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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수험생 jcobwhy Oct 17. 2022

희망이 산산조각 나다

와이프 따라 미국 간 남편 17 - 우리 정말 갈 수 있을까?

사람은 자기 스스로 만든 암시에 쉽게 잘 속아 넘어간다. 계속 스스로 어떠한 믿음이 있으면 정말 그렇게 된다고 믿는다. 아니, 그렇게 됐다고 믿는다. 나와 아내가 그랬다. 오랫동안 고생해서 유학을 준비해서인지, 이제야 겨우 학교 지원을 모두 마친 상태였지만 이제 곧 합격자 발표를 줄줄이 받을 거란 기대가 머릿속을 지배했다. 나는 나대로 이전 글에서 썼듯, 남몰래 회사 미국 지사 설립, 혹은 크리에이터 활동 등을 하겠다는 계획을 새운 뒤, 벌써 그렇게 되었다고 나 스스로 믿은 듯했다. 아직 사장님께 말씀 한 번 드린 적이 없는데, 혼자서는 벌써 그렇게 하기로 한 사람인 듯 생각이 들었다. 물론 머리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아도 기분만은 그랬다.


새해가 밝고 이제는 본격적인 기다림의 시간이 되었다. 새로운 2022년엔 우리의 삶이 180도 바뀔 것이라는 두려움과 설렘에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처음에 굳건했던 장밋빛 미래에 대한 기대도 점차 흐려져 하루에 한 번, 이틀에 한 번 메일을 체크하면서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며 기분이 널뛰기를 했다.


‘아니, 그렇게 많은 학교를 썼는데, 나 하나 받아줄 학교가 없겠어? 합격을 하느냐 못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장학금을 얼마나 줄 것인가가 문제야.’


어떤 날은 완전히 반대다.


‘난 완전히 바보야. 쓰레기야. 나 같은 사람을 누가 받아주겠어? 이제 난 끝났어.’


하루 걸러 하루씩 아내의 기분이 널뛰는 탓에 집안의 분위기를 종잡을 수가 없었다. 뭐, 너무 당연한 거라 부디 좋은 결과만이 있기만을 바랐다. 하루, 이틀, 일주일, 보름, 한 달이 지나도 특별히 연락이 오는 곳이 없었다. 학교 지원을 준비하면서 온갖 대학원 입시 정보 사이트와 학교의 정보 이메일을 구독한 탓에, 수많은 학교에서 이메일이 날아왔지만, 정작 좋은 소식, 합격 소식은 날아오지 않았다.


나는 메일함을 뒤지는 것이 하루 일과 중 하나가 되었다. 내가 유학하던 10년 점만 해도 합격 통지는 우편으로 했기 때문에, 당연히 합격 통지서는 우편으로 날아올 것이라 생각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우리나라보다는 아날로그적인 나라여서 아직도 많은 것들이 우편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런 우편도 날아오지 않았다.


며칠 후 퇴근하고 집에 왔는데, 아내의 표정이 어두웠다. 애써 괜찮은 척하고 있었지만, 분명 무슨 일이 있는 듯했다. 아이를 재우고 조심스럽게 묻자 그제야 이야기를 꺼낸다.


‘나 ㅇㅇㅇ 떨어졌어.’


ㅇㅇㅇ 학교는 아내가 가장 중점적으로 준비하던 학교였다. 우리가 너무 가고 싶어 했던 북 캘리포니아에 위치하고 있기도 했고, 아내의 공부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학교이기도 했다. 모든 지원서의 채널을 이 학교에 맞추어 준비했다. 나머지 지원 학교의 경우는 이 학교의 지원서를 바탕으로 조금씩 수정해서 작성했었기에, 충격이 꽤나 컸다.


‘자기야, 괜찮아. 다른 학교도 많이 지원했잖아. 열 군데가 넘게 지원했는데, 너의 진가를 알아주는 학교가 반드시 있을 거야.’


‘나, 다 떨어지면 어떡해? ㅇㅇㅇ는 정말 맞춤으로 지원서 썼던 곳인데.’


‘널 몰라주는 그 학교가 바보 같은 거야. 더 좋은 학교가 알아줄 거야. 조금만 기다려 보자.’


최선을 다해 위로해 주면서 희망을 이어갔지만, 마음의 충격은 꽤나 컸다. 특별한 근거도 없이 이 학교에 떨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모든 노력의 결과가 물거품이 되어 버린 것만 같았다.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지만, 오랫동안 생각하고 있던 플랜 비를 실행할 준비를 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들기까지 했다. 


아니다. 가장 고대했던 학교의 결과가 우리의 기대와 다르게 나오긴 했지만, 이제 고작 하나의 학교 결과만 받았을 뿐이다. 정말 아내의 진가를 알아주는 학교가 있을 것이다. 그걸 몰라주는 학교가 바보 같은 것이다. 플랜 비 같은 건 모든 결과가 다 나오고 나서 결정해도 늦지 않는다. 난 그냥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자. 이렇게 다짐하면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다.


Photo by Verne H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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