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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한 Aug 29. 2022

잠,

토요 글쓰기 모임 [끄적이는 소모임] #5

22.08.28




예전에는 잠이 너무 많았다. 어느 정도였냐하면 부모님이 해외여행 가실 때 아침에 깨워주는 사람이 없어서 내가 못 일어날까 봐 공항에서 아침 내내 집으로 전화를 걸 정도였고,  밥 먹다가도 조는 건 비일비재했고, 학교 현장체험 학습 날에도 늦잠을 자서 반 아이들 전체가 날 기다리던 적도 있었다. 물론 현재 어른이 되고부터는 많이 나아졌지만 어릴 때는 하루의 반은 졸음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가끔도 할머니께서는, 너는 아직도 잠이 많니- 너 그때 기억나니- 온 가족이 공항에서 너에게 전화를 했었단다-하시며 웃으시곤 한다. 생각해 보니 나 수능날 아침에도 늦잠을 자서 결국 수능 자체도 안 보러 갔었네-


여하튼 나는 잠에 관한 에피소드가 참 많았은데, 도대체 왜 그렇게 늦잠을 잔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마 내 아이리버 검은색 엠피쓰리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중고등학생 시절 당시 유행하던 검은색 엠피스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손바닥 정도의 그 작은 기계는 나의 긴긴밤을 맡기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나는 그 작은 기계를 통해서 가끔 설레고 재밌는 소설을 읽었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자주 가을방학과 브로콜리 너마저, 전람회의 노래를 듣거나 드뷔시의 음악을 들으며 조용히 생각을 하는데에 시간을 쏟았다.


앞으로의 나의 인생은 어떻게 전개될까. 몇 년 후의 내가 지금을 나를 원망하지 않으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옳고 바른 삶은 어떤 것일까, 라는 건설적인 고민부터, 당연히 어떤 날에는 용돈이 너무 적은데 뭐라고 엄마께 말씀드릴까, 친구들과 주말에 밥 먹기로 했는데 뭐를 먹어야 뒤집어지게 잘 먹을까, 학원을 빠지고 영화를 보고 싶은데 어떻게 부모님을 속일 수 있을까 등의 그 당시로서는 아주 중요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쓰잘데기 없는 귀여운 고민과 상상을 했다.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이나 어린 그때의 나는 매일 밤 매번 다른 방향의 생각을 하다 잠이 들고 깨어나기를 반복하였다.


한국의 통상적인 고등학생이 되어 매일 학교와 집을 반복하던 나에게는 그 자기 전의 시간이 나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하고, 오직 나만을 위한 고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 시절 그 매 순간의 밤동안 사고했던 모든 것들이 지금의 ‘나’를 이루는 요소가 되었던 게 아닐까. 그 생각 하나하나가 일련의 일들, 즉 내 인생을 이루는 거대한 하나의 축이 아닐까, 자주 그런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 하다가 잠부터 시작하여 사춘기 시절의 내 고민거리 이야기를 늘어놓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다시 처음의 주제로 돌아와 보자.




잠.


나는 내 잠에 대해 어떻게 대하였나. 소중히 다뤄주었는가라고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 일 것이다. 인간 생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지만 나에게 잠은 아마 가장 낮은 우선순위를 가지는 것 같다. 성인이 된 이후, 나는 갓 청년이 된 사람답게 자주 바쁘거나 즐겁거나 급하거나 재밌었고 그럴 때면 항상 잠을 포기한 채 뛰쳐나갔다. 그때마다 부족한 잠은 아무렇게나 아무 시간에 대충 졸면 끝이었다.


그렇지만 잠은 최고의 평화이고 선물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느끼는 요즘이다. 구태여 무엇을 할 필요 없이 적정시간 적정한 곳에서 깊게 잠에 빠지면 쓰러진 몸도 마음도 금방 다시 되살아난다.

지친 하루 일과를 끝낼 때까지 내 머릿속을 지배하는 건 잠이라는 행복한 행위다. 내 친구의 글처럼 잠은 하나의 안식이고 그렇기에 너와 나의 잠은 소중하다. 친구의 소원에 곁들어 바라본다. 우리 피곤한 인생을 살아가지만 언제나 좋은 잠을 청할 수 있기를.




또 하나, 이전에 어딘가서 잠을 자기 전 하는 생각이 그다음 날의 하루를 결정한다는 글을 읽었다. 나는 그 당시 교제하던 사람과 눈을 감고 자기 전 곧잘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기 전에 하는 생각과 마음과 느낌이 아침까지 이어진대, 그러니까 좋은 상상만 하자-


우리는 자주 텅 빈 놀이공원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먹기도 했고, 반려 강아지와 고양이를 데려와 키우기도 했다. 로또 당첨되어 크루즈 여행을 하기도 했고, 조용한 숲 속에서 낮잠을 자기도 했다.


매번 달랐지만 어찌 되었든 그날 하는 행복한 상상은 자신에게 결핍되어있는 것이었다. 그걸 바라며 잠드는 것 자체가 그 결핍을 이겨내려는 의지이자 소망이었다. 그냥 바라고 꿈을 꾸고 깨어나 끝이 아니었다. 그걸 매번 무의식으로 생각하며 나아가는 거였다.


그렇게 보아 잠은 소중하다. 잠은 상상이다. 잠은 필요하다. 잠은 생각이다.


그러므로 잠은 우리네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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