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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 방구석 주부 Mar 23. 2023

해외에서 아프면 서럽다?

D+226 (mar 15th 2023)

15년 전 이십 대 후반에 처음 미국으로 유학을 왔을 때, 감기에 걸리거나 배탈이 나는 등, 몸이 아픈 일이라도 있으면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보험 여부에 따라 의료비의 차이가 워낙 큰 미국의 특성상, 아파도 병원에 가기 힘든 것도 한몫을 하기도 했지만, 설사 병원에 간다 하더라도 몸이 어떻게 아픈지 설명하기도 어렵고 내가 어떤 치료를 받는지 잘 알기도 어려우니, 타지 생활을 하는 것을 여실히 느낀다고나 할까? 휴식을 취하기 위해 집에 홀로 누워 있다 보면 괜히 눈물도 나고 했다. 가족이 그립고 집이 그립고 한국의 의료제도가 그립고, 막 그랬다.


약 10년 전 삼십 대 초반에 결혼하고 첫 아이를 임신한 아내가 아팠을 때도 그랬다. 모든 환경이 낯설고 오롯이 남편인 나와 아내가 이 모든 상황을 이겨내야 하는 생황이 버거웠다. 작은 실수가 건강에 큰 영향을 줄까 봐, 가슴 졸이는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이 또한 타지에서 낯선 환경에서 아직은 어린 어른 둘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라 여기며 힘들게 힘들게 버텨냈던 기억들이다.


이런 기억들이 켜켜이 쌓여서일까? 해외에서 아프면 서럽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는 경우가 많다. 괜한 외로움이 몸속 깊이 파고들며 고통을 주는 듯하며, 늘 보는 풍경마저 생경한 느낌이 들며 이곳이 타지임을 자각하게 만든다. 괜히 병원에 가면 덤터기를 쓸 것 같아 불안하고, 두통을 타이레놀 한 알로 버티는 것이 서럽다. 


두 번째 미국 생활을 하는 지금은 어떨까?


마침 집안일을 하다가 허리를 삐끗했다. 통증이 극심하지는 않았지만, 청소기를 밀기 위해 허리를 숙이는 것이 불편할 만큼 활동이 어렵다. 허리가 아픈 것이 생각보다 고통은 극심하지만, 자세만 잘 잡아 누워있으면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상태의 간극이 심하다. 평소에 하던 수많은 활동들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다. 청소나 식사 준비, 빨래, 설거지는 물론이거니와, 글쓰기나 유튜브 영상 제작도 쉽지 않다. 책상에 앉아있기도 불편할 정도? 그런데 누워만 있으면 아무렇지도 않으니 사람 미칠 노릇이다.


그럼, 지금도 서러울까?


위에서 말한 대로 지금도 서러울라 치면 만만찮다. 허리가 아프면 정형외과를 가야 하지만, 다른 병원도 아닌 정형외과를 간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미국 현지 보험이 아닌 한국 보험사의 해외 체류자 보험에 가입해 있는 나로서는 먼저 큰 비용을 지급하고 환급받는 시스템을 감당하기 어렵다. 아내와 아이가 모두 학교에 가고 나만 홀로 누워 있어야 하는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따뜻한 한국의 아파트에서 보일러 틀어놓고 지지고 있겠지만, 지금은 스산한 웃풍 심한 미국 아파트에서 가스비 걱정에 차가운 이불을 끌어안고 누워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서러운 감정이 들지는 않는다.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도 허리가 삐끗했다고 병원에 가지는 않았다. 보험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아내가 회사에 가고 아이가 학교에 가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에서라도 아플 때는 혼자 누워 있는다. 한국 아파트가 웃풍은 없지만, 요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국에서도 뜨끈하게 보일러를 틀어 놓지는 못할 것만 같다. 10년 전, 15년 전처럼 똑같이 해외에서 아픈 건데, 대단히 서럽지는 않다. 왜 그럴까?


그때 내가 서러웠던 건 아직 유아기적인 보호받고 싶은 욕망이 채워지지 않아서가 아닐까? 이십 대 후반이라는 늦은 나이에 유학을 왔다고는 하지만 그전까지는 한 번도 집을 떠나 살아본 기억이 없다. 이십 대 후반이라는 나이 때도 부모의 보호 아래 살던 시기다. 그래서 아프면 부모의 보호를 받는다. 병원 가라는 잔소리와 어머니가 끓여주는 죽, 그리고 수시로 방에 들어와 상태를 확인하는 부모님. 이런 것들의 총합이 나에게 보호받고 싶은 욕망을 계속 가지게 한다.


갓 결혼한 삼십 대 초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소꿉장난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신혼 생활에서 임신과 출산, 육아는 차원을 벗어나는 일이다. 그전까지의 어른 행세를 하던 이십 대 삼십 대 초의 삶은 그야말로 어른 놀이를 하는 아이의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선택과 결정이 나의 삶 지축을 흔드는 경험을 처음 해보는 시기였다.


지금은 어떨까? 엄마라는, 아빠라는, 두 가장의 10년 생활이, 더 이상 우리가 보호받는 존재가 아닌 보호해야 하는 존재라는 자각에 다다른다. 나 혼자만 생각한다면 아픈 것이 서럽다. 타지 생활에서 고생하는 것도 서러운데, 아프기까지 하다니. 그런데 이젠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학교에서 공부에 연구에 고생하는 아내가 있고, 내가 지켜야 하는 미성년자 딸아이가 있다. 이들이 모두 나의 책임이고, 내가 보호해야 하는 이들이다. 이건 내가 해외에 있든 한국에 있든 전혀 관계가 없다. 더 이상 내 삶의 터전이 나의 역할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허리가 아프니까, 당장 걱정이 되는 건 아내의 라이드, 반려견의 산책, 딸아이의 등하교, 온 가족의 저녁밥이다. 내가 이렇게 이 가족에서 하는 일이 많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더 이상 서러운 마음은 들지 않는다. 어서 빨리 괜찮아져서 걱정 끼치지 말아야 되는데, 하는 생각뿐이다.


타지 생활이라는 것이 쉽지 않다. 나의 컴포트 존을 벗어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렸을 적 타지에서 힘들었던 건 물리적 지리적 컴포트 존을 벗어나는 부분도 있겠지만,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부분이 더 큰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타지 생활이긴 하지만, 나의 가족은 여전히 나의 옆에 그대로 있다. 그래서 서러운 마음이 덜한 것은 아닐까?


다행히 2~3일이 지나자 통증이 많이 가라앉았다. 청소기도 돌리고, 밥도 하고, 설거지도 다시 잘할 수 있게 됐다. 밀린 유튜브 영상과 블로그 글도 다 완성해서 업로드했다. 살짝 통증에 정신이 없는 사이, 봄도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어서 빨리 봄이 완연해져서, 나들이도 가고, 여러 가지 야외활동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꼭 서러워서가 아니더라도, 건강은 스스로 책임져야겠지?


Photo by Juan Cruz Mountford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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