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은 어떻게 생겨나고 왜 반복되는가
차별이란 무엇일까?
차별은 합리적 이유 없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구별하여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말한다. 차별은 단순한 불쾌감이 아니라 개인이 선택할 수 없는 속성을 이유로 권리나 기회의 접근을 제한하고 그 제한이 정당화될 수 없을 때 성립한다.
사람들이 차별을 하게 된 이유는 생존의 논리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위험과 안전을 빠르게 구분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 구분은 처음에는 도덕적 판단이 아니라 반사적 인식이었다. 뇌는 복잡한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범주화하고, 일반화하며 고정관념을 가지게 된다. 이는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한 인지적 전략이었다.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대상은 위협처럼 느낀다. 전쟁, 전염병, 사회불안이 클수록 누군가 탓할 대상을 찾게 되고 이때 약자나 소수자나 외부집단이 표적이 되었다.
권력은 이 차별을 도구로 사용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중세의 마녀사냥과 히틀러의 홀러코스트다.
이런 생존적 본능과 권력수호의 수단은 규칙, 기준, 관행과 문화로 굳어졌다. 하지만 인류는 이 도덕적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교정해 가고 있는 중이다.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나는 차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구조적, 은밀한 차별이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지적한다. 아직도 구조, 문화, 체계차원에서 차별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 차별이 혐오와 폭력의 동력이 되고 이를 이용한 사람들이 자신의 힘을 키워가는 최근의 현상(윤석열 정부)도 비판한다. 때문에 법적규제 수단으로 뿐만 아니라 사회적 기준을 설정하고, 공동체 감수성을 환기시키는 정책적 도구로서 차별금지법은 반드시 필요함을 저자는 주장한다.
노키즈존과 장애인이다.
나는 가끔 노키즈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장애인이 불편하다. 그것은 어린이를 싫어해서가 아니다. 공동체의 규칙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문제는 그 상황을 제어해야 할 보호자의 태도이고, 그 결과로 발생하는 타인의 피해이다. 장애인도 마찬가지다. 다수의 장애인은 자신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한다. 그러나 일부는 장애를 무기 삼아 사회적 합의를 넘어서는 요구를 하거나, 그 지위를 협상을 수단처럼 사용하기도 한다. 이때 느끼는 불편함은 역시 배려 없는 행위 때문이다. 이런 행위를 하는 성인이나, 비장애인에게도 동일하게 느낀다. 때문에 대상이 아니라 규칙을 위반하고 사회적 합의를 넘어서는 행동에 대한 불편함 때문이라면 차별이 아니겠지만, 이것이 어린이나 장애인 집단전체에 대한 회피로 굳어지거나 혐오하게 된다면 그것은 차별과 혐오의 행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저자가 왜 사람들은 특정집단을 불편해하게 되었는지도 고민했으면 한다.
규칙 위반이 반복되고, 중재는 부재하며, 책임은 흐려질 때 사람들은 집단단위의 회피전략을 선택한다. 불편함을 설명하지 않은 채 그 감정자체를 비난하는 방식은 차별을 줄이기보다는 오히려 갈등을 고착시킬 수 있다.
이 책은 나는 차별하지 않는다는 말이 오히려 차별을 얼마나 쉽게 보이지 않게 작동하게 하는지를 알려준다. 차별과 혐오는 없어져야 한다. 인류는 더 다양해질 것이다. 네 편과 내편은 그 경계가 더 모호해질 것이다. 다양성은 더 나은 진보를 가져올 것이다. 때문에 차별이 본능에 따른 이유 없는 편 가르기와 기득권의 편의 수호를 위해서라면 그것은 더 이상 여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