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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수험생 jcobwhy Jul 13. 2023

방구석 1열 불꽃놀이

D+337 (jul 4th 2023)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당시 5년 반을 살던 캘리포니아를 떠나 뉴저지/뉴욕으로 이사를 갔다. 대학원을 거의 마친 나는 인턴을, 아내는 취업비자 발급 과정에 있었다. 정들었던 도시와 사람들을 떠나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낯선 동쪽 끝으로 이사한 우리 가족의 새로운 삶은 조금 우울했다.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할 기회도 없었고, 친구를 사귈 수도 없었다. 딸아이는 당시 고작 6개월이라 손도 많이 가고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고 해야 할 건 너무 많았던, 참으로 우울했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기억 속에 단 한 가지 좋았던 추억이 있는데, 바로 독립기념일 카니발에 갔던 기억이다.


당시 독립기념일 카니발은 하루아침에 갑자기 생긴 꿈과 같았다. 실제로도 그랬다. 원래는 공터였던, 그래서 잡초만 무성했던 곳에 갑작스럽게 놀이공원이 생겼다. 그 모습은 우리가 흔히 할리우드 영화에서 봤던 그것과 같았다. 바닥은 흙바닥에 기구도 조악하기 이를 데 없지만, 반짝반짝 조명은 화려하고 아이들의 웃음과 즐거운 비명이 교차하는 미국의 이동식 놀이동산이었다. 아이는 어렸고 가진 것도 없어서 뭐 하나 경험한 것도 없었다. 그냥 조악한 음악 소리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우릴 설레게 만들었다.


그때 그 기억이 더 즐거웠던 건, 스펙터클한 규모의 팬시한 행사나 축제는 아니어도 인파에 휩싸이지 않은 채 소소하게 축제의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별한 날이면 언제나 대단한 곳에서 엄청난 인파와 생고생을 동반하곤 한다. 제야의 종소리나 불꽃놀이 축제와 같은 것들이 그렇다. 미국에서도 타임스퀘어의 뉴이어 쇼, 땡스기빙 퍼레이드, 독립기념일 불꽃놀이가 그렇다.


싱글일 때는 이런 곳들을 가는 게 고생인지 몰랐다. 심지어 데이트로 즐기기까지 했으니까.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긴 뒤론 그런 생고생은 노땡큐다. 기다림과 더움, 추움, 배고픔 등은 아이와 함께하기엔 너무 고생이다. 그래서 그런 즐거움(?)과는 완전히 멀어지지만, 의미도 점점 사라져 가서 속상한 부분이 없잖아 있었는데, 이론 소소한 즐길거리가 집 앞으로 찾아오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뉴저지의 카니발에서 보냈던 독립기념일 이후 정확히 10년 만에 미국에서 독립기념일을 맞이했다. 난 미국 사람도 아니고, 영국에서 독립해 선언문을 낭독한 의미를 내 안에서는 찾기 어렵다. 다만 10년 전 뉴저지 촌구석의 공터 카니발에서 우리 가족에게 작은 행복을 주었던 날로만 기억하고 있다.


10년 만에 독립기념일을 맞았고 나는 가족이 함께 나가 놀기를 원했다. 놀이공원을 가도 좋고 아이도 이젠 열 살이 넘었으니 도심으로 불꽃놀이를 보러 가도 좋겠다 생각했다. 첫 독립기념일 축제니, 조금의 고생은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은근히 기대했던 건 10년 전과 같은 소규모의 카니발이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진땀 흘리며 고생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인터넷을 검색해 봐도 그런 행사는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부담을 끌어안고 놀이동산에 가야 하나 생각했는데 아이가 관심이 없었다.


전날 또래 아이들과 실내 트램펄린 놀이 카페에서 신나게 놀았다고는 하지만, 막상 휴일 당일에 이무런 일정도 없으니 섭섭한 마음이 올라왔다. 아마도 10년 전 카니발이 워낙 좋은 기억이기도 했고, 신나는 축제날 집에만 있는 건 왠지 우울한 삶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옛날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크리스마스나 추수감사절 새해 연휴 기간에 집에 앉아 행사 중계 프로그램을 보며 우울해하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이 클리셰로 보인다. 불꽃놀이 영상이나 타임스퀘어 새해맞이 쇼를 보고 있는 장면은 늘 주인공의 가장 어두운 시절 모습이다.


결국 아무런 스케줄 없이 집에만 앉아 있다 오후 느지막이 아파트 수영장에서 한두 시간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소규모 불꽃놀이 행사 소식은 찾을 수가 없어 결국 집에서 저녁을 맞이했다. 자칫 영화의 주인공처럼 우울한 하루로 끝날까 싶었다.


그때였다. 아이의 자러 갈 시간이 다가오고 준비하고 있는데 창 밖에서 ‘펑’ 하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아빠 밖에 봐!‘


근처 대학교와 다른 공터 등에서 소규모로 불꽃놀이를 하는 게 우리 집 파티오에서 잘 보이는 게 아니겠는가? 물론 지금 티브이에서 중계해주고 있는 도심 중심가 불꽃놀이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눈앞에서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세 식구가 생고생(!) 없이 즐길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그렇다. 셋이 함께 즐길 수 있었다. 그래서 좋았다. 10년 전의 카니발에서처럼, 이번에도 세 식구가 함께 편하게 즐길 수 있었기에 좋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니 할리우드 영화의 티브이 불꽃놀이나 뉴이어 쇼 시청 장면의 클리셰는 티브이가 주인공이 아니다. 늘 그 주인공이 혼자라는 점이 클리셰의 핵심이었다. 우린 식구끼리 서로가 있으니 영화 속 주인공과는 다르다.


셋이 나란히 서서 파티오 난간에 기대 남의 집 지붕 위로 피어오르는 불꽃놀이를 바라보는데, 만족스러웠다. 세 식구가 함께 할 수 있으니 명절도 의미가 있고 휴일도 즐겁지 않은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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