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다니며, 영화를 만든다는 것의 의미는

이야기가 아니라 장면부터 떠오르는 이유

by 희안 Heeeahn

영화를 연출하는 스타일도 참으로 다양하다.

어떤 감독님은 소재를 중심으로, 또 어떤 감독님은 인물을 중심으로,

나는 그중에서도 장면부터 떠올리며 생각하는 편이다.


보통 누군가에게 '창작'을 하라고 하면, 다들 막막해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에게는 그렇게 특별한 것이나 일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원래 모든 이야기는 특별하지 않다.

공상과학이나, 추리와 같은 스릴러가 아니라면.


이야기는 원래 작은 틈새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어느 날 읽었던 책의 한 구절,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 밖을 바라보았을 때 양산을 쓰고 가던 할머니. 이게 모두 우리에겐 이야기로 발전될 수 있는 틈새이다.


특별한 것으로부터 이야기를 찾으려 한다면, 곧장 벽을 만날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특별한 것이라고 하는 것조차, 특별함을 극히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일상엔 참 많은 장면들이 있다.

금번 아쿠타가와 상을 받은 스즈키 유이 작가의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라는 책의 시작도,

작가님이 부모님의 결혼기념일 때 식사하며 마신 홍차의 티백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니 말이다.

이야기는 이렇게나 개인적이고 사소하다.

봉준호 감독님이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일상에서 장면을 포착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이 습관은 창작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시간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보낼 수 있음이 곧 장면을 포착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면에서 회사를 다니며 창작한다는 것이 나쁘지 않다.


다양한 인간군상을 만날 수 있는 장소가 곧 회사이기 때문. 좋은 사람도 나와는 잘 맞지 않는 사람도.

낮에 만난 다양한 장면들을 모아, 밤에 나의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

이게 회사 다니며 창작하는 가장 큰 기쁨인 듯하다.

동시에 생계도 유지되니, 내가 조금 시간을 더 쓰면 더 풍부한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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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영화를 찍는 것이 매번 즐겁지만은 않다.

가끔은 힘들 때가 더 많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영화를 만들고 싶은 이유는 아무래도 재밌다.

재미를 이길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재밌어서 더 잘하고 싶고, 계속하고 싶다.

이렇게 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에 매번 감사하다가도, 잘 안 풀릴 때는 매번 좌절한다.


꾸준히 만든다는 것에만 더 이상 의미를 두지 못하게 될 때에. 그때가 가장 큰 고비이기도 하다.

사실, 영화를 만든다고 말할 때 다들 '왜 하냐'라고 물어본다. '좋아서'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그 뒤에 따라오는 말은 '상은받았어?'라는 말.


그렇다. 나는 다작 감독이지만 수상내역은 없다.

그것이 나의 매번 방어기제를 불러오기도 한다. 영화를 하기 위한 명분에 수상이력이 있어야 할 것 같은 이 기분이 소름 끼칠 때도 있다. 강박을 가지고 상을 받고 싶다는 욕망에 불타기도 하지만, 곧장 그게 무슨 의미인가 싶어 한숨을 쉬기도 한다.


내가 작품을 생각하는 것만큼 스태프진이 따라와 주지 못할 때도 속상하다.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았으면 하는 그 마음. 나처럼 이 작품을 아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 때도 좌절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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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일상의 장면을 모아 이야기를 만들어 영화를 제작하곤 한다.

그게 재밌고, 좋다. 좋은데 이유가 있는가.


그래서 오늘도 나는 장면을 채집하여 나의 한편에 보관한다.

이 장면들이 이야기를 틔울 수 있을 그때를 숨죽여 기다리며,

물을 주고 가끔 들여다보며, 오늘도 그 아이를 보며 슬며시 웃는다.

화,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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