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세계를 이해하는 세 가지 프레임
파편처럼 보이던 사건들은 왜 하나의 흐름이 되는가?
브렉시트, 트럼프 현상, 끝나지 않는 중동 분쟁,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 각각은 전혀 다른 맥락의 사건처럼 보인다. 어떤 것은 국내 정치의 문제 같고, 어떤 것은 지역 분쟁이나 국제전쟁처럼 읽힌다. 헬렌 톰슨은 이 책에서 이 파편들을 나열하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왜 이런 사건들이 같은 시기에, 같은 방향으로 터져 나오는가?
그의 답은 의외로 단순하면서도 구조적이다.
국제정치는 이념이나 가치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톰슨은 그 바닥에 에너지, 특히 석유와 가스가 있다고 말한다.
중동이 왜 늘 불안정한 지, 유럽이 왜 러시아와 쉽게 결별하지 못했는지, 미국이 왜 먼 지역 분쟁에 반복적으로 개입해 왔는지는 모두 에너지 공급망과 연결된다.
에너지는 대체 가능한 자원처럼 이야기되지만, 현실에서는 단기간에 벗어날 수 없는 의존 구조다.
그래서 중동 분쟁은 끝나지 않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단순한 영토 분쟁이 아니라 에너지 질서의 균열로 확장된다.
전쟁은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에너지 의존이 흔들릴 때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결과에 가깝다.
두 번째 축은 금융, 더 정확히 말하면 통화 질서다.
냉전 이후 세계는 시장의 힘으로 통합된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세계를 묶어온 것은 달러 중심의 금융 시스템이었다. 위기가 올 때마다 각국 정부가 아니라 중앙은행이 움직였고, 그 결정은 민주적 선택의 영역 밖에서 이루어졌다. 금융위기 이후 이 구조는 더 강화되었고, 국가는 점점 정책을 선택하는 주체가 아니라 반응하는 존재가 되었다. 금융은 세계를 안정시키는 동시에, 불평등을 키우고 정치의 선택지를 좁혔다. 이 지점에서 경제 문제는 곧 정치 문제로 전환된다.
세 번째 축은 민주주의다. 톰슨은 민주주의가 무너졌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결정할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한다. 에너지 가격, 금리, 환율, 금융위기 대응 같은 핵심 사안은 이미 정치의 손을 떠나 있다. 그럼에도 선거로 뽑힌 정부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진다.
이 불일치가 시민의 분노를 만든다.
그 분노가 표면으로 드러난 사건이 브렉시트이고,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중요한 점은, 이런 현상들이 원인이 아니라 구조적 압력의 배출구라는 사실이다.
이 책의 핵심은 세 축을 따로 보지 않는 데 있다.
에너지는 세계를 물리적으로 묶고
금융은 그 구조를 유지하며
민주주의는 그 결과에 대한 책임만 떠안는다.
이 셋이 어긋난 상태로 결합될 때, 세계는 하나의 질서를 향해 나아가지 않는다. 대신 사건들은 파편처럼 터지고, 사람들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설명받지 못한 채 결과만 감당한다. 그래서 제목은 ‘질서 없음’이다
톰슨이 말하는 ‘질서 없음’은 혼란이나 무정부 상태가 아니다.
공통의 규칙 없이, 서로 다른 논리들이 동시에 작동하는 상태다.
이 세계는 새로운 질서로 이행 중인 것도 아니고, 과거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그저 에너지·금융·민주주의라는 세 힘이 어긋난 채 굴러가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은 왜 같은 종류의 위기가 반복되는지 이해하게 만드는 책이다. 그 점에서 이 책은 국제정치서이자, 현재를 읽는 지도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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