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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수험생 jcobwhy Dec 07. 2023

명절 증후군인가?

2023년 11월 27일(이주 486일 차) 아주 배가 불렀어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정말 한국의 추석과 정말 비슷하다. 부모님을 비롯한 친지들을 찾아뵙고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하는 문화라든지, 일 년간 삶을 살며 감사한 것들을 표현하는 명절의 의미도 매우 비슷하다. 미국의 다른 공휴일과는 다르게 매년 4일의 휴일을 보장받는 명절이기도 하다. 추석, 설날과 같은 명절은 정말 한국에만 있는 것 같지만, 추수감사절만큼은 정말 한국의 명절과 같다. 그래서 추석, 설날과 같이 부모 자식 간의 갈등도 있고, 주부의 명절 증후군도 똑같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둘씩 알게 되는 미국 현지의 지인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비슷하다. 물론 여기서야 전은 부치지 않고, 제사상은 차리지 않지만, 전과 제사상 대신 로스트 터키와 스터핑, 매시드 포테이토 등을 만드는 데 허리가 휘어진다. 로스트 터키는 조리 준비에만 24시간이 넘게 걸리는 극강의 시간 소비 요리라 주부님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명절에 찾아온 타지의 자녀들은 부모님들이 온갖 명절 잔소리를 하는 통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미국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시트콤이나 드라마를 보면 한국의 명절과 비슷한 에피소드를 많이 봤으리라 생각이 든다.


뭐 사실 우리 가족이야 명절이 스트레스를 받을만한 일은 없다. 일단 한국의 명절이 아닌 데다, 대가족이 모이는 것도 아니니 요리를 대대적으로 할 필요도 없다. 그저 세 가족이 흩어지지 않고 4일 정도 함께 비비고 생활하는 정도다. 하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주부에게는 큰 부담이 된다. 세끼 꼬박 차려서 아내와 아이를 먹여야 하고, 서로 살짝 어긋나 있는 서로의 기질이 부딪칠 시간이 그만큼 늘어나게 된다. 서로에게 모두 스트레스가 된다. 


가정주부를 주업으로 생활하고 있기는 하지만, 나름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영상 콘텐츠를 만들고 글을 쓰는 일을 일과시간에 하고 있는데, 추수감사절이 있는 일주일 동안 작업을 쉬었다. 회사를 다닐 때에는 휴가를 쓰거나 회사가 휴무일이 되니 자연스럽게 일을 쉴 수 있게 되지만, 집에서 프리랜서와 같이 일할 때는 일을 쉬기가 쉽지 않다. 괜히, 쉬면 무슨 일이 생길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과감히 휴식을 선택했다. 가족과 온전히 시간을 보내고 싶기도 했고, 하는 작업에도 재정비를 할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다행히 이 결정은 작업 결과물엔 부정적인 영향을 거의 주지 않은 반면, 가족과도 시간도 잘 보냈다.


하지만, 이런 게 새로운 ‘명절 증후군’일까? 명절이 지나고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자, 아내도 아이도 학교로 돌아갔다. 정신없는 등교 시간이 지나고 홀로 집에 남았다. 전 같으면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면 운동을 다녀와서 자연스럽게 영상 작업을 시작하는데, 뭔가 텅 빈 느낌이 들어 홀로 멍하게 자리에 앉아 있게 된다.


아이와 아내가 집에 있는 동안 밥 하는 게 그렇게 귀찮고 힘들었는데, 그런 분주함이 모두 사라지고 나니 기분이 이상해진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주방이 특이하게 생활공간과 분리되어 있는데, 주방에서 밥을 하거나 설거지를 하는 등의 집안일을 하고 있으면 묘하게 다른 가족 구성원들과 분리된 느낌이 들곤 해서 마음이 불편해지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명절이 지나고 모두가 각자의 생활환경으로 돌아가 버리고 나니, 나 홀로 남겨진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


다시 작업 루틴으로 돌아가는 일도 매우 힘들다. 회사를 다니면 아무래도 물리적으로 일하는 공간과 생활하는 공간이 분리되고, 회사를 간다는 행위가 다시 일을 하는 루틴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이끈다. 하지만 집에서 작업을 하면 그런 작업으로 이끄는 특정 행위가 없다 보니 일주일을 쉬었다가 다시 작업을 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게 월요일 오전을 통으로 멍하니 날리고,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오후에 정신을 차렸다. 또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미국의 12월은 또 정신이 없는 한 달이다. 아내의 학기가 끝나고, 한 달 내내 크리스마스 준비로 바쁘고, 아이의 학교에서 행사도 많다. 내가 하는 작업이야 늘 같지만 뭔가 변화가 많은 한 달이다. 어서 정신 차리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어영부영 한 달은 보내지 않게 된다. 일어나 일해야지. 하하.


Photo by Kelsey Chanc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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