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중년수험생 jcobwhy Jul 21. 2023

1년마다 돌아오는 카 인스펙션의 공포

D+341 (jul 8th 2023)

전에 유학생활을 하던 때부터 1년마다 돌아오는 어려가지 행정업무들이 있다. 집 렌트를 연장하거나 세입자 보험 갱신, 차량 등록증 갱신, 차량 인스펙션과 같은 일들이다. 위 날짜에서 보듯 어느덧 미국에 온 지도 1년이 다 되어가다 보니, 여러 가지 행정 업무를 해야 할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


대부분은 별일이 아닌 일들이다. 집 렌트 계약은 임대료를 올리더라도 처음 계약할 때만큼 어렵지는 않고, (처음 계약 때는 정말 수많은 서류를 요구한다) 임대인 보험은 자동 갱신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자동차와 관련한 갱신들은 수많은 트라우마를 상기시킨다.


처음 내가 미국을 왔던 건 15년 전이었다. 1년 조금 넘게 어학연수를 하고 영화 석사를 시작했는데, 그때 미국에서 처음 차를 샀다. 나의 첫 차는 당시 18년 된 일제 빨간색 쿠페 차량이었다. 헤드라이트를 켜면 개구리 눈처럼 탁 튀어나오는 그런 귀여운 차였는데, (전격 Z작전의 키트를 떠올리는 외관이다) 연식이 오래된 만큼 말썽을 많이 일으켰다. 고장이 자주 나서 견인해 수리를 한 적도 많고 앞바퀴 서스펜션이 다 나가서 요철을 밟으면 충돌한 느낌을 주는 매우 공포스러운 차였다.


이런 차를 가지고 있으면 1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차량 인스펙션이 두렵다. 주 교통국 주관으로 시행하는 인스펙션은 크게 배기가스 점검과 주행 안전 점검으로 나눠지는데 늘 문제가 되었던 건 주행 안전 검사였다. 타이어나 휠 얼라인먼트, 안전장비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검사하는 건데, 매년 검사를 진행하니 안전한 차량 운행을 할 수 있어 좋다. 하지만 연식이 오래된 차량을 모는 차주에게는 언제 더 이상 차를 몰 수 없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인스펙션이 두려울 수밖에 없다. 비용이 부담스러운 것은 덤이다. 미국에서 구매해 운행하던 차량들이 모두 10년 이상 된 중고차만 몰았던 나에게는 인스펙션이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작년 8월에 구매한 내 차도 인스펙션 기간이 되었다. 이 차 같은 경우는 내가 미국에서 산 차 중에서 가장 짧은 연식과 마일리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걱정거리가 많지는 않았다. 다만 10만 마일에 가까워오는 차량 수명 때문에 교환 교체할 부품들이 많지는 않을지 걱정되는

부분은 있었다. 전에 같았으면 막연한 걱정과 두려움 피하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겠지만, 이젠 온 가족의 안전한 이동을 책임지고 있으니, 인스펙션을 기회로 차의 안전이 보장되는 것은 중요하다 스스로를 위로하며 정비소에 주 인스펙션 검사를 맡기러 갔다.


주중에 검사하러 가려면 아이까지 데리고 가야 하기 때문에 주말을 이용해 점검을 받으러 갔다. 그런데 아뿔싸! 드롭오프 검사만 가능하단다. 차를 맡기고 갔다가 검사가 끝나면 차를 찾아오는 방식이다. 오래 걸리더라도 한두 시간이면 되겠거니 해서 주말 아침 일찍 온 거였는데, 모든 계획이 틀어져 버렸다.


일단 집으로 돌아갈 방법이 없다. 여기는 대중교통이 없다. 노선이 없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없다. 우버를 타고 집에 가야 하는데 불과 5분 거리지만 20불 가까이 내야 한다. 헐.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당황했다. 하지만 어쩌나. 인스펙션은 하루 종일 걸린다는데 주변은 허허벌판이다. 한국에서 카센터에 차 맡기면 차도 마시고 하면서 기다리기도 하고 그랬는데, 여긴 그럴만한 곳도 없다. 하는 수 없이 비싸도 우버를 불러 집으로 돌아갔다. 다시 돌아갈 때도 우버를 타야 하지만 하는 수 없다.


오늘은 꼼짝없이 집에만 있겠거니 싶어서 집에 있는데, 한두 시간이 지나서였나?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왔다. 의아해하면서 받아보니 정비소다. 요는 인스펙션을 했는데 배기가스는 통과했지만 안전검사는 탈락(!)했으며, 이에 대한 조치로 타이어 2개를 갈아야 한단다. (사실 첫 통화에서는 안전검사를 통과하지 못했단 것은 알아듣지 못했다. 이놈의 영어 듣기 ㅡㅡ) 안 그래도 타이어는 갈아야겠다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두 개만 갈아도 된다는 것이 오히려 다행스러웠다. 직원은 식당 추천으로 유명한 유럽 브랜드 타이어와 얼마 전까지 야구구단을 네이밍 스폰서 했던 한국 브랜드 타이어를 추천해 줬고, 애국심 투철한 나는 (사실 그건 아니고, 가격이 싸기 때문에) 국산 브랜드의 타이어로 교체를 요청했다.


다시 연락이 왔다. 이번엔 안 좋은 소식이다. 타이어 주문을 넣었는데 오늘 배송이 안돼서 월요일이 되어서나 교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안전검사를 받을 때 바로 교체하면 추가 검사 비용이 안 드는데, 월요일로 교체가 미뤄지면 추가 검사 비용이 든다고 한다.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운행하는 차량을 줄이기 위한 정책으로 보이는데, 엄하게 나만 피해를 보게 된 형국이다. 다행히 정비소 직원이 자기들에게도 책임이 있으니 추가 검사 비용은 받지 않겠단다. 다만 오늘 차를 가지고 갔다가 월요일에 다시 정비소에 가야 하는 번거로움은 피할 수 없었다. 아이를 데리고 정비소에 가야 하는 상황을 만들기 싫어 주말에 갔던 건데… 하는 수 없다.


결국 우버를 타고 다시 정비소에 가서 차를 수령해 왔다. 앞 유리를 보니 배기 검사만 스티커가 24년으로 교체됐다. 월요일에 타이어를 교체하고 나면 안전 검사 스티커도 새 스티커로 교체해 주겠단다. (미국 일부 주는 아직도 차량 안전 검사 통과 스티커를 유리에 붙여야 한다. 우리나라도 80년대에는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시 한번 소망하게 된다. 어서 빨리 경제적으로 잘 정착해서 10만 마일 (킬로미터로는 16만 킬로미터다!)에 육박하는 중고차를 구매하는 대신, 딜러십에서 신차를 우아하게 출고해서 정비 소요가 있을 때마다 딜러샵에서 정비 보는 날이 오기를!

이전 20화 방구석 1열 불꽃놀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