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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해 Mar 17. 2021

면접의 시대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2000년 초반에는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전화가 오면 일단 받아쓰기 준비를 해야 했다. 회사의 주소가 공개된 그것과 다른 경우가 일상다반사였으니. 몇 번째 골목에서 좌회전, 무슨 식당에서 우회전하여 어느 건물 맞은편 몇 층으로 몇 시까지 와서 OO팀장을 찾으라고 했다. 간혹 지하철 몇 번 출구에 도착해서 전화를 주면 그때 다시 설명해주겠다는 곳도 있었는데 이런 곳은 찾아가는 순간부터 면접의 시작이었다. 문자나 이메일로 다시 전달해달라고 부탁하거나, 위치를 묻는 전화를 반복하는 건 마이너스였다. 알아서 잘 찾아와야 0점부터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길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찾게 되었다. 좋아할 일인가 싶지만(?)



포장을 잘하는 법


연습을 많이, 자주 하면 실전에서 후회 없는 경기를 펼칠 줄 알았다. 그래서 넣었던 이력서가 족히 100통은 넘었고, 많을 땐 하루에 두 번의 면접도 봤다. 한 잡지사 면접에서 마지막으로 포부를 말할 때였다. 회사가 동그라미이고 내가 네모라면, 모서리를 깎고 깎아서 동그라미가   있도록 노력하겠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면접관은 내게 그런 과를 나와서 그런가? (말만) 너무 번지르르하게 잘한다며 비꼬았다. 그때 깨달았다. 열망이 없어야 말이 술술 나오는구나.

역시 잡지사 면접이었는데 뭘 잘하냐는 질문에 글을 잘 쓴다고 했더니 돌아오는 말이 이 세상에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너보다 더 많을 건데 어떻게 그렇게 자신할 수 있냐고. 자기 PR시대라고 하지만 너무 뻔뻔한 거 아니냐고. 어떤 대답을 했어야 할까. 똥을 잘 싼다고 했으면 됐을까. 진심으로 면접관이 들고 있는 내 이력서를 낚아채 뒤돌아 나오고 싶었다.



단점만 보이는 눈


압박 면접은 사람을 산 채로 미라로 만드는 행태였다. 이력서는 봤나? 자기소개서는 봤나? 싶은 면접관이 수두룩했다. 차라리 부르지를 말지. 왜 불러놓고 저럴까, 스트레스 해소용인가 싶을 정도였다. 외모 비하부터 발음, 스타일 하나하나 트집을 잡았다.

광고회사 면접 때였다. 발음이 뭉개져 설득력이 떨어진다며 이래서 PT는 제대로 할 수 있겠냐며 혀를 찼다. 아무리 카피 능력이 출중해도 광고주를 설득하지 못하면 끝이라고. 면접관은 나도 충분히 알고 있는 내 단점들을 면전에서 줄줄이 읊어댔다. 차라리 학력이나, 경력을 탓했다면 수긍했을지도 모른다. 이건 뭐. 내가 그렇게 태어난 게 문제라는 건데. 후에 면접 후기를 블로그에 올렸더니 면접관에게 바로 메일이 왔다. 너무 괜찮은 사람인데, 능력도 너무 많은데 그 (단점) 하나가 너무 안타까워서 했던 말이니 오해하지 말라고. 아, 네, 그런 거군요. 


인생 통틀어 면접을 50번도 넘게 봤다. 대부분은 면접을 보고 나오면 그렇게 술 생각이 났다. 그것도 대낮부터. 기분 좋게 면접을 마친 건 딱 한 번뿐이었고 역시 그 회사는 내 인생 최고의 회사였다. 꽁꽁 얼어붙은 지원자에게 "땡" 해주는 회사가 좋다. 좋았다. 서로가 서로를 제대로 보려면 어쨌든 느슨하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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