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26일(이주 546일 차)
미국은 큰 나라다. 땅이 넓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꽤나 넓은 땅에 지어진 주택에 산다. 미국으로 이주하는 가정들도 대부분 주택으로 거처를 정한다. 아무래도 금액적으로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대도시의 도심을 제외하면 아파트나 콘도미니엄이 많이 없기도 하다. 그래서 한국인의 시선에서 보자면 으리으리한 집에 입주해서 사는 한국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처음 미국으로 이주할 때 한국에서 집을 계약해야 했는데 연고가 없는 도시에서 집을 구하다 보니 어려운 점이 많았다. 오래된 도시의 주택을 덜컥 렌트 계약 했다가 많은 불편함을 겪을 수 있어서, 고심하다가 임대 시무소에서의 관리가 비교적 철저한 아파트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아직 한 번도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한 동네, 환경, 기후에도 적응하기 바쁜데, 집까지 예측 불가능한 건 상상하기 힘들다. 거기에 방 두 개짜리 아파트로 가더라도 당시 살고 있던 21평짜리 아파트보단 훨씬 넓었다.
거기에 도심 외곽에 위치하고 있어 녹지도 충분하고 여러 편의시설도 잘 되어 있다. 지난여름 우리를 즐겁게 했던 수영장이나, 내가 일주일에 두 번 꾸준히 가는 피트니스 센터, 비싸긴 하지만 손님들을 부를 수 있는 클럽하우스까지 있다. 뿐만 아니라 집에 뭐가 고장 나거나 문제가 생기면 직원들이 와서 다 고쳐준다. 미국에선 수도 문제나 수리 문제가 진짜 큰일인데, 그런 불편함을 피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처음 미국 이주하면서 아파트로 집을 정하는 것이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았다.
하지만 단점도 분명했다. 일단 미국의 아파트가 한국의 아파트처럼 주거 환경으로 최적화되어 있지 않다. 평면이 한국처럼 편하게 되어 있지 않은 데다 남향, 서향처럼 한국에서 고려되는 채광과 관련된 부분에 전혀 고려되지 않게 설계되어 있다. 창도 한쪽으로만 나 있어서 환기도 잘 되지 않는다. 층간소음, 벽간소음도 심해서 옆집의 싸움이나 노랫소리도 고스란히 들린다. 원래 소음에 민감한 편은 아닌 데다, 우리도 아이가 있는 입장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나는 조심하고 남에겐 관대하게 대하고자 하긴 한다. 그래도 애한테 뛰지 말라고 조심시키고 이러는 건 조금 스트레스였다.
어느 순간부터 아파트를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물밀듯이 일어났다. 그래서 부동산 앱을 보면서 주변의 다른 집들을 눈팅하면서 갈만한 곳이 있나 살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여러 조건이 가로막았다. 아내가 대중교통으로 학교를 오갈 수 있으면서, 아이는 전학을 가지 않고, 가격도 지금 수준을 넘어가면 안 되는. 가족 구성원이 많으면 충족해야 할 조건들도 많아진다. 돈만 있으면 다 해결되지만, 없으니 뭐.
그냥 그렇게 포기하고 있었는데,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다른 아파트 단지에 방 두 개짜리 타운하우스가 나온 것을 발견했다!
타운하우스는 아파트에 비해서 훨씬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으면서도, 아파트의 장점은 대 그대로 가져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 마침 가격도 지금 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거기에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와 관리 회사도 같아서 약간의 이전비용만 지불하면 임대 계약 완료 여부와 관계없이 이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집은 잡아야 해!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버렸다. 그래서 아내에게 이 집을 보러 가자고 이야기했다. 그제야. 이게 생각보다 큰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난 이미 이사 가는 상상을 해버렸고, 아내는 집을 보는 거고, 결정은 나중에 하는 거고 이런 마음이다. 이런 생각의 간극이 갈등을 일으킨다.
온라인으로 집 투어 신청을 하고 방문했다. 관리사무소 직원은 친절하게 임대 신청 절차와 이전 신청, 그리고 비용과 관련한 부분을 모두 알려주고, 우리에게 지금 현재 매물로 나온 타운하우스를 보여줬다. 집은 아담하니 괜찮았다. 지금 아파트보다 고작 한두 평 넓은 정도 수준이지만, 집이 두 개층으로 나뉘어 있으니 조금 좁아 보이기도 했다. 조금 특이했던 건 뒷마당이 위층에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작은 방에. 이것도 문제를 야기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은데 모든 게 완벽하게만 느껴졌다. 아파트가 아닌 것만으로.
직원이 최종적으로 가격과 임대 신청 방법을 알려주고 신청서를 작성해 오겠다고 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다 좋았는데 작은 방이 뒷마당으로 연결되는 것을 걸려 했다. 이 단지는 뒷마당은 다른 집들과 공유하고 있어서 약간 외부에 오픈되어 있는 상태인데 어쩌면 잠정적으로 아이의 방이 될 것이 분명한 작은 방이 그 뒷마당과 연결되는 것이 안전상 문제가 있어 보였던 것이다.
나는 이미 마음속으로 이 집으로의 이사가 이미 정해졌는데 아내가 딴지(?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를 거니 기분이 불쾌해졌다. 문제는 하나가 더 있었으니, 딸아이도 이 집을 본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아이도 주택주택 노래를 불렀었는데 타운하우스로 이사를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잔뜩 들떠있었는데, 뭔가 틀어진다는 생각을 하니 불안해했다. 그러더니 결국 완전 아기와 같이 폭풍 오열을 하며 토라졌다. 나도 홀로 기분이 상해 버렸고.
사실 아내 입장에서야 이사를 간다고 해도 이제 집 하나를 본 건데 두 부녀가 그 집 안 가면 큰일 날 것처럼 구네 어이가 없었을 거다. 결국 그날 밤 장시간의 대화를 통해 잘 이야기를 봉합하고 안전에 대한 대책을 강구한 뒤 이 집으로 이사를 가기로 결정했다. 나는 앞으로 이런 일들을 결정하기 전 충분히 논의하기로 했고, 너무 절박하게 덤비지 않기로 약속했다. 아이도 본인이 원하는 것이 있을 때 명확한 이야기를 하면서 설득하는 습관을 들이기로 했다.
임대 신청을 하고 신청 수수료도 납부했다. 아직 확정이 된 건 아니지만, 결정된다면 3주 후 우리는 이사를 간다. 또 한 번 성장하고 한 스텝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