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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수험생 jcobwhy Aug 04. 2023

미국 아파트 수도관 교체 공사

D+360 (jul 27th 2023) - 이 집이 너네 안방이냐?

지난달 아파트 게시판에 공고문이 하나 붙었다. ‘We are very excited to inform you…’로 시작하는 이 공고문에는 우리 아파트 건물의 파이프를 교체하는 공사를 한다는 안데 공고문이었다. 멀쩡히 사람이 살고 있는 상태에서 공사를 하는데 왜 ’excited‘한지는 모르겠다.


전에 글로 적었듯이 겨울에 소방 알람으로 두 번 정도 얼어 죽는 날씨에 차에서 한 시간가량 벌벌 떨었던 일이 있었다. 그때 모두 누수로 인한 경보였는데, 이번 기회에 그런 위험이 줄어들겠다 싶어 다소 반긴 부분이 있다. 


공사는 7월 말할 것이며 아래의 협조를 부탁한다는 말 아래에는 공사 기간 협조할 내용들이 쭉 적혀 있았다. 열 개 정도의 내용이 있었는데, 대강의 내용은 이렇다;


말 그대로 수도가 들어가는 모든 곳은 비워라.

모든 방, 모든 화장실, 주방, 세탁실은 모두 접근 가능해야 한다. 


그래. 수도관 공사니까 관 교체할 곳은 모두 비우는 게 맞겠지. 괜히 안 치웠다가 내 물건이 손상되면 내 손해니까. 아니, 모든 방이라니. 집에 모든 방, 모든 화장실, 주방, 다용도실 말고 뭐가 있나. 집의 공간이 그게 다인데. 무슨 공사를 어떻게 할지는 상상도 안 되지만, 뭔가 엄청 귀찮고 불편할 것이 자명한 일이었다. 


나라는 사람이 원래 뭐 하라고 하면 (엄청 투덜대도) 순순히 따르는 사람이라 공고대로 따르면 되겠거니 별 생각이 없었는데, 며칠 전 안면이 있는 아랫집 인도 아저씨가 불평불만을 20분 동안이나 늘어놓는 바람에 괜히 불안해졌다. 그러고 보니 공사 기간이 얼마나 긴지, 각 집에는 언제 들어오고 시간은 얼마나 소요되는지, 집에서는 어떤 공사를 하게 될 건지 하나도 알 수가 없었다. 관리사무소에서조차 정확히 알 수가 없다고 하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인도 아저씨 외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컴플레인을 한 모양이었다. 다시 한번 이메일과 공고문을 통해 수도관 교체 공사에 대한 안내를 받았다. 각 유닛 별로 언제 공사를 하는지 명확한 날짜까지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월요일부터 토요일 사이에 공사가 마무리될 것이고, 건물 전층의 왼쪽 유닛들부터 공사를 시작해 오른쪽 유닛들에서 공사가 마무리될 것이라는 추가적인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아주 상세하지는 않았지만, 입주민들의 요청을 (아주 살짝) 받아들인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대망의 공사를 시작하는 주가 시작되었다. 공고문에서 지시(!)한 대로 화장실과 부엌, 그리고 세탁실까지 물건을 치워야 했다. 우리 집은 입구를 기준으로 가장 왼쪽 위에 위치한 유닛이라 아무래도 가장 먼저 공사를 할 것이 유력해 보였다. 그래서 일요일에 교회를 다녀오자마자 화장실, 부엌, 세탁실을 모두 치웠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가장 왼쪽에서부터 공사를 시작한다더니, 우리 집에서 가장 먼 집에서부터 공사를 시작했다. (응?) 아마도 입구에서 건물을 봤을 때 가장 왼쪽이 아니라. 건물이 입구를 바라본 기준에서 왼쪽이었나 보다. (이런 기준은 누가 만드는지 모르겠다. 원래 그런 건가? 누가 얘기 좀 해 주세요. 원래 그런가) 그러면 일요일부터 화장실, 부엌, 세탁실을 비워 놓은 우리는 어쩌란 말인가? 만약 이대로라면 빠르면 목요일, 늦으면 토요일에 공사를 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거기에 우리 집 공사가 아니더라도 건물 공사를 하는 일과 시간 내내 단수라는데… 단수라는 것도 정말 오랜만에 겪어서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화장실 참아야 하고, 씻지도 못하고 요리도 잘 못하는, 아주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의 단수 불편함만 참아가며 잘 버티고, 마침내 목요일이 되었다. 어제 공사하는 인부들에게 물어보니, 우리 집은 목요일 공사가 확실하다고 했다. 그래도 언제 하는지를 아니까 그나마 좀 낫다. 공사를 하는 시간 동안 집을 나가 있으면 좋은데, 반려견이 있는 집 같은 경우에는 집에 주인이 같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디디가 켄넬에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공사를 하는 내내 짖을 수 있으니 나와 아이가 같이 있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공사를 시작하기 전,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나는 혹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거실에 있기로 하고, 아이는 화장실, 부엌과 직접 연결이 없는 자기 방에서 디디와 함께 있을 준비를 했다. 물을 마실 수 있게 물통도 준비하고 간식도 챙겼다. 주방의 카운터 위 물건들도 일회용 식탁보로 다 쌌다.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공사 준비를 한 사람들이 있겠어?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모든 준비가 수포로 돌아갔다. 일부 수도관이  딸아이의 방 벽을 통해서만 접근이 가능해서 아이의 방도 자리를 비켜줘야 했다. 그러면 진짜 마땅히 있을 곳도 없는데 어떡하지? 하고 있는데, 아이가 디디와 함께 파티오에 나가 있겠단다. 아무래도 파티오에 나가 있으면 집안에서의 공사 소음이나 인기척으로부터 아이와 디디 모두 자유로울 수 있겠다 싶었다. 다행히 오전엔 아직 그렇게까지 덥지는 않아서 있을만하기도 했다. 그래서 난 거실에 있고, 아이와 반려견 디디는 파티오에 있었다.


공사가 시작되니 인부들이 엄청 들락날락거렸다. 수도관이 있는 벽을 톱으로 잘라내고(!) 오래된 수도관을 끄집어냈다. 대여섯 군데의 합판벽을 잘라내고 수도관을 넣고 빼고 하면서 공사를 하는데, 정말 순식간에 집이 공사판 한가운데가 되어 버렸다. 물론 바닥에 깔개를 깔고 분진이 튈만한 곳은 모두 비닐 같은 것을 감싸기는 했지만, 오늘 하루 공사판 한가운데서 있게 될 것이 너무 확실해 보였다. 


그야말로 자기 집 드나드는 공사 인부들 때문에 약간은 화가 날 지경이었다. 현관문을 활짝 열어놓는 것은 기본이고, 닫혀 있다 하더라도 노크도 없이 문을 벌컥벌컥 여는 통에 그야말로 집도 내 마음도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모르는 동파이프 수도관을 끄집어내고 PVC(로 보인다. 전문가가 아니라 잘 모르지만, 플라스틱이었다) 수도관으로 교체하며 아래층 인부들과 큰소리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공사는 아침부터 오후까지 이어졌다. 아이와 디디는 점차 지쳐갔고, 시간이 지나자 공사 인부들이 왔다 갔다 하기나 말기나 신경도 안 쓰고 거실 소파에 드러누워 티브이 보고 게임하고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평소였으면 미디어 사용시간을 엄격하게 관리했겠지만, 오늘은 정말 다른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공사가 슬슬 마무리되어 가면서 다시 뚫었던 벽의 합판들을 원상 복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합판을 뜯어낼 때는 정말 집 꼴이 엉망진창이 되겠구나 싶었다. 그야말로 큰 구멍을 벽에 뻥뻥 냈기 때문이다. 원상복구를 한다고 해도 원래 모습대로 돌아가겠나 싶었다. 


그런데 그 어려운 것을 해냈다.


사실 한국에서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중간에 이렇게 대형 공사를 하는 경우가 잘 없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이렇게 원상복구 마감을 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한두 시간 만에 집을 깔끔하게 원상 복구했다. 뚫린 벽을 원래 합판으로 막고, 마감 시멘트를 바르고, 그 위에 방수 페인트를 바르고, 다시 원래 벽과 같은 색의 페인틀 덧발랐다. 너무 순식간에 마감을 해서 차라리 마법과도 같았다. 물론 페인트 마르는 시간이 필요하니, 바로 만지지 말라고는 했지만, 그래도 제법 깔끔하게 마감을 했다. 청소도 순식간이었다. 공사가 마무리되어 가자, 같은 팀 중 청소하는 여자분들 네댓이 집에 들어와 청소기와 걸레 등으로 자신들의 동선을 싹 치우고 지나갔다. 그 모습이 마치 한국에서 포장 이사 아줌마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침 아홉 시가 넘어서 시작해 거의 여섯 시가 되어서야 마무리되었지만, 그래도 하루 만에 공사가 잘 마무리되어 다행이었다. 한 달 전에 공고되기는 했지만, 갑작스러운 공사 공고가 붙고 나서 다른 입주민들과는 꽤나 마찰도 있어 보였다. 다 세입자들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입주민들이 우리 돈 내고 살고 있는 만큼 나름 권리라는 게 있는데, 다소 막무가내로 ‘공사를 하니 너희는 이거 이거 비워라’ 식의 태도에 마음이 불편했던 것도 사실이다. 공사 중에도 너무 밀고 들어오는 느낌도 있었다. 그래도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이렇게 신속하게 일사천리로 공사를 하는 것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워낙 미국에서 이런 공사를 하게 되면 약간 세월아 네월아 하는 게 있기 때문에 걱정이 컸다. 벽 다 까뒤집어 놓은 상태에서 하룻밤이 넘어가면 어쩌나 했는데, 그렇진 않았다. 다행이다.


집 렌트 연장계약을 안 했다면 사실 안 봐도 되는 공사이기는 했는데, 그래도 파이프 공사를 했으니 앞으로 추가로 더 살게 될 1년간은 보다 깨끗한 물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위로해 본다. 그리고 어서 돈 많이 벌어서 내 집 사야지 싶기도 하고.


Photo by Valentin Petkov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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