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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수험생 jcobwhy Feb 08. 2024

딸아이의 영재 교육 프로그램

2024년 1월 30일(이주 550일 차)

몇 달 전, 학교 담임 선생님과의 학기 초 학부모 면담을 진행했다. 담임 선생님은 딸아이에게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영재 교육 프로그램을 신청해 테스트를 봤으면 한다는 제안을 주셨다. 몇 가지 복잡한 서류 절차를 거쳐 프로그램에 신청했고, 아이에게는 이런 테스트를 볼 수도 있는데 놀라지 말라는 당부만 해 두었다.


그런데 프로그램을 신청하고 나서도 한 달이 넘도록 아무 소식이 없었다. 아내나 나나 내색은 하지 않아도 은근 초조한 마음이 생겼다. 선생님이 재능이 있는 아이라고 생각했다가, 조금 오래 보니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나 하는, 그런 이상한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괜히 궁금증을 가지거나 물어보거나 하면 이런 프로그램에 목매는 뻔한 아시안 학부모처럼 보일까 봐 말도 못 꺼내고 있었다.


지난주, 학교를 다녀온 딸아이가 갑자기 테스트를 봤다는 이야기를 했다. 영재 프로그램에 적합한지 점검하는 테스트라 했단다. 어떤 테스트였는데 어떻게 테스트를 봤고, 어떤 건 이상했고, 어떤 건 재밌었고, 어떤 건 잘 못해서 속상했다는 둥 조잘조잘 이야기를 쏟아내는데, 재미있게 들어주면서도 마음이 덜컥했다. 예상하지 못하게 테스트를 봐야 했던 아이도 당황했을 거고, 이젠 테스트까지 봤는데 프로그램에 들어가지 못하면 기분이 얼마나 좋지 않을지 그것도 걱정이 되었다. 어쨌든 아이에겐 뜻밖에 테스트를 보느라 고생했다고 이야기를 해줬다.


미국에선 워낙 일처리가 늦는 편이다. 프로그램을 신청한 지 거의 두 달이 다 된 지난주에 본 아이의 테스트. 당연히 결과를 받는 시점도 한 달은 족히 걸리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테스트 결과에 대한 이메일을 받았다! 지난주에 테스트를 받았는데 벌써 결과가 나오다니! 긴장하며 이메일을 열었다.


‘이 이메일엔 영재 프로그램 신청에 대한 결과 보고서가 첨부되어 있다. 네 아이는 프로그램에 적합 결과를 받았다.’


다행이다. 처음 든 생각은 ‘다행이다’였다. 아이가 무슨 테스트인지 알고 테스트를 봤기 때문에, 만약 프로그램에 들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아이가 실망하게 될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가 프로그램에 들어가고 싶어 해서 신청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런 일을 겪으면 뭔가 줬다 뺏은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메일에 첨부된 결과보고서에는 여러 가지 측면에 대한 결과 보고가 적혀 있었다. 아이가 지난주 본 테스트는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아이큐 검사인 ‘아동용 웩슬러 지능검사’와 ‘아동용 웩슬러 개인 성과 검사’였다. 지능검사에서는 지능지수가 높다는 결과는 받았지만, 대단히 높은 수준은 아니라고 나왔다. 아이큐만으로 재능 프로그램에 들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뭐지? 우리가 알고 있는 통상적인 영재 프로그램에서는 지능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여기기 쉽다. 영재 프로그램에 들 정도의 지능이 아니라고 하면 당연히 영재 프로그램에 못 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인데, 어떻게 된 거지?


계속 결과 보고서를 읽다 보니, 바로 이어지는 ‘웩슬러 개인 성과 검사’에서 아이가 좋은 성과를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놀라운 사실은 읽기/쓰기/수학의 세 개 분야 검사에서 쓰기의 점수가 가장 탁월하게 나왔다는 점이다. 당연히 언어적인 영향을 가장 적게 받는 수학이 성과가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우리 아이가 영어를 시작한 지는 고작 1년 6개월. 한국에서는 영어의 측면에서 특별할 것이 하나도 없는 아이였다. 지능검사와 성과검사 모두 영어로 봤는데, 이런 결과를 받아 든 것이다!


최종 결과에는 아이가 여러 가지 재능 중에 창의 학습 분야와 심화 학습 분야에 재능이 있어, 해당 프로그램에 적합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어안이 벙벙했다. 물론 지난 글에서도 이야기했듯, 미국 학교의 영재 프로그램은 한국보다 더 폭넓은 대상에게 열려있는 편이어서, 한 학년에 두세 명의 아이들이 프로그램에 들어가 교육을 받는다고 했다. 그렇긴 해도 괜히 아이가 대견하고 눈물이 나고 그런 게 사실이다.


아이가 학교에 간 사이 아내와 내가 결과를 받았기에, 아이에게 어떻게 이야기해 주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영재 프로그램에 들어갔다고 칭찬을 너무 하게 되면, 영재 프로그램에 들어간 것은 잘한 거고 아니면 못한 게 되는 것처럼 느낄까 봐 걱정됐다. 최대한 담담하게 결과를 전하돼, 테스트 보느라 고생했다고 하는 정도로 이야기하기로 결론 내렸다.


아이에게 결과를 알려줬다. 최대한 담담하게. 그리고 시험 보느라 고생했다고. 그런데 아이는 꽤나 좋아하는 눈치다. 테스트를 보면서 그 프로그램에 들어가고 싶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공부를 더하게 되는 프로그램인데 들어가고 싶어 한다니, 그것도 참 신기했다. 영재 프로그램에 들어간다고 특별히 달라지는 것은 없다. 프로그램 수업도 방과 후에 따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윙 클래스라고 수준별 학습, 혹은 특별활동 하는 시간을 이용해 수업이 이뤄진다고 한다.


자랑스럽다. 하지만 걱정도 된다. 부모로서 그저 지금처럼 즐겁게 학교 생활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자립적이고 독립적인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바랄 뿐이다. 이 프로그램이 그런 과정에 도움이 되지, 방해가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Photo by Jessica Lewis � thepaintedsquar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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