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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수험생 jcobwhy Oct 24. 2022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와이프 따라 미국 간 남편 18 - 근데, 해가 너무 늦게 뜬다

아내가 가장 가고 싶어 하던 학교의 불합격 통보를 받을 무렵, 내가 다니던 회사의 분위기가 묘해지기 시작했다. 새해의 연봉협상이 올해 들어 한 달 가까이 늦어졌다. 사장님께 각 직원에 대한 연봉을 보고 드렸는데, 아직 결재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흉흉한 소문도 돌았다. 새로운 해에는 성과 지표를 모두 수치화해서 절대 평가로 연봉 협상을 진행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당장 적용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점점 빡빡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연봉 협상에선 역대로 낮은 인상률을 기록했다. 수치로만 따지면 크게 차이 나지 않았지만, 뭔가 일 년 동안 진행한 업무에 대한 질책을 받는 듯한 느낌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일 년 동안 진행했던 업무에서 진도가 나가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았던 터라 자격지심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간에 뭔가 회사 안에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었다. 전과 같은 탄탄대로는 아니라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아내의 회사에서도 걱정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내의 회사에서도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가장 큰 변화 낌새는 아무래도 재택이 끝날 지도 모른다는 소문이었다. 아내 회사는 우리 집에서 두 시간 거리에 있었는데, 재택근무였기에 그동안은 아무 걸림돌이 없었다. 하지만 만약 재택근무가 종료된다면 회사를 그만두어야 할지도 모르는 처지였다.


거기에 아이의 학교는 새 학기에 등교 정상화가 예정되어 있었다. 지난 2년 동안 제대로 등교를 한 날짜는 손에 꼽았다. 그 사이 아이는 이사와 함께 전학을 왔고, 제대로 적응할 기회도 없었다. 원래 알던 친구도, 새로 사귄 친구도 없이 새 학년이 되면서 매일 등교를 하게 되었다. 새 학년의 학업도 그렇고, 교우관계도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내의 통근 시작과 아이의 등교 정상화는 양립할 수 없어 보였다.


새해가 되고 반년 정도가 지나고 나면 미국에 갈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 대한 전조가 보여도 대책을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나는 그저 남은 반년 동안 (요즘 유행하는 단어인) ‘조용한 퇴직’ 상태로 열심히 벌어 유학 생활의 쌈짓돈으로 사용할 생각만 했다. 


그런데, 아내가 받은 첫 불합격 통보는 나와 아내가 꿈꾸던 장밋빛 미래가 우리의 미래가 아닐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갖게 만들었다. 미련을 갖지 않았던 회사 업무에 더 집중에서 성과를 올려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아내의 회사에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갖기도 했다. 아이에게는 학업을 위해 학원을 더 보내고, 학교 활동도 늘려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하루 이틀 일주일 사이에 모든 것을 다 이룬 것 같았던 희망찬 생각들은, 모든 것을 다 실패한 패배자의 생각들로 바뀌어 버렸다. 아내와 다투는 일도 많아졌고, 자그마한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하루는 몹시 다툰 어느 날, 서로의 얼굴을 보는데 너무 절망적인 표정을 느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아직 미래에 대해 결판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새 불합격 통보를 받은 학교는 한두 군데 더 늘어 있었지만, 십수 군데를 지원한 가운데 받은 두세 군데의 결과일 뿐이었다. 아직도 열 개가 넘는 학교의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이전 글에서 썼듯 플랜 비, 플랜 씨도 가지고 있었다.


일어나지 않은 불행에 잠식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말해도 한숨은 늘어가고, 밤에 잠 못 자는 날은 늘어간다) 잠잠하게 기다리며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인만큼,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하지 않았는가.  분명 우리 가족에게 가장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Photo by Orkhan Farmanli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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