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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한 Oct 11. 2022

나의 평화가 지켜지는,

토요 글쓰기 모임 [끄적이는 소모임] #8

22.10.10




나는 나의 정신적 평화를 위해 무엇이든 하는 사람이다. 이전에는 줄곳 내가 긍정적인 사람인 줄 알았다. 그렇지만 사실 그건 내 성향 자체가 긍정적이라기보다는 내가 나에게 스트레스를 줄 무언가를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령, 누군가에게 화가 나면 그 사람의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내가 이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 때문에 이렇게 되어버린 거라고 생각해버린다. 그럼 그 사람도 미워하지 않으면서 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원체 마음의 짐이 있는 것도,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고민에 뒤척이는 것도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기에 나 스스로의 온전한 평화를 지키기 위한 가이드가 따로 있는 듯한 느낌이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마음 평화 가이드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우선 나는 내 마음속 평화가 깨지면 제일 먼저 좋아하는 디저트를 산다. 난 사실 군것질거리를 무척 좋아하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사러 걸어가는걸 귀찮아하는 사람이라 문득 먹고 싶은 날에도 잘 사러가지 않는 편인데, 기분이 꿀꿀하면 우선 좀 걸어서 내가 좋아하는 소금 빵이나 커스터드 크림이 들어있는 크로와상을 사서 집으로 온다. 그 후에는 집을 말끔히 정리한다. 꺼내놓은 옷들도 옷장 안에 차곡 개어놓고 머리카락, 먼지 한 톨 없이 쓸어 담아버린다. 쌓아둔 영수증도 버리고, 다 마신 페트병도 납작하게 눌러 버린다. 무언가를 정리하고 버리는 동안 내 마음에 무언가도 정리되고 버려진다. 그다음엔 깔끔해진 공간 안에서 나는 편히 누워 상처를 치료한다. 가장 자주한 행동은 웃긴 예능 보기. 옛날 시트콤도 좋다. 어처구니없고 순수하게 웃긴 무언가를 보며 나도 생각 없이 따라 웃는다. 또 어쩔 때는 좋아하는 유튜브를 켠다. 출판사 영상 아니면 음악만 흘러나오는 플레이리스트도 듣는다. 여름철에는 좋아하는 작가들의 팟캐스트를 들으며 걷고, 겨울철에는 코코아를 마시며 외국영화를 본다. 지금, 이 가을의 나는 난생처음으로 요가를 다니며 몸을 움직인다.




상처 속에서 한없이 가라앉지 않는 게 내 가이드의 핵심이다. 무언가를 생각하다 보면 후회와 미련이 남는 것 같고 또 대체로 나는 자기반성으로 향하기 때문에 내가 잘못했다-라고 생각하기 싫어서 묻어두는 편이다.

그래도 아주 가끔 위 가이드를 실행해도 마음이 불편할 때가 있다. 무언가 가시가 계속 어딘가에 걸린 것처럼 빠져나오지 못하고 쿡쿡 쑤신다. 잊어버릴래도 '나는 언제나 여기에 존재해'라고 나에게 말하는 듯 지나칠 수 없는 상처가 있다. 나의 평온함을 와장창 깨트려버리는 그런 상처.



가시는 때때로 상황, 가끔은 사람이다. 나는 그럴 수밖에 없다고 믿어버린다. 가만히 상처를 들여다볼, 어루만질 경험치는 아직 내겐 없다. 내가 가진 힐 스킬이라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야, 하고 믿는 것뿐이다. 나를 미워해서가 아니야, 나를 상처 주고 싶었던 게 아니야. 그냥 그냥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 또는 사람. 그러다 보면 상처가 나아진다. 세상엔 아직 나를 온전히 적대하는 게 없다고 느껴진다. 그 사실(어쩌면 소망)이 나를 위로한다. 이런 내가 나약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직면하지 못하고 빙빙 돌아 뒤편에서 거울로 반사된 것만 믿으려는 사람. 그렇지만 이게 내가 살아가는 방식인 것을 이제 난 알고 있다.




가장 좋은 건 상처 자체를 안 받는 것이지만은 어느 누가 이 수많은 타인들과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와중에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을까 싶다. 누구나 다들 상처를 입히고 상처를 입으며 살아가지만 그냥 자신만의 가이드를 만들어 스스로 마음을 들여보며 치유를 해나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그들이 울면 나도 눈물 날 것만 같은 내 주위의 사람들이 이런 가이드 하나 다 마련했기를 바란다. 가이드가 없다면 내 가이드라도 하나하나씩 챙겨서 주머니에 넣어주고 싶다. 상처에 어떻게 대처할지, 어떻게 힐링할지 무난하게 잊지는 못하더라도 그날 밤 잠은 편하게 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자고 일어나면 다시 회복되기를.



hp(Health Point)가 깎이면 언제든지 말하세요. 제 가이드 무료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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