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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수험생 jcobwhy Jul 28. 2023

아이에게 ‘호러블 여름캠프‘ 추억을 선물하다

D+353 (jul 20th 2023)

어릴 때 봤던 할리우드 어린이 영화를 보면 ‘여름캠프에서 생긴 일’ 소재가 자주 쓰인다. 늘 바쁜 맞벌이 가정 혹은 한부모 가정의 주인공 아이는 가기 싫은 여름캠프에 가게 되고, 거기서 뜻밖의 만남이나 사건을 통해 성장하게 된다는 클리셰를 가진 영화들이다. 어릴 때 여름캠프를 너무 싫어하는 주인공을 보며 이해하기 힘들었던 기억도 생생하다. 저 모험이 가득한 여름캠프가 왜 싫단 말인가? 집에서 학원만 돌며 숙제에 매여 있던 여름방학을 보냈던 어린 나에게는 미국 영화의 ‘호러블’ 여름캠프는 차라리 로망과도 같았다.


사실 미국의 여름캠프는 부모들에게 오아시스와 같다. 12주에 달하는 긴 여름방학 동안에도 미국 부모의 엄격한 법적 무한 책임은 사라지지 않는다. 한국에서처럼 홀로 등교하거나, 혼자 집에 남아있거나, 부모의 관리 없이 학원 뺑뺑이를 도는 것은 모두 아동 학대로 법적 처벌을 받는다. 남녀 차별이 한국보다 덜해서 아이에 대한 양육 책임도, 가정 경제에 대한 책임도 동등한 분위기도 있기에 맞벌이가 대부분이고, 따라서 방학 동안 아이를 양육하기 위한 묘수가 필요하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여름캠프다. 학기때와 같은 시간표 운영만으로도 부모들은 안심하고 일과 시간에 생업에 종사할 수 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일과 중 아이의 픽업을 위해 근무시간 조정이 가능하고, 이게 대단한 특권이라 느끼지도 않는다. 그저 당연한 거다. 그렇기에 학교처럼 네시에 끝나는 여름캠프는 방학 동안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필수적이자 충분한 프로그램일 것이다.


그렇다고 프로그램이 획일적이지는 않다. 공공시설과 사설 시설을 막론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내용도 천차만별이다. 우주캠프, 예술캠프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심층적으로 탐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많다. 그렇지만 자본주의 국가의 리더답게 가격도 천양지차다. 수백 불에서 수천 불에 이르기도 한다.


전에도 얘기했듯, 경제적으로 부담도 되고 첫해부터 너무 밀어붙이고 싶지도 않아, 우리 아이에게는 학교에서의 반나절 캠프 2주, 외부 공공시설 종일 캠프 1주를 신청했다. 그 정도면 너무 지겹지 않게 방학을 보낼 수 있겠다 싶었다. 역시나 그랬다. 지난 7주 동안 아이가 가장 즐거웠던 주간은 학교의 캠프를 출석하던 기간이었다. 반나절만으로도 방학 동안의 지루함을 다 날린 듯했다.


그리고 이번주 드디어 처음으로 종일반 캠프를 출석했다. 저렴하지만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이 공공시설은 여름캠프도 나름 체계적으로 운영하는 것처럼 보였다. 거기에 이번에 신청한 프로그램은 기관 시설이 아닌 커다란 공원 숲에 위치한 통나무집에서 진행된다. 내 생각에 모든 것은 다 꿈꾸던 로망이 이뤄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물론 주변 사람들로부터 안 좋은 피드백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 한국 사람들이었고, 아무래도 극성맞은 한국 부모들의 오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교육적인 프로그램을 원한게 아니라 아이에게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 주고 싶었던 거라, 조금 별로여도 그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아이도 친구들에게서 비슷한 소리를 들은 모양이다. 하지만 아이의 생각도 같았다. 집에서 지루한 것보단 낫겠지. 수영도 하고 특별 활동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우리의 그 낮은 기대감마저도 채우지 못했다. 일단 시설이 너무 열악했다. 숲 속 통나무집이라는 게 에어컨도 없고, 시설도 오래돼서 아이들이 안전하고 쾌적하게 놀 수 있는 공간이 아녔다. 아무래도 쾌적하지 못한 시설에서 프로그램이 진행되다 보니, 안전사고 예방 등을 위해 프로그램 담당자들은 엄격한 규율을 적용해 아이들을 통제하는데 급급하고, 상대적으로 일과 프로그램은 매우 관성적이었다.


화요일엔 수영 프로그램도 있었고 어젠 클레이 수업도 있었지만, 아이의 흥미를 끄는 데는 실패했다. 결국 아이는 4일째 되는 날 아침, 더 이상 캠프에 가고 싶지 않다고 선언했다. 평소 같으면 이틀 남았으니 가라고 했을 텐데, 나도 아이의 의견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프로그램을 마치고 나오던ㅁ 아이의 표정이 너무 어두웠기 때문이다. 평소의 딸아이는 어디든 처음에는 가기 싫다고 하더라도, 일단 가면 100% 즐기고 오는 성향의 아이다. 저렇게 잘 노는데 왜 애초엔 가기 싫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다. 그래서 이번 캠프도 그러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했다. 하지만 전혀 아니었나 보다. 아이는 세상 지루하누시간을 보낸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나타났다. 삼일 내내. 웬만하면 즐기고 오는 우리 아이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문제가 있는 거다.


결국 오늘내일은 다시 집에서 지루해 모드다. 너무 지루해서 캠프가 낫다고 하지는 않을까? 천만의 말씀. 아이는 지루해도 집이 낫단다. 아내는 아이에게 축하를 건넨다. 너도 다른 미국 아이들처럼 ‘호러블 여름 캠프’ 추억이 생겼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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