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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수험생 jcobwhy Oct 10. 2022

희망 회로 2

와이프 따라 미국 간 남편 16 - 분유값은 벌어야죠

중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장래 희망을 정한 후로 난 20년이 넘게 영상과 관련된 공부와 일을 하면서 살았다. 대학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방송국에서 조연출을 했고, 유학을 가선 영화과를 다니며 애니과 사람들과 단편 애니 프로듀싱을 했다. 한국에 돌아와선 누구나 다 아는 그 애니메이션 만드는 회사를 다니며 애니메이션을 기획 제작하는 프로듀서로 8년을 다녔다.


미국행을 결정하면서 아내가 공부하는 동안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을 해 봤는데, 앞의 글에서처럼 그런 작전(?)이 먹히지 않으면, 유튜브를 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사실 유튜브라는 매체가 내게 잘 어울리는 매체는 아니다. 학교를 다니던 시절엔 단편 영화만을 만들었다. 짜인 각본에 의한 연기를 찍고, 이를 기민한 편집으로 잘 만들어진 스토리를 전달하는 단편 영화는 유튜브라는 속도감 있는 영상 업로드가 생명인 유튜브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방송국에 다닐 땐 드라마를 했다. 물론 음악 예능 프로그램도 잠깐 했었지만, 내 옷을 입은 듯 편했던 장르는 드라마였다. 역시 오랜 시간의 고민으로 집필된 대본을 바탕으로 전문 연기자들의 연기를 영상에 담고, 이를 장시간 편집해 전파를 탔다. 애니메이션은 앞선 단편 영화나 드라마보다 제작에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장르다. 십분 남짓의 에피소드 한편을 만드는데 순수한 제작 기간만 3개월이 넘게 걸린다. 2년을 꼬박 작업해서 정규 편성 시즌 1개를 만드니 유튜브의 속도감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그래서 그런지 여유가 있을 때 개인 채널을 운영해 보려고 시도해 보아도 쉽지가 않았다. 영상을 예쁘게, 혹은 웰 메이드오 만드는 건 어렵지 않은데, 순발력과 기발함이 너무 떨어졌다. 영상을 만드는 기술보다, 매체에 맞는 기획력이 너무 떨어진 탓일 테다.


어차피 미국에 가게 되면 애니메이션 기획 일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을 거고, 나도 내 커리어의 전환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상황에 이른 것은 분명했다. 물론 한 우물을 계속 파는 것이 좋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미국에서 아내와 아이를 뒷바라지하는 동안은 아무런 발전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그럴 바에는 개인 미디어의 영향이 점차 늘어가는(이미 엄청 늘어난) 이 시점에 순발력과 기발함이 요구되는 유튜브와 같은 뉴미디어 기획자로 커리어 전환을 해보는 것이 어떨까 생각을 해 봤다.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면, 1~2년 꾸준히 작업하다가 수익화를 이루게 되고, 그 규모가 많지 않아도 흔히 하는 비유로 ‘아이 분유값, 학원비 정도’만 벌어도 너무 좋지 않겠는가? 꾸준히 작업하면 영상 제작 실력도 좋아지고, 나중에 아내가 공부를 마쳤을 때 한국에 돌아오거나 미국 영주권을 받으면 재취업의 기회도 더 많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무슨 채널을 하면 좋을까? 몇 가지 생각해 봤는데, 내가 애니메이션 전문가(?)니까 키즈 애니메이션 리뷰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보면 좋은 작품과 보지 않았으면 하는 작품을 부모들에게 소개해 주는 그런 콘텐츠 말이다. 요새는 아이들을 위한 콘텐츠가 워낙 많아 뭐가 좋고 나쁜지 잘 알기 어려운데, 그런 면에서 도움을 준다면 가치 있는 콘텐츠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또 미국 주부 남편 브이로그도 괜찮겠단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주부 생활을 하는 것도 신선하고, 미국 주부 생활에 대한 호기심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평상시 생활을 잘 영상으로 담으면서 다양한 미국 생활 노하우나 차이점들을 소개하면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했다. 다만 걱정이 되었던 건 얼굴이 노출되었을 때 별로 매력 없는 40대 남자의 모습에 관심을 가질까 하는 근원적인 의심이 들기는 했다. 


'뭘 그렇게 고민해? 그냥 다 해봐.'


'아니, 잘 생기지도 않은 40대 남자가 무슨 매력이 있겠어?'


'어차피 여자 시청자가 더 많아. 나이 많은 여자보다 나이 많은 남자가 나아.'


'곧 죽어도 내가 매력 있단 얘기는 안 하는구나.'


'난 거짓말은 못 해.'


아내는 지나치게 개인 신상이 공개되지 않는 선에서 무엇이든 찬성이라고 했다. 몰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없으면 타지 생활이 굉장히 어렵다는 건 나나 아내 모두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전까지는 생각만 하다가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된다고 포기했었는데 과감하게 도전해 보기로 했다.


아놔, 회사 주재원에 유튜버까지 하다가 너무 유명해져서 일상생활이 어려워지면 어쩌지? 이놈의 인기란~!


Photo by Anastase Marago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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