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국 방구석 주부 Apr 06. 2023

미국의 초등학교 픽쳐 데이와 필드 트립

D+242 (mar 31st 2022)

미국에서 아이가 초등학교 생활을 하면 한국과 다른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픽쳐 데이(사진 촬영일)다. 한국의 졸업앨범과 비슷한 ‘이어 북’(Year Book)을 위한 사진 촬영인데, 다른 점이 있다면 졸업 학년뿐 아니라 모든 학생이 매년 찍는다는 것이다. 가끔 교포 출신의 연예인들의 흑역사 사진은 바로 이 픽쳐데이 때 촬영한 이어 북 사진들이다.


과거에는 집집마다 카메라가 있었던 것이 아니어서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픽쳐데이가 처음 생겼다고 하며, 이어 북은 학교에 대한 추억을 기록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하는데, 모두 19세기부터 시작된 전통이라고 한다. 요즈음같이 일주일간 찍는 사진이 수백 장을 넘어가는데도, 아직도 픽쳐 데이의 전통을 이어가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쓸데없이 이런 미국 학교의 전통에 막연한 로망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딸아이의 픽쳐 데이가 다가오자 벌써 걱정 반 설렘 반이다. 미국 픽쳐 데이 특유의 사진의 질감이 있는데, 그런 사진 속의 아이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내가 경험하지 못한 미국 학교 특유의 분위기를 아이가 경험한다는 것이 흥분되기도 한다.


픽쳐 데이는 일 년에 두 번이어서, 이미 지난가을에 한 번 픽쳐 데이를 보냈다. 그때는 증명사진과 같은 사진을 찍었는데, 사실 사진 찍는다는 것을 나나 아내가 모두 잊어서 정말 하나도 신경 쓰지 않고 가서 머리도 옷도 완전 엉망진창이었다. 아마도 딸아이에게는 하나의 흑역사 사진이 생긴 것 같다. 사실 부모 눈에는 옷이나 머리 모양은 그렇게까지 신경 쓰이지 않는다. 다만 아이의 표정이 걸렸는데, 뭔가 엄청 시니컬하게 웃는 것이 참으로 희한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표정을 지었는지…


그래서 이번 픽쳐 데이에 아아에게 부탁한 단 한 가지는 제발 사진 찍을 때 웃으라는 것. 미국에서 증명사진 같은 사진을 보면 우리나라에서의 사진과는 다르게 이를 보이게 활짝 웃는 사진을 많이 볼 수 있는데, 난 우리 아이도 그렇게 사진을 찍었으면 했다. 아이의 대답은? ‘I’ll try.’ 건방진 녀석 같으니!


이번 픽쳐 데이엔 프로필 사진을 찍는다고 한다. 전신사진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반신도 나오는 사진이다 보니, 이번엔 의상도 중요하다. 픽쳐 데이를 겪으면서 새삼 딸아이가 컸다는 것을 느낀다. 좋은 의미는 아니다. 언제부터 입는 옷이며 머리 스타일에 신발까지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한다. 거기에 아직은 추운 날씨에 얇은 옷만을 고집하는 통에 아침만 되면 아주 시끄럽다. 그런데 픽쳐 데이엔 오죽하겠는가. 아주 사춘기 초입인 아이와의 실랑이가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다.


학교의 픽쳐 데이는 민간 서비스와 계약을 통해 진행되는데, 잘은 모르지만 아무래도 PTA(혹은 PFA)에서 결정해 진행하는 것 같다. 한국이었다면 비리니 뭐니 해서 되도록 민간 업체와 거래하지 않는 편인데, 여기서는 비교적 자유롭게 민간 업체와 계약하는 것 같다. 덕분에 사진의 퀄리티도 좋고 주문도 편리한 편이다. 사진 가격이 만만치는 않지만, 그래도 아이의 추억을 남기기 위해서 큰 사진과 작은 사진을 골고루 주문했다.


아이가 하교할 때 물어보니 그래도 제법 웃었다는 것 같다. 적어도 노력은 했다는. 사진, 보지도 않고 주문했는데, 어떻게 나왔을지 걱정이 크다.

Photo by Lumi W on Unsplash

바로 다음날은 필드 트립이다. 필드 트립은 그야말로 현장학습인데, 특징적인 것은 굉장히 지역의 문화와 역사에 기반한 현장 학습이 많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미국은 땅이 넓어서 우리나라의 경복궁이나 경주와 같이 모든 학생들이 똑같이 방문하는 현장학습 장소가 있을 수가 없다. 주로 도시와 마을 안에서 박물관이나 센터를 방문하거나, 조금 그 범위가 넓어지면 주 단위의 유적지를 방문하게 된다. 이번에 아이가 방문하는 곳은 지역 유명인의 이름을 딴 과학 센터다. 


지난 몇 년간의 팬데믹으로, 아이가 학교 밖의 어딘가를 방문하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미국에서도 3~4년 만의 외부 방문이라 한다. 학교에서 가정통신문을 보내왔는데, 학교의 요청은 도시락을 싸 오되, 먹고 나면 다 버릴 수 있도록 포장해 오라는 것이었다. 집에서 쓰는 통이나 도시락 통에 담아 오지 말고, 비닐이나 종이 포일, 그리고 쇼핑백등을 활용해 싸 오면 점심시간에 다 먹고 포장을 버릴 수 있게 말이다. 잘은 모르지만 아무래도 위생상의 안전 문제와 더불어, 아이들의 짐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버릴 수 있는 포장의 도시락 외에 평소에 학교 가는 것과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 똑같이 학교 버스로 등교, 하교를 한다. 책가방도 따로 싸지 않는다. 중요한 이동과 안전 문제는 학교에서 책임지기 때문에 많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안전 문제를 위해 학부모 봉사자를 지원받는데, 지원자가 너무 많아 우린 지원했는데도 잘렸다. 한국에서 학교 자원봉사는 말이 자원봉사지 강제 동원되는 경우가 많아 불만이 많았는데, 여기서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아이의 야외활동에 괜히 나도 들떴다. 가장 큰 고민은 도시락으로 무얼 쌀 것인가.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만약 한국에서처럼 도시락으로 김밥을 싼다면 한국 사람으로서 특징도 있고, 좋을 것 같았다. 아이도 좋아했다. 그래서 김밥 싸는 것으로 결정!


미국 소도시에 사는 우리 입장에서 큰 문제는 김밥을 쌀 재료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김밥을 싸는 데에 뭐 특별한 재료가 필요하겠나 싶지만, 생각보다 하나하나가 다 문제다. 김이나 밥은 문제가 아니다. 밥과 김은 한국인들뿐 아니라 일본인 중국인도 먹으니까. 그런데 그다음부터는 하나하나가 다 난관이다. 가장 흔한 단무지는 통 단무지만 판다. 사서 일일이 다 썰어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초보 주부인 나에게는 그렇게 쉽지 않다. 한국 맛살은 냉동으로만 판다. 뭔가 아쉽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김밥 햄도 구하기 어렵다. 워낙 인기가 없어서 스팸도 구하기 어렵다. (미국인들에게 스팸이 얼마나 혐오 음식인지는 최근 많이 알려졌다) 그 와중에 편식한다고 시금치나 당근은 잘 안 먹는다. 우엉은? 본 적도 없다.


재료가 너무 없어서 꼬마김밥을 말기로 했다. 아침부터 도시락으로 김밥을 싸려니 보통일이 아니다. 어젯밤에 밥이라도 미리 해 놓을걸. 아침부터 밥도 하고 김밥재료도 준비하려니 보통 일이 아니다. 김밥김을 1/4로 자르고 밥에 울퉁불퉁하게 자른 단무지, 달걀지단, 스팸 햄을 넣었다. 급한 맘에 싸다 보니 꼬마 김밥만 15개나 말았다. 사실 그렇게까지는 필요 없었는데. 하필 이날 따라 아내도 아침 일찍 학교 가고 없었다. 어쩌지?


일단 아이 도시락으로 싸고, 남은 김밥은 핑거푸드처럼 해서 버스 정류장에 가지고 나가 맛 보여주면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꼬마김밥이지만 일부러 잘게 썰어서 한입에 쏙 넣을 수 있도록 플레이팅을 해서 나갔다. 미국에선 초밥이나 마끼 같은 일본식 김밥류가 인기가 많으니 좋아하겠지 생각하면서.


그런데 의외로 인기가 없었다. 그야말로 아이들도 부모들도 아무도 손도 대지 않았다. 같은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는 한국인 엄마와 아이만 몇 개 집어 먹었을 뿐이다. 워낙 소도시고 백인 위주의 문화가 자리 잡은 곳이라서 외국 음식을 잘 즐기지 않는 것도 있고, 코리안 초밥이라 설명하니 초밥처럼 날생선이 들어간 것이라 생각해서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것도 있다고 한다. 캘리포니아에선 초밥이나 김밥 다들 환장하는데… 아쉽지만 덕분에 나와 아이만 아침을 든든히 챙겨 먹게 됐다.


아이는 현장학습에서 신나게 놀고 온 모양이다. 하루 온종일 있었던 일을 읊느라 정신이 없다. 김밥도 맛있게 먹었단다. 10줄이나 싸줘서 조금 걱정했는데, 8줄이나 먹었고, 남은 두줄은 포장이랑 같이 버리고 왔단다. 잘했다 칭찬해 줬다.


이제 다음 주면 스프링 브레이크다. 한국으로 치면 봄방학인데, 봄방학이 왔다는 것은 학년이 거의 마무리되고 있다는 뜻이다. 아이가 무사히 4학년을 마쳐가고 있다. 대견스럽다.


그런데 그나저나, 다음 주 내내 애가 집에 있는데, 이를 어쩌지?


표지 사진: Photo by Daniel Jericó on Unsplash

이전 05화 아침형 인간, 새벽형 인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