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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수험생 jcobwhy Aug 10. 2023

미국 이주, 벌써 1년

D+365 (aug 1st 2023)

미국에 온 지 1년이 되었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집에서 뒹굴거리며 지루해하는 딸아이를 케어하느라, 생각지도 못하게 연구와 인턴 학생 관리로 정신없이 바빴던 아내 뒷바라지 하느라, 정신이 없어 그냥 훅 지나가게 됐다.


2년 전, 해외 이주를 시도할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당시 팬데믹으로 일을 쉬고 있던 아내가 유학을 도전했다. 처음부터 미국은 아니었다. 비싼 물가와 높은 장벽의 비자 요건, 근 몇 년간의 정치적(?) 배경은 미국행을 망설이게 했다. 하지만 박사 과정을 위한 다양한 금전적 지원은 미국을 따라갈 나라가 없었다. 결국 장학금과 생활비 지원을 함께 기대하며 미국 대학원들에 원서를 냈다.


기대가 크지는 않았다. 팬데믹 이후 1년을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집에 있던 아내는 자존감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미국 대학원 박사과정이라는 높은 장벽은 우리 같은 40대에게 등반을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많은 학교에서 불합격 통보를 전해 왔고, 아내는 좌절했다.


하지만 아내의 분야 최고 권위의 학교에서 합격 통보가 왔다! 장학금과 생활비 지원도 약속했다. 그 어떤 학교보다도 기대를 안 했던 곳이었는데, 비교적 이른 시기에 합격 소식을 전해왔다.


22년 상반기는 한국 생활 정리에 온 신경을 다 써야 했다. 반면에 경제적으로 아주 여유롭지 않았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직장 생활도 해야 했다. 기동성이 필요했기 때문에 나는 5월 말에 회사를 그만두었고, 그 사이 취직해서 재택근무를 하고 있던 아내는 출국 일주일 전까지 일을 했다. 아이도 출국 일주일 전까지 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해야 할 일들은 많았다. 삶의 터전을 정리한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리고 미국에 왔다. 2022년 8월 1일이었다. 매우 덥고 습했다. 서울에서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지금 살고 있는 피츠버그까지. 피츠버그는 잘 몰라도 샌프란시스코는 여름 내내 화창하고 건조한 곳인데, 세 곳 모두 이상하게도 우중충한 회색빛 하늘이었다. 여러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수개월 전 계약한 우리 가족의 새로운 보금자리에 도착했다.


처음 한 달간은 영혼이 가출했을 정도로 정신없이 정착을 위한 여러 일들을 해결해야 했다. 지금 기억에는 아이 학교 등록, 운전면허 발급, 차량 구매, 의료보험 문제 해결 같은 것들이 가장 힘들었던 일들로 기억한다. 이 모든 일들을 아이와 아내의 학기가 시작하기 전까지 마치는 것이 내 목표였고, 다행히도 아이가 첫 등교를 하는 날에 모두 마쳤다. 불과 3주 만에 정착을 위한 모든 행정적인 업무들을 마치는 데에 성공했다. 스스로 뿌듯했다.


학기가 시작하고, 아내와 아이는 극강의 적응 과정을 거쳐야 했다. 아이는 한국의 초등학교에서 미국의 초등학교 학생으로서 적응해야 했고, 아내는 한국에서의 글로벌 기업 직장인에서 미국의 대학원 학생으로 적응해야 했다. 나도 주부로서 적응이 필요했다. 생활비를 절약하면서도 아이와 아내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했다. 그 일이 나의 우선순위라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집안일에만 몰두하지는 않았다. 지난 1~2년 간의 우리 삶을 기록하고 싶었다. 또 알리고 싶기도 했다. 돈이 많고 어려야 미국에서 공부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경제적 사정이 대단히 좋지 않아도 40대의 나이에 온 가족이 함께 새로운 삶의 도전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것을 전파하고 싶었다. 그래서 글을 썼고, 다행히 적지 않은 독자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셨다. 십수 년간 이어온 창작의 업을 놓고 싶지도 않았다. 아이들을 위한 콘텐츠를 계속 만들고 싶었다. 유튜브를 시작했다. 아직도 초보적 수준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시대가 나에게 글을 써주는 친구(챗GPT)와 그림을 그려주는 친구(미드저니)를 만나게 해 주었고, 덕분에 이제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점에는 새로운 식구도 맞이했다. 유기견 센터에서 만난 우리 가족의 반려견 디디는 각박한 미국 생활에 활기를 불어넣어 줬다. 디디 덕분에 초반엔 조금 위축된 듯보이던 딸아이도 많이 밝아졌고, 자칫 게으름으로 빠질 수도 있는 나의 생활에도 약간의 긴장감을 주었다. 하루 세 번의 배변 산책은 나에게 최소한의 유산소 운동을 매일 허락했고, 이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디디가 우리 집에 온 후로 이어지고 있다.


사계절을 다 겪기 전까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불안한 마음을 떨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이곳 피츠버그의 사계절을 다 겪었다. 찬란한 미국 동부의 가을을 지나, 혹독한 겨울을 지나며 보일러가 고장 나는 고난을 겪기도 했다. 캐나다 산불 연기 때문에 숨도 쉬기 어려운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 1년간의 생활을 통해 그 모든 고난과 어려움들은 우리가 견딜 수 있는 것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미래의 삶은 불확실하다. 아내의 학교가 끝나는 시점에 우리가 또 무슨 선택을 하고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 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하루는 또 시작하고 우리의 삶은 이어진다.


지난 1년, 나름 행복했다. 새로운 삶의 터전이 주는 행복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목표와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오는 행복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또 내일도 묵묵히 목표와 꿈을 향해 나아갈 거다.


(엇. 글을 쓰고 보니 뭔가 연재 종료와 같은 느낌을 주는데, 전혀 아니랍니다. ㅎㅎ. 미국 정착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Photo by Alexander Gre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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