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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수험생 jcobwhy Dec 20. 2023

겨울 콘서트 주간

2023년 12월 15일(이주 504일 차)

미국의 겨울은 한국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에게는 그 차이가 더 극명하다. 일단 크게 두 가지가 다른데, 하나는 학년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겨울방학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12월이 지나면 아이는 한 학년을 마치게 되고 새로운 학년을 맞이하게 된다. 겨울방학 전에는 시험 등으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더니, 다 마치고 나서 한숨 돌리면 어느새 새 학년을 준비하기 위한  준비(?)에 돌입하는 겨울방학이 시작된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에선 겨울이 무척이나 바빴다. 그전 학년을 마치는 것도 새 학년을 준비하는 것도 여간 바쁜 일들이 아니다 보니, 분주하게 뽈뽈거리고 돌아다니게 되는 것이 겨울이다.


하지만 미국에선 일단 겨울이 학년의 마지막이 아니다. 크리스마스와 새해 사이 일주일 동안만 브레이크로 쉴 뿐이고, 새해가 지나자마자 바로 같은 학년의 새 학기를 시작하는데, 사실 방학 이후가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학기라는 느낌조차 없는 게 사실이다. 올해부턴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미국에선 새해가 된다고 나이를 먹는 것도 아니니, 새해도 큰 의미를 두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 입장에선 연말과 새해가 주는 느낌이 다소 적은 편이다.


대신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연말의 학교를 덮는다. 특히 크리스마스 브레이크를 한 주 앞둔 주에는 학교에서 크리스마스를 테마로 다양한 콘서트가 진행된다. 학교의 음악 교육은 합창단, 관악 밴드, 현악 오케스트라, 이렇게 세 가지로 진행되는데, 각 프로그램 별로 다른 날 콘서트를 진행한다. 우리 딸아이는 합창단과 관악 밴드를 하기 때문에 이번 주 월요일과 금요일 두 번 콘서트가 잡혔다.


합창단이야 아주 전문 교육을 받지 않더라도 그럭저럭 잘할 수 있기도 하니 크게 걱정하지 않았지만, 관악 밴드의 콘서트는 사실 조금 걱정했다. 악기라는 것이 능숙해지기까지는 많은 연습이 필요한데, 많이 신경 써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른 한인 자녀들을 보면 밴드나 오케스트라 악기의 레슨도 받고 나름 적극적으로 연습을 하던데, 우리는 그럴 형편은 되지 않았다. 다행히 아이가 하는 악기가 퍼커션(타악기)이라 다른 관현악 악기만큼의 레슨이나 연습이 필요한 악기는 아니기에 ‘틀려도 많이 티는 안 나겠지’ 하며 애써 담담하게 아이의 콘서트를 기다렸다.


월요일 합창단 콘서트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작년 4학년 때는 긴장도 많이 하고 첫 콘서트여서 그런지 표정이 많이 어두웠는데, 그래도 5학년이 되고 나서는 경험이 있어서인지 훨씬 편안한 모습이었다. 다만 콘서트를 할 때 노래마다 소개를 하는 안내 멘트를 하는 순서가 있었는데, 아이가 자원하는 것을 깜빡해서 자신이 하지 못하게 돼서 여간 서운해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대망의 관악밴드 콘서트 날이 되었다. 엄청난 실랑이 끝에 시작한 밴드기 때문에 아이가 지속적으로 밴드를 잘할 수 있을지 조금 걱정이 되기는 했는데, 아이는 퍼커션을 하면서 흥미도 가지게 되고, 나름 팀파니 솔로도 있다면서 콘서트를 엄청 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나는 이 콘서트가 꽤나 기대됐다. 고학년이긴 해도 초등학생들이 악기를 연습해서 합주를 한다는 것이 잘 상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두 번,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모여 연습하는 것으로 합주까지 하다니, 선생님의 노력이 대단하다 생각도 했다. 조금 어설프긴 하겠지만, 그래도 나름 화음을 맞춰가며 어찌어찌 연주할 모습을 상상하며 미소가 지어졌다.


밴드 콘서트가 시작됐다. 밴드 콘서트는 4학년과 5학년만 하는데, 4학년의 연주가 먼저 시작되었다. 긴장되는 순간, 선생님은 지휘를 시작하고 이에 아이들은 연주를 시작한다.


그런데,


아이들의 연주가 시작되자,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난감했다. 관악기를 연주하느라 부푼 볼과 고사리 손은 너무 귀여웠는데, 음악은 매우 난감했다. 이제 막 악기를 시작한 아이들이 연주할 수 있는 곡이라곤 ‘떴다 떴다 비행기(Mary had a little lamb)’이나 ‘아기 상어(!)’ 정도였다. 그 조차도 같이 합주를 할 정도는 아니었다. 괴랄한 음악 소리와 함께 순간순간 열심히 연주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렇게 귀여울 수 없었다.


딸아이가 연주하는 5학년 팀의 연주도 이어졌다. 그래도 이제 막 악기를 시작한 4학년보다는 들을 수 있는 음악을 연주했다. 딸아이는 몇몇 곡에서 커다란 팀파니 솔로를 연주했는데, 꽤나 긴장했던 모양이다. 그래도 제법 그럴듯하게 연주를 잘 마쳤다. 아이 스스로도 뿌듯해했다.


학교 관악 밴드가 연주를 너무 잘했다면 조금 불편했을 것 같다. 과거 한국에서 아이가 유치원 시절에 발표회 같은 것을 할 때, 아이들이 공연을 너무 잘하면 얼마나 서로 고생하면서 준비했을까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부분이 있었다. 이제 막 악기 연주를 시작한 초등학생 아이들이 너무 잘하면, 레슨이나 연습 등으로 아이들이 악기에 쉽게 질리게 만들 수도 있겠단 생각이 있다. 적어도 내가 그랬으니까. 그런데 초등학교 때 시작해서 바짝 하는 것이 아니라, 중고등학생 때까지 꾸준히 악기를 할 수 있도록 교육이 설계되어 있으니까, 지금의 시점에서는 참 괴랄한 콘서트가 될 수도 있는 게 아닐까?


이제 막 시작한 초보 연주자들이 할 수 있는 딱 적당한 수준이어서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콘서트였다.  고생한 우리 딸아이도 참 자랑스러웠고. 덕분에 마음이 참 따뜻한 크리스마스가 되지 않을까 싶다.


여러분들도 모두들 메리 크리스마스~!


Photo by Jens Thekkeveettil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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