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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수험생 jcobwhy Jan 25. 2024

혹독한 미국의 날씨와 학교 폐쇄

2024년 1월 19일(이주 539일 차)

나의 한국 생활은 늘 미세먼지 때문에 곤욕이었다. 화창한 햇살과 파아란 하늘을 가리는 희뿌연 먼지는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을 가릴 뿐만 아니라,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기도 했다. 늘 비염과 아토피를 달고 살았어야 했고, 미세먼지라도 걷히는 날이면 서둘러 환기와 함께 외출 준비를 하기에 바빴다.


이십 대 후반과 삼십 대 초반을 캘리포니아에서 보냈던 나는 십 년의 한국 생활 뒤 이번에 다시 미국에 이주하게 되면서, 그 화창하고도 늘 푸른 캘리포니아의 날씨를 접하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물론 이주하게 되는 지역은 달랐지만, 미세먼지에서 탈출한다는 것은 곧 그 화창한 날씨를 다시 보게 된다는 것과 다름없다… 생각했다.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듯, 미국은 나라라기보다는 광활한 대륙에 가깝다. 따라서 날씨와 기후도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시베리아와 견줄만한 추위가 혹독한 지역이 있는가 하면, 영상 10도의 날씨에 춥다고 ‘캐나다구스’를 꺼내 입어야 하는 지역도 있다. 미세먼지에서 탈출한다고 해서 화창한 날씨를 기대한다는 것은 거의 망상에 가깝다고 봐야 하지만, 그랬다.


내가 이주한 지역은 미드웨스트 지역의 동쪽 끄트머리에 자리 잡고 있다. 미드웨스트라는 이름에 미국 영토 서쪽 어디에 위치하고 있을 것 같지만, 차라리 동쪽에 가까워서 한국 사람들에게는 무척이나 헷갈린다. 굳이 비교하자면 우리나라 영서 지방이 영토에 서쪽에 있지 않은 것과 같다. 하여튼 전체적으로 보자면 미국 대륙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이 지역은 사계절이 뚜렷하지만 겨울이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10월부터 슬금슬금 겨울이 시작돼 4월까지는 눈이 올 정도로 겨울이 춥다. 얼마 전 글에서 기후 위기 때문에 따뜻한 겨울이 지속된다 이야기하긴 했지만, 사람은 함부로 입을 나불거리면 안 된다.


처음에 이곳에 오고는 더 나은 날씨를 기대했던 나 자신이 너무 미웠다. 너무 춥고, 비도 많이 오고, 늘 흐리고! 거기에 어디 먼 지역에서 산불이라도 나면 미세먼지급 연기로 몇 날며칠을 고생해야 한다. 그런데 지역 사람들은 이곳이 날씨가 좋아서 너무 좋단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란 말인가. 이렇게 고통스럽구먼!


하지만 내셔널 뉴스를 몇 달만 보면 이곳이 왜 날씨가 좋은 곳이라고 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뉴스를 보다 보면 플로리다는 허리케인이 쓸고 가고, 캘리포니아엔 지진이 나고, 다른 미드웨스트 지역은 폭설로 고립되었다 한다. 뉴욕도 이따금씩 닥쳐오는 허리케인으로 쑥대밭이 되곤 하는 뉴스를 지켜보다 보면 그런 자연재해가 없는 곳이 날씨가 좋은 곳이구나 하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최근 기후 위기로 인해 겨울에 한 번씩 북극 한파가 내리치는 일이 생긴다. 그 여파로 우리 지역에도 이번 한 주간 아주 혹독한 추위가 찾아왔다. 영하 15도에 육박하는 추위에 눈까지 왔다. 물론 영하 15도라는 기온도, 이번에 온 눈의 적설량도 처음 겪어보는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도심에서 벗어난 곳에서 살다 보니 제설이라든지 이런 부분은 한국만큼은 빠르지 않기 때문에 불편한 점이 있는 정도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아이의 학교가 폐쇄됐다. 전에는 당일 새벽에 폐쇄가 결정됐었는데, 이번엔 전날 아이들이 하교할 때 선제적으로 결정됐다. 사유는 아이가 등교를 하는 시간에 많은 양의 강설이 예보됐다는 사유였다. 수요일에도 이미 한 번 두 시간 지연 등교가 결정된 바가 있었다. 그날도 적지 않은 눈이 내린 건 사실이지만 학교를 가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었는데 지연 등교를 했고, 오늘은 눈이 내리기도 전에 폐쇄를 결정했다.


한국에서 미국의 혹한 뉴스를 보다 보면 학교 폐쇄니 지역 고립이니 해서 무서운 단어를 듣는 경우가 많다. 나도 뉴스에서 익숙한 단어로 쓰다 보니 폐쇄라는  단어를 썼지만, 그냥 스쿨 클로징(school closing)이다. 진짜 혹독한 기후로 고립되거나 폐쇄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보다 확실한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취하는 조치다. 학교가 폐쇄되고 실내 생활 권고 같은 조치가 취해져도 아이들은 신나서 눈 쌓인 언덕에서 썰매를 타고 놀고, 어른들도 기본적인 생활을 한다. 물론 출근도 재택으로 돌리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말이다.


유튜브에 ‘강한 자만 살아남았던 시절’이라면서 8-90년대 홍수에도 출근하는 모습을 담은 뉴스 클립에 경악할 때가 많다. 그 시절은 멀어 보여도 우리 부모가 우리 나이 때, 우리가 딸아이 나이 시절이다. 여기 기준으로만 보자면 과연 한국에서 이런 날씨에 학교나 회사가 유연하게 등교, 출근 등을 조정하는지 생각해 본다. 미국에선 워낙 재난 수준의 혹독한 날씨가 있기 때문이라 그렇다 치부할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한국에 그런 기후 재난이 없다고 말할 수 있나 모르겠다. 태풍과 홍수, 지진, 폭설이 정상적인 생활을 호시탐탐 방해하고 있지 않는가. 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두고 철저한 대비와 함께 유연하게 대응하는 프로토콜이 잘 정착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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