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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해 Nov 19. 2021

만사 궁금해서 싫다

이야기에 끌리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이 보고 싶다. 사는 이야기를 바로 옆에서 듣고 싶다. 참, 이상한 일이지? 나란 사람, 관계는 힘든데 이야기는 고프다. 학교 친구, 동네 친구, 이전 회사 동료 등등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 그만큼 다양한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을 텐데. 그걸 제일 하고 싶은데, 그게 가장 힘든 일이 됐다 이제는. 코로나19 탓도 있지만 가정에 아이까지 있으니 만나는 사람도, 하는 이야기도 매번 거기서 거기다. 물론 스마트폰에도 이야깃거리는 많다. 문제는 내 의지로 선택된 글만 한정적으로 읽기 때문에 시간만 후루룩 흐를 뿐 남는 것도 없고, 재미도 없다. 내가 원한 건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요즘은 시댁 가는 길도 들뜬다.   


얼마 전 시할머니 생신 겸 가족 모임이 있었다. 식당으로 간 우리들은 네 명씩 두 테이블에 나눠 앉았다. 내가 앉은 테이블은 조용했다. 남편은 고기를 구웠고 아이는 볼이 터져라 먹었고 어머님은 아이를 흐뭇하게 지켜봤다. 반면 옆 테이블은 화기애애했다. 남편의 누나와 매형, 아버님이 이렇게 잘 통했었나? 싶을 정도로 대화가 끊이질 않았다. 무슨 이야기를 그리도 재미있게 하는지 너무 궁금했다. 할 수만 있다면 그 테이블로 옮겨 앉고 싶었다. 대화에 동참하고 싶은 것보다 그냥 듣고 싶었다. 집에 오는 길, 남편에게 "옆에서 무슨 얘기하는지 궁금하지 않아?"라고 물었다. "아니. 전혀." 남편은 그게 왜 궁금한 지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명절이 다가오면 시댁으로 친척들이 더 많이 모이기를 은근히 바랐다. 100번째 듣는 이야기도 화자가 바뀌면 각색이 됐다. 그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또 궁금했던 누군가의 소식을 전해 들으면 숨통이 뻥, 뚫렸다. 내가 뭐라고 먼저 물어보자니 이상하고, 누군가 먼저 물어봐주기를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한참 이야기들을 나누다 어느 정도 수그러들면 매번 둘째 시고모님은 내게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어른들 이야기하는 거 재미없지?" 아닌데, 진짜 재미있는데, 이걸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궁금한 것을 드러내면 오해를 산다. 대체 그게 왜 궁금한데?라고 물으면 내 입장에서는 그냥!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순도 100% 정말 그냥 궁금한 건데. 그게 대체 왜 궁금하냐고 묻는 사람의 의도 역시 짐작은 가기에 대체로 궁금한 채로 남겨둔다. 누군가 일말의 오해 없이 내 궁금증을 모조리 풀어주면 좋으련만.  


특히 누군가의 상황이 좋지 않으면 궁금해도 물어볼 수 없다.   

어린이집에서 같은 반 아이들이 단체로 감기에 걸렸다. 전업인 엄마들은 아이의 상태를 공유하고 있었다. 한 아이 엄마가 내게 "A는 이제 괜찮대요?"라고 물었다. 나만 A 엄마의 연락처를 알고 있었다. A의 상태가 나 역시 궁금하긴 했지만 물을 수 없었다. 그전에 A 엄마가 먼저 우리 아이에 대해 물어봤을 땐 나도 물어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A가 많이 아프다고 했으니까, 재차 물어보기가 껄끄러웠다. 한편으론 A 엄마 입장에서는 아파도 아프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젠 회사를 가야 하니까, 어린이집을 보내야 하니까. 사실 어린이집에도 묻고 싶었다. 아이들이 다 나은 상태로 등원을 하는 건지. 궁금하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비슷한 맥락으로 내 질문에 진실로 답하지 않을 것 같으면, 물어보지 않는다. 주위에서 자주 접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일에 대해 궁금했던 적이 있다. 처음에는 한번 보고 말 사람이니 진실로 답해줄 거라 생각했다. 이를테면 업계 사람들만 아는 비밀? 보통은 여태 그걸 궁금해 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교재 판매를 위한 홍보 목적으로 아이의 발달인지 테스트를 할 때였다. "그게 정확도가 몇 % 나 될까요? 엄마가 체크하는 건데..." 대부분은 이런 사소한 궁금증들이었다.




어릴 적, 동네 할머니가 사는 집 대문 앞에 사람이 드나들 수도 없게 큰 물탱크가 몇 날 며칠 떡 하니 버티고 있었던 적이 있다. 그 할머니의 안부가 궁금했지만 해결되지 않을 물음표였다. 그 와중에도 오만가지 생각들이 오갔던 것만 기억한다.


안 궁금해도 될 일을 궁금해했고 혼자 별별 상상들을 했다. 그리고 대개는 엄마, 아빠한테 물어봐도 답해줄 수 없는 질문들이었다. 지금도 아마 지식인도 답해 줄 수 없는 종류의 궁금증만 한가득일지 모른다. 그런데 그게 나인 걸. 이제는 누가 "그게 왜 궁금해?"라고 물으면 그냥!이라고 말하지 않고 당당하게 이렇게 말해볼까.


그게 왜 안 궁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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