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24일(이주 513일 차)
내가 살고 있는 미국의 중서부(미드웨스트) 지역은 한국의 강원도 비슷한 날씨다. 여름엔 30도 내외로 만만찮게 더운데, 겨울엔 영하 10~20도까지 내려갈 정도로 추워진다. 눈도 많이 오는 편이어서 크리스마스엔 늘 화이트 크리스마스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직 실제로 겪은 건 지난해 한 번뿐이긴 하다.
올해 겨울은 유독 따뜻하다. 보통 스마트폰으로 확인해 보면 이곳이 서울보다는 늘 추운 날씨였는데 올해는 서울보다 추운 날이 손에 꼽는다. 날씨가 따뜻하다 보니 비가 더 자주 온다. 올해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틀린 것 같다. 며칠 전 커뮤니티 뉴스 레터에서 봤는데, 이번 겨울에 이 지역 날씨가 따뜻한 이유가 지구 온난화 때문이라고 한다. 엘니뇨의 영향으로 우리 지역에선 통상적인 기후보다 기온은 올라가고 습도는 내려가서 건조해진다고 하는데, 정말로 올해 겨울은 그런 것 같다. 엘니뇨의 영향이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는데, 그런 게 제법 신기하다.
한국에선 영토가 남북으로든 동서로든 많이 넓지 않기 때문에 기후의 차이가 크지 않아 기본적으로 기후에 적응하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다. 고작해야 남쪽으로 내려가면 겨울이 조금 더 따뜻하거나, 강원도 쪽이 조금 더 오래 춥거나 하는 정도다. 하지만 미국은 지역에 따라 기후가 워낙 차이가 크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통상적인 기후도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북반구 온대지방에 한국과 비슷하게 위치하고 있으니 기후개 비슷할 것 같아도, 디테일이 다르기 때문이다. 과하게 말하면 겨울에 추워지고 여름에 더워지는 것만 같다고 보면 된다.
거기에 이상 기후까지 겹치니 적응이 쉽지 않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는 갑자기 기온이 영하 20도까지 떨어진 데다, 히터가 고장 나서 오들오들 떨면서 보냈다. 그 기억이 선명하다 보니 올해 겨울을 맞이하면서 작년보다 더 꼼꼼히 월동준비를 했다. 창호도 꼼꼼하게 방풍 작업을 하고, 벽난로 땔감도 넉넉히 준비했다.
그런데 날씨가 춥지 않다. 추운 겨울이 걱정하고 무서웠는데, 좋은 건가? 그렇지 않은 듯하다. 지구온난화는 우리의 삶의 터전을 근본부터 흔든다.
그러고 보니 지난여름엔 또 다른 지구온난화의 현상을 겪었다. 갑자기 우리 지역에 중국매미가 외래종으로 들어와 번식하기 시작했다. 전에는 없던 벌레라는데 갑자기 여름 기간 동안 다운타운의 도로와 인도를 덮어버렸다. 물론 팬데믹이 끝나고 사람들의 왕래가 급작스럽게 늘어난 부분도 있어서 외래종이 늘어난 이유도 있겠지만, 기후 변화로 인해 특정 생물이 천적 없이 번식이 용이해진 부분도 무시할 순 없다.
각 나라나 지역마다 기후 위기로 인한 변화는 각기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최근 캘리포니아엔 겨울 홍수 뉴스가 많이 들린다. 더운 사막으로 유명한 텍사스에 눈이 왔단 뉴스도 있었다. 한국사람 입장에선 100mm의 비로 인한 홍수나, 2cm의 눈으로 인한 정전 사태가 웬 말이냐 싶겠지만, 이런 작아 보이는 변화가 각자의 기후와 환경에 맞게 적응해 살아가던 삶의 습관을 송두리째 뒤흔든다는 점이다.
추운 겨울과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당연한 듯 주어지는 지역에 사는 입장에서 왠지 이 따뜻하고 비가 추적추적 오는 크리스마스가 몽글몽글해지는 감성은 앗아가고 시대에 대한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만 늘어가게 하는 것만 같다.
내년엔 크리스마스에 눈이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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