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정착 가이드
회사와 연봉 & 패키지 협상이 끝났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정착할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리로케이션 패키지에 소프트랜딩 서비스가 포함된 분은 담당자가 하자는 대로 진행하면 되겠지만, 대부분은 스스로 알아서 준비를 해야 한다. 우선 ID 신청하고 나니 주거지, 은행 계좌, 핸드폰 개통, 자녀 교육 등 할 일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었다.
현지 은행 계좌 개설 (opening a bank account)
홍콩 은행 계좌는 급여 수령, 생활비 지출, 자동 이체 등 일상생활에 필수적이다. 하지만 개설 과정이 복잡하고 시간이 걸릴 수 있으므로 필요한 서류는 미리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필요한 서류 목록
근로계약서 사본
여권 사본
영문 주민등록등본
주소 증명서: 국내 주소, 홍콩 임시 주거 또는 주거 증명 (또는 회사 레터 (국내 주소 증명, 홍콩 임시 주거 증명, 근무 시작일 등 포함)) - 회사 거래 하는 은행에서 개설했는데 임시 주거 증명은 안 받아서 결국 회사에서 레터를 만들어 줬다.
한국의 은행 거래 내역서 (or 잔고 증명서) 및 추천서
보통 HSBC, Standard Chartered, Hang Seng 중 선택하는데, 같은 은행이라도 지점마다 요구사항이 다를 수 있다. 외국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지점이나 근무할 회사가 거래하는 지점을 방문하는 것이 좋다.
우리는 서류를 다 챙겼는데도 첫 번째는 홍콩 주거지(permanent address)가 없어서 (결국 회사 레터 받아 다시 방문), 두 번째는 등본이 원본이 아니라는 이유로(인터넷 출력하면서 잉크 부족으로 배경이 하얀색이었는데 원본 아니라 함), 세 번째 방문에서야 개인계좌와 부부 공동 계좌, ATM 카드(현금 인출 전용), 수표책을 받을 수 있었다.
한국과 다른 점은 아래와 같다.
1. 계좌 종류: 홍콩은 개인 계좌뿐 아니라 공동 계좌(joint account)도 개설할 수 있다. 공동 계좌는 부부가 같이 사용하는데, 생활비나 교육비 관리에 유용하다. 하나의 계좌 번호 아래 Current Account와 Savings Account가 따로 있으며, 수표 사용을 위해선 Current Account로 돈을 옮겨야 한다.
2. 수표책: 한국에서 수표라고 하면 10만 원권 무기명 수표를 생각하는데, 홍콩에서는 기명 수표가 주로 쓰인다. 수표책은 학비, 월세 등 큰 금액을 지불할 때 자주 사용되며, 왼쪽은 수표 사용 내역을 기록하고 오른쪽은 실제 수표로 사용한다.
수표 작성할 때는 금액을 영어로 풀어서, 박스에는 숫자를 쓰고 (예. Hundred Dollars, HK$ 100), 오른쪽 하단에 서명을 한다. 수표에는 수표 사용하는 사람 이름이 인쇄되어 있고 (숫자 아래), 설사 수표를 분실하더라도 위에 지정한 수신자가 아닌 경우는 사용할 수 없어서 도난 분실 위험이 적은 편이다.
Tip. 수표를 받을 경우 은행 창구나 수표 박스(cheque box)를 이용해 입금한다. 급하지 않다면 수표 뒷면에 내 계좌 번호를 적어 수표 박스에 넣으면 일주일 이내 통장에 입금된다.
3. 서명: 이거 중요하다! 홍콩 은행은 서명을 많이 요구하며, 서명이 조금이라도 다르면 업무 진행을 할 수 없다. 내 서명은 필기체 날림인데 (20대 유학 가서부터 계속 썼건만 미묘하게 틀리단다) 은행 업무 보러 가면 서명만 한 10번은 했던 거 같다. 한 번은 (등록된 내 서명을 보여주며) "이거 보고 최대한 비슷하게 따라 써봐"라고 한 적도 있고, 코로나 때 한국에서 우편으로 처리할 서류를 보냈더니 2개월 있다가 우편 답변이 왔다. "너의 서명이 일치하지 않아서 처리가 불가능하다"라고...
Tip. 서명은 남들이 따라 하기 쉬운 단순한 것도 곤란하지만, 너무 복잡하거나 매번 (미묘하게 각도나 뒷흘림) 달라지지 않도록 신경 써서 사용하시길...
4. ATM 카드: 한국의 체크카드와는 달리 현금 인출 전용으로 비밀번호는 지정해서 주니 이후 잊지 말고 ATM 기계에서 "비밀번호 변경"해주자.
5. 신용카드: 보통 3개월치 월급명세서를 제출한 후에야 발급해 준다. 카드 수령할 때 연결 계좌를 물어보지만 자동이체는 신청해야 한다. 신청하지 않으면 연체 수수료(Late Payment Charge)를 납부해야 하니 조심하자. 3개월어치 연체 수수료가 발생하면 보통 "카드 중단하겠다"는 경고가 날아온다.
주거지 찾기 (Finding Accommodations)
홍콩 주거비는 세계적으로도 높은 편이며, 한국보다는 평당 약 3.1배 높다. 주거 형태는 아파트, 하우스, 셰어하우 등 다양한 옵션이 있으며, 지역에 따라 집 값 차이가 크다.
특히 월세가 생활비 지출의 큰 축을 차지하므로 예산과 생활 패턴에 맞는 지역을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
실제 가보는 게 제일 좋지만, 먼저 28 Hse 앱으로 대략적인 감을 잡는 것도 도움이 됐다. 계약하면 보통 보름 이내에 입주하는데, 계약 시작일 전에 1-2주 정도는 무상으로 이사하는 기간을 제공해 준다.
인기 거주 지역으로는
홍콩 섬: 미드레벨, 사이잉푼, 해피밸리, 타이쿠 등
구룡: 홍함, 엘리먼츠, 쿤통, 샤틴 등
이 있는데, 외국인들이나 특히 금융 종사자들은 근무지(센트럴, 코즈웨이베이)와 가까운 홍콩섬을 선호한다. 처음 부동산 투어는 친구들 추천으로 홍콩섬 쪽을 다녔는데 도무지 이제 막 걷는 애를 데리고 그 계단과 오르막길을 다닐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홍콩섬의 사이잉푼과 구룡의 홍함 중 고민을 하다가, 처음 정착에는 큰 단지와 편의시설 근처가 좋다는 주변 의견과 '여행을 가면 현지 분위기를 즐기는' 부부 성향을 감안하여 나름 평지(?)인 홍함에서 10년 밖에 안 된 새(?) 집에 들어갔다.
렌트 계약은 보통 1+1년인데, 1년은 의무이며 2차 연도는 노티스에 따라 계약 해지가 가능하다. 우리는 이사가 너무 힘들어서 1+1 대신 2년으로 해달라 했는데, 홍콩 친구는 "왜 네가 다른 집 갈 기회를 없애냐" 하더라. 난 반대로 "1년 후에 나가라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
집 계약은 3개월치 집세(2개월 deposit, 1개월 월세 선불)를 일시불로 내야 하며, 부동산 수수료와 인세 (Stamp Fee)는 집주인과 반반씩 부담한다.
수수료는 1개월 월세 50%이고, 인세는 계약 기간에 따라서 다르다 (평균 연간 월세 기준 = 1년 미만은 0.25%, 1-3년은 0.5%, 3년 이상은 1% 등).
즉 월세가 100이라면 계약하면서 필요한 돈은 328 (=200 deposit +100 월세 선불 +25 (=50/2) 부동산 수수료 반 + 3 (=((100x12) x0.5%)/2) 인세 반)이 된다.
일반적으로 집주인이 관리비 (management fee)와 관련 세금 (government taxes)는 지급하고, 세입자는 사용한 만큼의 Utility(수도세, 전기세, 가스비)를 부담한다.
아! 그리고 홍콩집은 아직도 대부분 열쇠를 사용한다. 키패드 사용에 익숙한 경우에 열쇠를 두고 문을 닫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데, handyman을 부르면 열쇠를 바꾸는 등 (이 때는 집주인에게 이야기해 줘야 한다) 비용이 발생하니 외출 시에는 꼭 열쇠를 챙기자.
자녀를 위한 학교 선택
자녀가 있는 경우 국제 학교 선택이 큰 고민이 될 수 있다. 국제학교, 공립학교, 사립학교 3가지 옵션이 있지만 대부분 언어적 이유로 국제학교를 택하게 된다.
홍콩은 다양한 국제학교가 있다. 각 학교마다 교육 커리큘럼과 철학이 다르고, 아래 사항을 참고하여 학비, 입학 절차 등 충분히 사전 조사해야 한다. (참고할 만한 사이트: 국제학교 리스트 International School Database 국제학교 관련 커뮤니티 Hong Kong Schools)
교육 커리큘럼: IB, AP, 영국식 등 다양한 커리큘럼 중 자녀에게 적합한 것을 선택한다.
입학절차 및 대기 시간: 일부 인기 학교는 대기 시간이 길 수 있으므로 미리 신청해야 한다. 보통 학기가 끝나는 2-3월에 다음 학년 여부 조사 하니 8월에 입학한다면 3-5월 사이에는 확인하자.
학비 및 추가 비용: 교육비 지원과 학교별 학비 구조를 확인한다.
학비 외에도 입학/등록할 때 디벤처(Debenture)와 캐피털 레비(Capital Levy) 금액이 포함되기도 한다. 디벤처는 개인 (Individual Debenture) 또는 회사가 제공하는 것(Corporate Debenture)으로 나뉘는데 회사 디벤처 경우는 일정 개수를 확보해 둔 것이라 퇴사할 경우 다른 직원에게로 넘어가게 된다.
보통 디벤처는 HK$25,000 (ESF, 425만 원)부터 HK$10M (Top 국제학교, 17억 원)까지 천차만별이고, 학교에 따라서 감가상각되거나 환급되기도 한다 (예. 5년 동안 감가상각이면 5년 학교 다니면 환급 없음). 반면 캐피털 레비는 연간 일정 금액을 내고 환급되지 않는데, 금액이 커서 그렇지 성격은 예전 한국의 기성회비나 육성회비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우리는 아이가 어려서 preschool로 바로 들어갔지만, 취학 아동이 있는 경우는 학교를 미리 찾아서 지원해 둬야 한다. 원하는 학교가 안돼도 자리가 나면 중간에 전학 가는 경우가 있지만 이 경우 전학한 학교에 다시 디벤처나 캐피털 레비를 지급해야 한다.
홍콩은 국제학교가 많은 편이지만,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들어갈 때는 대부분 3-4개 이상의 학교에 지원해서 인터뷰 뺑뺑이를 다니기도 한다.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 학교로는 Korean International School (KIS), American International School (AIS), English Schools Foundations (ESF)가 있다.
헬퍼 (Domestic Helper, Maid) 고용하기
최근 서울에서도 필리핀 가사도우미를 시험 운행 중이지만, 홍콩에서는 헬퍼(가사 도우미) 고용이 일반적이고, 맞벌이라면 필수다. 헬퍼는 가사뿐 아니라 육아까지 도와주며, 계약은 2년 단위로 진행한다. 홍콩의 헬퍼 제도는 몇 십 년 동안 다듬어져서 고용, 휴가, 퇴직, 업무 등 세부 내역이 정부 사이트에 잘 정의되어 있고, 해마다 최저임금도 발표하고 있다.
보통 에이전시 (로컬이나 특수 에이전시), 지인 소개, 페이스북 그룹이나 현지 커뮤니티를 통해서 구한다.
헬퍼는 계약 만료 후 2주 이내에 새로운 고용주를 찾지 못하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좋은 헬퍼를 만나면 가능한 한 빨리 오퍼를 주는 게 중요하다. 실제로 우리는 도착한 첫 일요일에 몇 명 인터뷰한 후 그날 저녁 오퍼를 주었더니 이미 다른 곳에서 제안을 받았다고 하더라. 결국 우리 헬퍼 이모를 만나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하게 됐지만...
계약이 만료되었다 해도 Expired인지 Terminated인지에 따라 다르다.
Expired는 계약 2년을 다 채운 경우이며, 갱신하지 않기로 한 것이라면, Terminated는 중도 해지된 경우이다. 중도 해지의 사유는 반드시 확인하는 것이 좋다.
추천서가 있는지 물어보면 대부분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 보여주는 경우는 드물다. 정말 추천서를 가지고 왔다면 그 헬퍼가 신뢰할 만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도 좋다. 물론 그전 고용주와 잘 맞았다고 당신과 잘 맞을 거란 보장은 없지만...
... 그리고 새로운 문화와 언어에 적응하기
홍콩은 다양한 문화가 혼합된 도시로 중국 전통과 서양 문화가 공존한다.
무엇보다 현지 축제에 참여하고, 다양한 로컬 음식을 즐기며, 기본 회화 정도는 익혀두면 홍콩 생활이 훨씬 즐거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