


그래도 한 가지 즐길거리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이 대학의 축제다. 봄을 맞아 열리는 이 학교의 축제는 각종 행사 외 즐길거리, 먹거리 등으로 유명하다. 대학의 축제라니. 뭐 한국에선 각 대학의 축제는 워낙 놀거리들이 많다고 하니 거기서 거기겠지 했다.


그런데 이 학교 축제에 특징이 하나 있었으니, 차일드 프랜들리, 펫 프랜들리라는 점이다. 사실 이 학교 축제만의 특징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학교의 축제라는 것이 아무래도 동문들의 홈커밍의 개념도 있어서, 그러다 보면 나이가 지긋이 드신 분들의 자녀들도 학교를 방문하게 된다. 그러면 그 어린이들도 즐길 거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다양한 행사를 개최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학교의 축제에서는 젊은 이십 대 들이 즐길 여러 가지 요소들 외에도 아주 어린 친구들까지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행사를 볼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차일드 프렌들리, 팻 프랜들리라는 말에 주말을 맞아 온 가족이 출동했다. 평소 같으면 아이와 함께 셋이 갔을 텐데 이번에는 반려견 디디까지 함께 학교를 방문했다. 사실 출발 할 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무엇을 즐길 수 있을지 잘 모르는 상태였다. 그냥 막연히 날씨도 좋은데 학교캠퍼스에서 망중한을 즐기다 올 생각이었다. 


사실 우리의 안일한 계획은 도착을 채 하지 못한 채로 무참히 깨져 버렸다. 반려견 디디가 차를 타는 30분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멀미를 해 버린 것이다. 우리는 오늘 힘든 하루가 될 거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학교애 도착하고는 더 놀랐다. 학교에 사람이 정말 많았다. 미국에 와서 이렇게 많은 사람을 한 공간에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조금 과정을 보태 자면 마치 롯데월드는 에버랜드에 온 느낌이랄까?  이 작은 시골 도시에 무슨 일이란 말인가!


캠퍼스애 들어서면서 걱정이 많았다. 아무리 펫 프랜들리, 차일드 프랜드릴라고 해도 대학 축제에 아이나 반려견이 즐길게 과연 있을까? 사람도 많으니 아주 고역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메웠다. 하지만 캠퍼스 안쪽으로 들어서자 이런 걱정은 차츰차츰 사라져 갔다. 


대학 축제의 현장, 젊은 친구들이 노는 곳에 다 늙은 아저씨나 어린이들이 뭘 하고 놀 수 있을까, 방해가 된다며 핀잔을 듣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던 게 사실이었는데, 정말 분위기가 내 생각과는 딴판이었다. 학교 광장의 잔디밭엔 카니발에서 볼 수 있는 이동형 놀이기구들이 가득 차 있었고, 다양한 푸드 트럭 외에도 아이들이라면 환장할 만한 ㅅㅎㅁ사탕, 슬러시, 아이스크림 등을 파는 거게들이 즐비했다. 오히려 이 축제에서 대학생들은 뭐 하고 노나 싶을 정도였다. 거의 모든 인파들은 가족단위의 사람들이었고, 나이 지긋이 드신 학교 동문 어른들, 가족들, 어린이들이 학교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처음인 쭈뼛쭈뼛 뭘 해야 할지 몰랐다. 멀미를 한 반려견 디디도 걱정이었다. 일단 벌써 뿔이 나려 하는 딸아이를 달래기 위해 슬러시 음료를 사려다가 한 시간을 줄 서야 했다. (인간적으로 이 사람들 진짜 일도 못했고, 그럼에도 천하태평이었다!) 아내와 난 이미 지친 데다 딸아이에게 대학 축재에 대한 좋은 추억을 남겨주는 것도 실패할 거란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안 그래도 아이는 어린이 활동도 안 하겠다, 구경도 더 안 하겠다며 몽니를 부렸다. 뭐 하는 곳인지도 모르고 온 곳, 와보니 사람만 많고, 자기가 먹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건 다 못하는 것들, 힘든 것들 투성이니, 왜 안 그렇겠는가. 그래도 설탕덩어리(!)인 슬러시 음료를 조금 먹이니 기운을 차렸는지, 함께 조금만 더 다녀 보겠단다. 어르고 달래며 캠퍼스를 조금 더 둘러보았다.


그러던 중 아이가 카니발 놀이기구 하나에 관심을 가졌다. 방글빙글 돌아가는 커다란 그네다. 높은기둥에 사방으로 여러 개의 그네가 달려 있고, 거기에 사람들이 앉으면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면서 회전하고, 그러면 그네가 원심력으로 점점 더 하늘로 뜨는 그런 놀이기구 말이다.


사실 이런 카니발 놀아기 구는 한국 사람들이 보면 섬뜩한 측면이 있다. 유명 놀이공원의 기구에 비하면 정말 초라하고 조악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전 규정이 제법 잘 갖춰져 있는 분야라서 안심할 수는 있다. 기구 한번 탑승에 3불이다. 그렇기 비싸지는 않다. 무제한은 20불이라고 하는데, 그렇게까지는 필요 없다. 티캣을 4정 사서 내가 아이와 2개 정도의 놀이기구를 같이 타기로 했다. 


어쩌면 아이에게는 성인 놀이기구 첫 탑승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롯데월드, 에버랜드의 유아용 놀기 기구를 타는 아이였는데, 새삼 아이가 컸다는 것을 실감한다. 놀이기구가 돌아가자, 처음에 아이는 조금 곱을 먹은 듯했다. 하지만 이내 평정심을 찾더니, 금방 즐기기 시작했다. 놀이기구가 도는 시간은 고작 2분 남짓. 아이는 소리도 지르고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기구를 즐기고 내려왔다. 그러더니 또 타자한다. 다른 것도 타보자 했는데 모두 싫단다. 결국 같은 놀이기구를 두 번 탔다. 그래도 아이의 함박웃음에 부모는 안도하며 뿌듯해한다. 


오전 열 시가 넘어 집에서 출발해, 집에 돌아온 시간은 세 시정도였다. 뭐 특별히 한 것도 없고, 축제의 구석구석을 다 둘러본 것도 아니었다. 그 유명하다는 '버기 레이스‘는 근처에도 못 갔다. 가끔은 정말 이럴 거면 여기까지 뭐 하러 왔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하지만 아이와 가족아 함께 나들이를 하면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나들이 목적지를 100% 다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의 함박웃음을 보는 것이 아닌가 싶다. 


Image Generated by Midjour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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