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5km 걷게 나와”라는 의미에서 지은 이름이다. 작년 여름쯤 아내와 나는 사춘기의 정점을 찍고 있던 딸과의 관계로 진통을 겪고 있었다. 나보다 딸과 훨씬 많은 접점을 가졌던 아내의 고통은 더 심했다. 아내는 매일 눈물을 보였고, 우울과 무력감을 호소했다. 이러다 아내가 큰 병이라도 생길까 노심초사했다. “열 딸보다 한 명의 남편이 낫지 않느냐?”며 나는 나름의 위로와 격려를 보냈다. 그러나 별로 효과가 없어 보였다.
사춘기 자녀를 이해하기 위한 책들, 부모 교육에 대한 책들도 열심히 찾아 읽었다. 하지만 길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아내를 데리고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이렇게 집에만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우리 둘은 집 근처 운동장을 함께 걸었다. 찬 밤공기를 들이마시며 아내는 한숨을 내뱉었다. 부디 아내가 힘겨움을 발로 밟으며, 슬픔을 몸으로 밀며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도 걸으니까 그나마 좀 낫네”라고 아내가 말했다. 그 말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몸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내가 걸어야 할 이유는 분명했다.
걷기와 관련한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숭례문학당에서 나온 “이젠 함께 걷기다”란 책을 시작으로 걷는 것과 관련한 나의 연쇄 독서가 시작됐다. 걷기가 신체의 건강뿐 아니라 정서와 사고의 힘을 키우는 데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들에 귀가 솔깃했다. 철학가, 예술가들 중에는 매일 걷기를 통해 영감을 얻었다는 이들도 많았다. 아내와 걷다 보니 교회 안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함께 걸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곧바로 이름도 생각해냈다. ‘오키나와’. 캬. 내가 짓고도 너무 마음에 드는 이름이었다. 톡방에 함께 할 사람들을 모집했고, 예상보다 많은 이들이 동참해주었다.
우리는 습관이 자리잡기 위해 필요한 시간, 100일을 함께 걷기로 했다. 매일 5km를 각자 걷고 톡방에 걸음수를 올리도록 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은 함께 모여 걸었다. ‘함께길가는교회’ 이름과 걸맞은 프로젝트였다.
혼자 걸을 때는 사색에 잠겨 좋았고, 함께 걸을 때는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 오키나와를 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내 몸무게는 큰 차이를 보였다. (최근 다시 오키나와를 시작한 뒤로 5kg이 빠졌다. 오키나와를 ‘5kg 빼게 나와’로 바꿔야 하나?)
올해 오키나와 시즌 3가 시작됐다. 작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신청을 했다. 올 해는 걸음수만큼 기부할 수 있는 ‘빅워크’라는 앱을 활용해 더 의미 있는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몸의 훈련은 중요한 영성훈련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 몸의 훈련 특히 걷기를 중요한 영적 훈련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오늘 주일 예배 후 성도들과 줌으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언제 한 번 같이 걸으러 나가자는 의견이 나왔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오랫동안 함께 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조만간 함께 근교에서 걸을 생각이다.
가을 들꽃을 따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함께 걸으러 나간다니. 벌써부터 어깨가 들썩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