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주 차
12/9 월
아침에 부엌천장에서 물이 떨어졌다. 적은양이 아니었다. 딸이 발견했다.
우왕좌왕할 수 있는 상황였는데 일단 바가지로 물을 받치고 물바다가 된 카운터와 바닥을 닦았다. 그리고 관리사무소 앱으로 수리신청을 했다. 아이가 등교한 뒤 30분 정도 지나서 관리직원이 방문했다. 천장을 뜯어내고 물이 새는 파이프를 찾아내 수리하고 청소를 한 뒤 제습기를 틀고 돌아갔다. 내일이나 모레 천장을 다시 덮겠단다.
내일이나 모레. 내가 지원하는 학교 학과들의 지원 마감일이다. 엄청 어수선한 가운데 지원서 접수를 할 뻔 했는데, 다행히 지난주 이미 지원을 끝낸 상태다. (물론 그 지원한 날에도 조국에선 반란이 일어났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이다. 마감일까지 질질 끌지 않길 잘했다. 마감일이 남았는데 지원 접수를 하는 것에 대해 걱정이 있었는데. 지금은 잘했다 싶다.
참 별일이 다 있다.
12/10 화
대학원 지원을 마치면 홀가분하고 이제 여유를 즐길 수 있겠다 싶었는데 전혀 아니다. 일단 아내가 오늘까지 학회 페이퍼 마감이어서 꼼짝도 못하는데다가, 한국의 혼란이 너무 커서 숨죽이고 지켜보는 것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한국과는 시차가 13시간으로 뒤집혀 있다보니, 계엄 당일 뉴스를 거의 실시간으로 들어야 했고, 가슴졸이며 모든 일들의 종결을 기다려야 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 국가의 위기가 끝나야 나도 마음을 한숨 돌리며 여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여튼 스스로 강하다 턱들고 입으로 떠드는 인간들 밥맛이다. 마치 강아지들이 이웃 강아지들에게 강해 보이려고 털세우고 잇몸 드러내는 꼴 같아 추해 보인다. 강한 것은 그런 게 아니다.
12/11 수
학교 지원을 마치고 나면 굉장히 무료하게 기다림의 시간이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루하루가 너무 다이나믹하다.
뉴스특보와 속보가 계속 이어진다. 집회 현장에 대한 영상을 보는데 너무 자랑스럽다. 8년 전에는 아이가 너무 어려서, 지금은 타국에 있어서 함께하지 못했는데, 그 자리를 채운 사람들에게 존경과 경의를 표한다. 그들의 응원봉과 케이팝에 눈물 흘리는 것을 보면 나도 이제 지나가는 세대가 되어가는 것이라 느낀다. 응원한다.
아마도 대학원 입시 결과를 기다리는 기간 동안이 매우 다이나믹할 것 같다. 모든 일이 잘 풀려서 대학원 합격 통지를 받은 후에, 대사관까지 수 시간 날아가서 투표하는 그런 멋진 상상이 현실화 되었으면 좋겠다.
12/16 월
다시 힘을 내서 규칙적인 생활, 생산적인 생활을 열심히 하려고 한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다시 여러가지 콘텐츠 생산도 해보려고 한다. 유튜브 영상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고, 글도 많이 쓰고, 사진도 찍고, 음악도 만들고, 그림도 그리고 싶다. 오히려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 걱정이다.
그래도 꾸준히 묵묵히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성과를 거두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즐기는 것도 필요하다.
하고 싶은 것들을 해보자. 딱히 내가 지금 달리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니까.
* 이렇게 미국 대학원 박사과정 지원을 모두 마쳤어요. 사실 아직도 지원을 받는 학교들이 많은데, 저는 학교 진학을 위해 이주는 하는게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제가 지원할 수 있는 학교의 지원 마감은 모두 끝난 상태랍니다.
이제 긴 기다림의 시간인데요. 합격자 발표까지는 입시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없어, 일지를 계속 쓰는 게 의미가 없을 것 같더라고요. 차후에 합격자 발표가 나게 되면 그때 소식을 알려 드리도록 할게요. 앞으로는 가끔의 일기와 더불어 내러티브 작품의 글을 작성하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많은 기대 부탁드려요~ 꼭 좋은 소식을 들고 돌아올 수 있도록 응원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