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2000년 초반에는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전화가 오면 일단 받아쓰기 준비를 해야 했다. 회사의 주소가 공개된 그것과 다른 경우가 일상다반사였으니. 몇 번째 골목에서 좌회전, 무슨 식당에서 우회전하여 어느 건물 맞은편 몇 층으로 몇 시까지 와서 OO팀장을 찾으라고 했다. 간혹 지하철 몇 번 출구에 도착해서 전화를 주면 그때 다시 설명해주겠다는 곳도 있었는데 이런 곳은 찾아가는 순간부터 면접의 시작이었다. 문자나 이메일로 다시 전달해달라고 부탁하거나, 위치를 묻는 전화를 반복하는 건 마이너스였다. 알아서 잘 찾아와야 0점부터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길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찾게 되었다. 좋아할 일인가 싶지만(?)
연습을 많이, 자주 하면 실전에서 후회 없는 경기를 펼칠 줄 알았다. 그래서 넣었던 이력서가 족히 100통은 넘었고, 많을 땐 하루에 두 번의 면접도 봤다. 한 잡지사 면접에서 마지막으로 포부를 말할 때였다. 회사가 동그라미이고 내가 네모라면, 모서리를 깎고 깎아서 동그라미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면접관은 내게 그런 과를 나와서 그런가? (말만) 너무 번지르르하게 잘한다며 비꼬았다. 그때 깨달았다. 열망이 없어야 말이 술술 나오는구나.
역시 잡지사 면접이었는데 뭘 잘하냐는 질문에 글을 잘 쓴다고 했더니 돌아오는 말이 이 세상에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너보다 더 많을 건데 어떻게 그렇게 자신할 수 있냐고. 자기 PR시대라고 하지만 너무 뻔뻔한 거 아니냐고. 어떤 대답을 했어야 할까. 똥을 잘 싼다고 했으면 됐을까. 진심으로 면접관이 들고 있는 내 이력서를 낚아채 뒤돌아 나오고 싶었다.
압박 면접은 사람을 산 채로 미라로 만드는 행태였다. 이력서는 봤나? 자기소개서는 봤나? 싶은 면접관이 수두룩했다. 차라리 부르지를 말지. 왜 불러놓고 저럴까, 스트레스 해소용인가 싶을 정도였다. 외모 비하부터 발음, 스타일 하나하나 트집을 잡았다.
광고회사 면접 때였다. 발음이 뭉개져 설득력이 떨어진다며 이래서 PT는 제대로 할 수 있겠냐며 혀를 찼다. 아무리 카피 능력이 출중해도 광고주를 설득하지 못하면 끝이라고. 면접관은 나도 충분히 알고 있는 내 단점들을 면전에서 줄줄이 읊어댔다. 차라리 학력이나, 경력을 탓했다면 수긍했을지도 모른다. 이건 뭐. 내가 그렇게 태어난 게 문제라는 건데. 후에 면접 후기를 블로그에 올렸더니 면접관에게 바로 메일이 왔다. 너무 괜찮은 사람인데, 능력도 너무 많은데 그 (단점) 하나가 너무 안타까워서 했던 말이니 오해하지 말라고. 아, 네, 그런 거군요.
인생 통틀어 면접을 50번도 넘게 봤다. 대부분은 면접을 보고 나오면 그렇게 술 생각이 났다. 그것도 대낮부터. 기분 좋게 면접을 마친 건 딱 한 번뿐이었고 역시 그 회사는 내 인생 최고의 회사였다. 꽁꽁 얼어붙은 지원자에게 "땡" 해주는 회사가 좋다. 좋았다. 서로가 서로를 제대로 보려면 어쨌든 느슨하고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