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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수험생 jcobwhy Jan 17. 2024

미국에서 친구와 단둘이 극장 간 딸

2024년 1월 12일(이주 532일 차)

아이가 첫걸음을 뗄 때, 처음 어린이집에 가서 부모와 떨어질 때, 그리고 학교에 등교할 때. 양육을 하면서 가슴이 뭉클하면서도 조마조마한 감정이 드는 시기다. 저 첫 경험이 얼마나 마음이 불안할까 걱정이 되면서도 벌써 이만큼 컸구나 대견해지기도 하고, 또 나로부터 한걸음 멀어지는 자녀의 모습을 보며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도 하다. 아이가 자라지 않았으면. 지금처럼 아기로만 내 옆에 있어 줬으면 하고 말이지.


사춘기 나이에 다다르게 되면 아이 시절의 첫 경험과는 수준이 다른 처음의 일들을 겪게 된다. 그중에 하나가 홀로 극장에 가는 것이 아닐까? 친구들과 약속을 하고, 보고 싶은 영화를 고르고, 결제를 하고. 부모의 도움 없이 처음으로 뭔가 어른스러운 일을 하는 느낌이 들지 않았나 싶다.


내가 처음으로 부모의 도움 없이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간 것은 중학교 때가 아니었나 싶다. 아무래도 우리 시절의 극장은 지금과 같이 깨끗한 시설과 건전한 문화를 자랑하던 곳이 아니었다 보니 그 시기가 더 늦은 것은 아니었나 싶다. 멀티플렉스 극장도 없었고, 매표소 앞은 담배 연기가 가득하던 곳이었다. 물론 더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뉴코아’에 가서 ‘우뢰매’도 보고 ‘서울 극장’에서 ‘나 홀로 집에’도 봤다. 하지만 부모 없이는 중학교 때가 처음이었다.


탐 크루즈 형의 젊은 얼굴이 미친 듯이 매력적인 미션 임파서블을 보러 친구들과 충무로의 ‘명보 극장’에 갔다. 커다란 화면에서 빠르게 진행되는 액션, 화면 오른쪽에 세로로 그보다 빠르게 지나가는 자막 등도 놀라웠지만, 그 무엇보다 4호선 충무로 역에서 내려서 ‘명보 극장’까지 가는 그 길이 너무 설레면서도 긴장되었던 그 감정과 기억이 비교적 오래 남았다.


우리 아이에게도 그 시기가 왔다.


5학년이 되면서 아이에게 단짝 친구 무리들이 생겼다. 4학년 때도 친했던 친구들이지만, 그때는 아이도 적응에 온 신경이 더 가던 시기였다. 그런데 몇 주 전부터 단짝 친구 한 명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가고 싶다고 했다. 작년에도 친구와 영화를 보러 간 적은 있었다. 같은 시기에 미국으로 이민 와서 우리 아파트에 같이 살았던 마케도니아 식빵 누나 V의 아들 T와 함께였다. 하지만 그때는 나도 같이 영화를 봤다. 이번엔 단 둘이 보고 싶다는 것. 아내와 나는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사실 아내와 나는 이런 걸 기대하는 부분이 있었다. 미국에서야 초등학교 시절까지는 아이들끼리만 돌아다니는 것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어서 아이가 중학생이 되어서 친구들과 함께 쇼핑몰에 데려다주면 한두 시간 재미있게 놀고 다시 데리고 오는, 그런 미국식으로 노는 시간을 갖는 모습을 상상해 왔다. 물론 아직 초등학생이기 때문에 쇼핑몰을 가고 그런 건 안 되겠지만, 극장에서 영화는 볼 수 있으니깐. 뭔가 아이가 잘 자라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설레기도 하고, 아이가 이곳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느낌에 뿌듯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침 금요일이 학교가 쉬는 날이었다. 다음 주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데이’와 묶인 미니 방학이라고 할까? 티켓은 내가 예매해 주었다. 함께 시간을 정하고(!) 일루미네이션이 만든 Migration(한국제목: 인투더월드(?))을 예매했다. 같이 먹을 팝콘도 샀다. 그런 뒤, 모바일 티켓을 아이 휴대폰에 저장시켜 주었다. 극장까지는 나도 함께 가니까 내가 티켓을 보여줄 수도 있지만, 아이가 직접 티켓을 제시하게 해주고 싶었다. 시간 약속은 아이가 친구와 직접 문자를 주고받으며 만날 시간을 정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두 개의 상영 시간을 놓고 고민하다가 더 빨리 만나는 시간으로 티켓을 예매했는데, 아이가 어떤 착각을 했는지 뒤의 시간으로 시간 약속을 했다. 상영시간이 30분도 안 남았는데 천하태평으로 준비도 안 하고 있길래 물어봤더니 뒤의 시간으로 알고 있었다. 시간도 계속 일러주고 모바일 티켓도 전달 주었건만.


일단 친구에게 빨리 전화를 해서 약속을 다시 잡았다. 우리는 극장이 집 앞에 있어서 그냥 나가기만 하면 되지만, 친구네는 극장에서 조금 거리가 있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두세 가지 당부했다. 약속을 할 때는 시간과 장소를 잘 확인해야 한다는 것과 실수를 했을 땐 친구에게 꼭 미안하다고 해야 한다고. 처음 하는 홀로 극장 나들이에서 실수가 나왔다. 하지만 괜찮다. 성장하는 과정에서의 라이프 레슨이다. 


극장에 가서 친구와 만났다. 아이는 친구에게, 그리고 친구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는 미리 선구매한 팝콘을 들고 극장 직원에게 직접 모바일 티켓을 보여줬다. 지금까진 나, 아내와 함께였지만 지금부터 아이 홀로 간다. 상영관들이 늘어선 복도를 따라 아이가 멀어진다. 아이의 뒷모습은 어쩐지 긴장하면서도 설레는 모습이다. 그렇게 홀로 걸어 상영관을 찾아 들어간다. 시야에서 벗어나자 아내는 불안한지 깨끼발을 들고 아이가 잘 들어가는지 살핀다. 극장 직원(그래 봐야 갓 고등학교 졸업생)이 그 모습을 보고는 잘 들어갔으니 걱정 말라고 말하며 엄지 척을 해 준다. 고마웠다.


기분이 이상했다. 아이가 또 한 단계 성장한 느낌이다. 벌써 사춘기에 접어든 딸아이는 이제 하루하루 우리와 멀어질 거다. 성장이라는 것은 자립이고 독립이니까. 걱정이다. 홀로 극장의 복도를 걷는 것만 보아도 이렇게 눈물이 나는데. 더 커서 아이가 홀로 세상을 향해 내딛는 그 모습은 얼마나 대견하고 뭉클할지. 나도 마음의 준비를 서서히 해야 하나 보다. 한 걸음 물러서서 가장 큰 버팀목이 되어줄 준비 말이다. 


Photo by Jeff Pierr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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