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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수험생 jcobwhy Oct 28. 2022

해는 뜬다!

와이프 따라 미국 간 남편 19 - 결국

‘자기야’


‘응?’


‘나, 붙었나 봐’


‘응?’


저녁 8시, 집안일을 모두 마친 뒤, 아내는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며 휴대폰의 이메일을 정리하고 있었고, 난 그 옆의 실내 자전거에 올라 운동을 하고 있었다.


‘ㅇㅇ대학의 박사과정 담당자인데 축하한다는데?’




아내가 캘리포니아의 꿈꾸던 학교에서 불합격 소식을 들은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나는 7년 근속으로 받은 리프레시 휴가로 집에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 아이와 함께 시간도 보내고 아내가 재택근무에 집중할 수 있게 하기 쓴 휴가였다. 아이가 방학 동안 집에만 있다 보니 아내의 업무가 많이 어려워진 상황이었는데, 학기가 시작되면 그나마 학교 가 있는 동안은 일이 수월해질 수 있을 것 같아, 방학 동안에 아내가 맘 편히 일할 수 있게 해 주기 위해서였다.


새해가 시작될 때만 해도 미국에 가는 새로운 인생에 대한 희망에 부풀어 있었는데, 불과 한 달여 만에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은 희미해져 가고 원래의 지친 삶으로 다시 회귀하고 있었다. 그동안 노력하고 도전해서 결과가 눈앞에 왔다고 기대해왔던 희망은 그저 막연한 망상에 가까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 번 더 꿈이 좌절되는구나 생각했다.


그때 이메일을 받았다. 그녀에게 합격을 축하한다는 학과장의 이메일. 몇 개의 이메일을 거슬러 올라가니, 학교의 공식 합격 통지 이메일을 찾았다. 서두의 글에서 썼듯 합격을 기대했던 학교에서의 불합격 통지를 받은 후, 아내는 몇 주간 메일 확인을 하지 않은 터였다. 


아내가 합격했다는 학교는 원래 지원하려던 학교 리스트에 없었던 학교였다. 아내의 전공 학과에서 세계 1, 2위를 다투는 학교라고 한다. 그녀는 언감생심이라며 이 학교의 지원을 망설였지만, 마감일 며칠을 앞두고 용기를 내어 썼던 학교였다. 최초 지원할 학교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학교. 만약 아내가 끝까지 용기를 내지 못하고 이 학교를 지원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렇게 지원할 학교를 고민하고, 학교의 소재지를 고민하던 우리에게 한 번도 고려하지 않았던 새로운 학교와 지역에 가기 위해 2022년 상반기 동안 준비를 해야 했다. 그제야 뒤늦게 미국 동부 펜실베이니아 지역에 대해서 검색했고, 기후와 분위기, 생활환경 같은 것들을 알아보았다.


‘겨울에 눈이 많이 오네.’


‘뭐야, 그럼 겨울 옷 하나도 못 버리네. 추운 거 싫은데.’


지금 그게 중요한가?


아내와 나누는 여러 이주 준비에 대한 대화에는 영혼이 없었다. 그만큼 실감이 나지 않았다고 할까? 2월의 다 저물어가는 겨울날, 8월에 있을 대 이동에 대해 논한다는 건 실감이 나기가 쉽지 않다.


아내와 나는 평생을 그렇게 살 것처럼 일을 하고, 여가를 즐기고, 아이를 돌보며 생활하고 있었다. 새로운 삶이 펼쳐질 거란 희망의 빛을 잃어가고 있었기에, 플랜비와 씨도 잊은 채, 늘 그렇게 살 것처럼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서의 삶은 6개월짜리 시한부가 되었다. 물론 새로운 희망이 되살아났기에 기분 좋은 시한부다.


물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수입은 줄고, 아내는 어려운 공부와 씨름해야 하고, 내 커리어는 중단되고, 아이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한국에서의 삶은 불안해도 안락함을 주지만, 미국에서의 삶은 하루하루가 롤러코스터라는 사실은 익히 경험해 알고 있기도 했다. 나이 마흔이 넘어서 십 대를 바라보는 아이를 데리고 가서 우리가 잘 정착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도 없다.


나와 아내가 본 것은 그저 변화에 대한 희망이다. 우리가 꿈꾸는 삶을 하나씩 이뤄가는 그 변화의 희망 말이다. 꼭 미국에 가서도 아니고, 박사과정에 들어가기 때문도 아니다. 더 나은 희망을 보고 최선을 다해 변화를 시도하고, 그 변화의 과정에 올라탔다는 것이 나와 아내의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현실적인 준비가 우리 앞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는 십수 년 차 직장인에서 학생으로 기어를 바꿔야 한다. 나는 10년을 넘게 이어왔던 나의 커리어를 끝내야 한다. 불과 6개월 만에 살고 있는 집과 직장과 모든 소유를 정리하고 다시 빈손이 되어 미국으로 가야 한다. 또 미국에선 살 집과 탈 차와 모든 것들을 새로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소중했던 사람들과는 이별을, 새로운 사람들과는 사귐을 시작해야 한다. 희망적인 설렘도 있지만, 불투명함에 대한 두려움도 크다. 인간이 계획한 대로 빈틈없이 굴러가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하지만, 변화하려고 애쓰는 우리의 도전만으로도 우리 가족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해가 뜬다. 이제 일어나 변화의 삶을 살아갈 때다.


Photo by Pablo Heimplatz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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