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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 방구석 주부 May 30. 2023

미국에서 비가 오면 차고에서 차를 뺀다

D+290 (may 18th 2023)

날씨가 따뜻해진 5월 이후로 화창한 날씨가 이어진다. 4월 말까지 계속 쌀쌀한 날씨가 계속됐기에 햇살 가득한 화창한 날씨는 말 그대로 축복이다. 따스한 햇살과 시원하게 부는 바람, 그리고 한껏 오른 기온은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미국에 오고 봄을 맞을 때 가장 크게 기대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미세먼지 없는 나날들’이었다. 한국에서 살 때, 다른 모든 편리함을 뒤로하더라도 미국에 빨리 가고 싶었던 이유가 바로 미세먼지 속에서의 숨 막히는 삶 때문이었다. 팬데믹 때문에 조금 무뎌지긴 했었지만, 마스크 없이 밖을 나갈 수 없고 목이 너무 까끌까끌 해서 고통스럽던 날들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내가 새롭게 정착하게 된 미국 동부의 이 도시는 사실 공기가 좋은 도시는 아니었다고 한다. 오히려 미국 산업화 시대에 공해가 가장 심한 도시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제철 산업으로 유명했던 이 도시는 일본, 한국의 급속한 제철 산업 발전으로 그 경쟁력을 잃고 산업이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 후 도시는 제철, 발전 산업에서 교육과 의료 산업으로 그 산업 중심을 전환해 도시 재생에 성공했다 한다. 공업에서 서비스로 산업을 전환하자 도시의 점차 공해가 사라져 갔고, 2012년에는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1위로 뽑힐 정도로 환경과 위상이 달라졌다고 한다. (물론 살기 좋은 도시 1위를 한 것엔 미국 내에서 집 값과 생활비 수준이 낮은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도 한다)


사실 처음 미국에 왔던 한여름엔 미세먼지 유무의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했다. 워낙 더우니 집의 창문을 꼭꼭 닫고 에어컨을 켜고 있으니까 말이다. 한겨울에도 마찬가지다. 추워서 문을 꽁꽁 닫고 히터를 켜니까. 


하지만 봄이 오자, 미세먼지 없는 곳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새롭게 생긴 두 가지 습관이 이를 잘 말해준다. 하나는 환기를 더 자주, 더 오래 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비가 오면 차를 야외에 세워 놓는다는 점이다.


미국에 온 뒤로 환기를 자주 한다. 또 오래 한다. 


한국에 있었을 때는 환기가 무척 어려웠다. 실내가 답답해서 환기 한 번 하려고 하면, 휴대폰 미세먼지 앱을 꼭 확인해야 한다. 처음엔 미세먼지 정보가 초록색이나 파란색일 때만 환기를 했었는데, 그러면 환기를 아예 못하는 날이 많아 노란색만 되어도 환기를 해야 했다. 미세먼지 정보가 초록색으로 바뀌었다고 부랴부랴 창문을 열거나, 빨간색이라며 급하게 창문을 닫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미세먼지가 없는 날이라고 환기를 맘껏 할 수 있었느냐 하면 또 그렇지도 않았다. 환기 시간이 길어지면 어김없이 집안이 먼지로 뒤덮였다. 한국에서 마지막에 살던 아파트에선 거실 창문 바로 옆에 실내 자전거를 뒀었는데, 환기를 하고 나면 자전거에 노란 가루 같은 것이 쌓여 있었다. (매일 한 시간씩 자전거를 탔으니, 하도 안 타서 ‘먼지만 쌓인’ 것은 절대 아니었다) 집을 나설 때 환기를 한답시고 창문을 열고 나가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과거 비 오는 날 빨래 널어놨다며 ‘아차’ 하는 것과 동급의 일이었다.


미국에선 이런 습관이 180도 바뀌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창문부터 연다. 날씨가 따뜻한 날이면 이때 연 창문을 자기 전이되어서야 닫는다. 거실, 방, 화장실까지 모든 창문을 거의 활짝 열어 놓는다. 집 안으로 들어오는 선선한 봄바람이 그렇게 시원하고 개운할 수가 없다. 집을 나설 때도 창은 열어 놓는다. 갑자기 비만 오지 않는다면 괜찮다.


미국에선 비가 오면 차를 차고에서 야외로 빼놓는다.


한국에서 몇 년간 지하 주차장이 없는 구축 아파트에 살았었다. 옥외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으면 날씨에 차가 그대로 노출되는데, 사실 일상에서 크게 불편할 일은 없다. 비가 오는 날 차에 타거나 내릴 때 비가 들이친다거나, 눈이 많이 온 날 그 눈을 다 치워야 하는 정도? 하지만 미세먼지는 정말 곤욕이다. 늘 희뿌연 먼지를 코팅한 듯한 차를 아침마다 타고 출근하는 건 정말이지 날 고통스럽게 했었다. 그렇다고 매일 차 전체 먼지를 닦고 다닐 수도 없고.


비가 오면 더 난리다. 공기 중의 미세먼지는 빗물에 모두 씻겨 나가서 숨쉬기는 나아지지만, 옥외주차장에 세워놓은 내차는 엉망이 된다. 빗물이 마르고 나면 시꺼먼 빗물 속 미세먼지 가루가 차 외관에 눌어붙어 브러시로 닦이지도 않는다. 공기 중의 미세먼지로 차를 코팅하고 싶지 않다면, 비 오는 날엔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는 것이 좋았다.


‘내일은 비가 온다니, 차를 차고에서 빼놔야겠어.’


나야 차고가 따로 없는 아파트에 살고 있으니 내 차는 늘 밖에 세워 놓지만, 보통의 미국 사람들은 단독주택에 많이 살고 대부분 차고를 가지고 있어 차를 차고에 넣어 놓는다. (아 물론 매번 넣기가 귀찮거나 차고에 잡동사니가 많아 밖에 세우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미국 사람들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땐 정말 문화 충격이었다. 비가 오니 차를 밖에 둬야겠다니!


이곳에서 ‘자연 세차’라고 부르는 이 ‘행위’는 내 뇌의 논리 구조를 흔들어 놓았다. 환기를 맘껏 할 수 있다거나, 야외 활동을 맘껏 하는 것 같은 생활의 변화와는 차원이 달랐다. 이곳 사람들이 미세먼지 걱정 같은 건 하지 않는다는 것을 묵직하게 보여주는 증거였다.


오늘도 아침 일찍 창문을 연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바람도 선선하게 방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개운하다. 내일은 비가 온다고 한다. 요 며칠 꽃가루가 차 외관에 뽀얗게 쌓였는데 깨끗하게 씻겨 내려갈 것 같다. 


Photo by Keagan Henma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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