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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수험생 jcobwhy Oct 04. 2022

희망 회로

와이프 따라 미국 간 남편 15 - 이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내가 얼추 대학원 지원을 마무리하고, 합격 여부, 혹은 인터뷰 요청 연락만을 기다리는 시간이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학교를 쓰기만 하면 다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어디는 가면 불편해서 못 산다며 지원서를 쓰지 말라고 하기도 하고, 어디는 학교가 싼 티 난다며 지원을 꺼려하기도 했다. 이렇게 쓴 모든 학교에서 다 합격하고 나면 어디를 가야 하나 행복 회로를 돌려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그렇게 오래가지는 않아서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더 많은 학교에 지원하지 않은 것을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된다.


다른 한 편으로는 미국을 가기로 결정을 하면서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었지만, 나의 경력 단절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을 해야 했다. 이제는 아내의 합격을 기다리는 입장이 되고 나니, 나의 퇴사도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그런데, 현실감이 없을 때는 그게 뭐가 그렇게 어렵나 싶었던 것이 막상 시간이 다가오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미국 학생 비자는 철저하게 공부만을 위한 비자여서 학생 비자를 가지고 일을 하는 것이 불법이다. 이게 학생 본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배우자도 해당되는 것이어서, 아내의 학생 비자는 물론 나의 배우자 비자로도 미국에서 일을 할 수 없다. 물론 아내가 박사과정으로 가게 되면 통상적으로는 학교에서 학비 지원과 함께 연구비 지원이 나오기 때문에 생계 자체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지만, 경력 단절은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결정할 당시에도 이미 이런 환경인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난 경력 단절이 되는 거구나’ 하면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불쑥 아내가 그런 말을 꺼냈다.


‘사장님한테 미국 주재원으로 보내달라고 해.’


‘주재원?’


‘응. 왜 너희 회사도 미국 진출하고 하지 않아?’


최근 몇 년간 유튜브와 넷플릭스 등 인터넷 환경에서 회사 작품과 상품이 인기를 얻어서 해외 프로모션이 많아지기는 했다. 사업팀 전무님이 모 회사에서는 대리급 직원이 미국에 넘어가서 성공적으로 지사를 정착시켰는데, 우리 회사에선 그런 배포가 있는 친구가 없다며 안타까워하신 적도 있었다.


‘그렇긴 한데, 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프로듀서잖아.’


‘일을 더 키울 수도 있는 거지. 한미 합작 이런 거 있잖아.’


그러면 좋겠다는 생각은 든다. 아내 학생 비자의 배우자 비자로 가면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지만, 만약 회사에서 그런 명목으로 보내준다면 나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친놈 소리 듣는 거 아냐?’


‘아니 뭐 어때? 어차피 그만둘 건데. 아주 작은 확률이라도 그렇게 될 수 있으면 너무 좋잖아.’


그래. 그렇게 되면 정말 좋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팬데믹 전까지 회사에서 미국 출장이 잦아지기는 했다. 만약 우리의 바람대로 캘리포니아 쪽으로 정착할 수만 있다면 애니메이션 산업이 폭넓게 자리 잡고 있는 캘리포니아 지역에 우리 회사에도 좋은 기회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았어. 캘리포니아 학교 합격하면 사장님께 얘기해 볼게.’


아내는 실리콘밸리에 있는 유명 공대에서 공부를 시작하고, 나는 여러 플랫폼 회사나 스튜디오와 미팅을 잡고 다니면서 여러 사업 제휴나 협력을 이끌어낸다. 캘리포니아의 여유 있는 생활환경에서 아이도 다양한 경험을 하고, 나와 아내는 각자의 커리어의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생각만 해도 너무 멋있잖아!


어, 근데 내가 출장을 가야 하면 어쩌지? 아이는 누가 보지? 아내가 박사과정을 하면서 그렇게 아이를 볼 수 있을까? 한국이랑 미팅은 어떻게 하지? 한국에 너무 자주 들어오라고 하는 거 아냐?


잠깐. 너무 많이 갔다. 그런 일은 지금 생각할 필요가 없잖아. 일단 아내 학교부터 합격하고 나서.


오버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상상만 하면 미소가 지어진다. 꼭 그렇게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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