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8일(이주 497일 차) - 크리스마스 선물 준비
크리스마스 시즌은 선물 쇼핑의 계절이다. 일단은 아이나 가족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해야 한다. 아직도 산타의 존재를 믿는 (혹은, 믿는 것처럼 우리에게 행동하는) 아이를 위해 산타클로스의 선물을 별도로 준비해야 하고, 또 작은 선물이나마 부모의 선물도 준비해야 한다. 늘 필요 없다며 손사래를 치기는 하지만 나를 위해서, 혹은 아내를 위해서도 선물을 준비하곤 한다.
하지만 이뿐만이 아니다. 각자의 사회생활에서 만나는 여러 사람들을 위한 선물도 준비한다. 워낙 광범위한 대상이지만, 사소하게라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아이의 학교 친구들을 위해 조그만 소포장으로 캔디나 작은 장난감 등을 준비해 선물교환을 한다. 교회에서 만나는 꼬마들을 위한 선물도 준비하고, 평소에 감사한 마음을 가진 분들을 위한 작은 선물들도 준비해서 드리는 편이다.
아이의 학교 선생님들을 위한 선물도 준비한다. 워낙 사소한 선물들을 주고받는 문화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미국에서는 선생님들께 선물을 드리는 것이 크게 어색하지 않은 편인 것 같다. 한국에서는 우리가 학창 시절 유행했던 ‘촌지’ 문제라든지, ‘청탁금지법’의 영향으로 선생님께 선물을 드리거나 하는 행동이 매우 조심스럽지만, 미국에서는 여전히 선생님께 선물을 드리는 것이 자연스럽나 보다. 하지만 강제는 아니어서 작년에는 문화를 잘 모르고 아무것도 준비를 안 하기도 했었다.
사실 아이를 맡아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크지만, 사실 선물을 드리는 부분은 또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적정 수준의 선물을 찾는 것도 어렵고, 또 다른 부모들에 비해 너무 초라한 선물을 준비해 안 하느니만 못한 게 되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그래서 한국에 있을 때는 가정통신문을 통해 선물 사절이라는 안내가 나오면 조금 안심하기도 했다. 그런데 다시 선물을 보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약간 한국적인 마인드로 불편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 금요일에 온 학교 가정통신 메일을 훑어보는 중에 연말 선물에 대한 안내가 있었다. 그런데 내용이 다소 충격적이었다. 각 선생님들의 위시리스트가 있다는 것. 선생님 한 명 한 명의 위시리스트 문서 링크가 달려 있었다.
미국에선 선물 위시 리스트를 보내는 것이 매우 일반적이다. 지인이 결혼을 하면 하객에게 선물 위시 리스트가 전달되는데, 그럼 여러 하객들은 위시리스트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선물을 직접 구매하거나 해당 가격의 금액을 송금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물리적인 리스트가 있었는데 요즘은 아마존 같은 온라인몰에 위시 리스트를 걸어놓기도 한다.
역시 상업적인 나라구나 내가 이걸 모른 채 작년 크리스마스를 그냥 지나쳐 버렸구나, 선생님이 바라는 선물을 사서 준다, 참으로 신박하네, 그래, 차라리 뭘 원하는지 알면 더 좋지, 등등의 온갖 생각을 하며 아이 담임 선생님의 위시리스트를 열었다.
‘응?’
우리 아이 담임 선생님의 선물 위시 리스트는 대략 아래와 같았다;
아이들 칭찬용으로 줄 사탕류
수업 중에 필요한 문구류
등등
선생님의 위시 리스트를 채운 것은 대부분 학급에서 학습 과정을 진행하는 데에 있어 도움을 주는 ‘교보재’가 대부분이었다. 괜스레 가졌던 선생님의 위시 리스트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스르르 녹는 느낌이었다. 사실 위시 리스트라는 것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선물을 받는 사람이 자기가 받을 선물을 정한다니.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는데, 막상 리스트를 보니 그런 마음이 싹 사라졌다. 오히려 부담 가지지 말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은 리스트라고나 할까?
하지만 정작 선물은 다른 선물을 샀다. 리스트에 있는 물건 대신 딸아이가 평소에 눈여겨보았던 선생님들의 취향대로 선물을 준비했다. 결국 선물을 전하는 건 아이니까 아이가 선물을 고르는 게 좋겠다 싶어, 리스트에 나온 내용을 알려는 주되 아이가 직접 선물을 고르도록 했다.
선물을 한다는 것, 감사함을 전하는 방법의 하나다. 그 목적에 맞게 학교에서 잘 유도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고, 아이도 감사하는 마음을 잘 전달하기 위해 평소에 선생님이 좋아하는 것을 눈여겨보았다는 것에 꽤나 대견하고, 선물과 함께 감사하는 마음만 상대방에게 잘 전달하는 소통의 기술만 잘 가르치면 되겠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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