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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ark Nov 15. 2024

역사 속으로 사라진 점보 레스토랑

홍콩을 상징하던 수상 레스토랑이 수심 1,000m 심해로 가라앉다.

홍콩섬 남쪽 에버딘(香港仔/Aberdeen)에 있던 수상 레스토랑 점보(珍寶海鮮舫)는 홍콩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관광명소였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지미 카터 전 미대통령을 비롯한 홍콩을 방문하는 귀빈들은 물론 관광객이라면 한 번쯤 가보는 그야말로 홍콩을 상징하는 식당이었다.


1976년 홍콩출신 카지노 재벌 '스티븐 호'에 의해 만들어진 점보는 작은 배를 타고 건너가야 식당을 이용할 수 있었으며 내부에 고급 서양식 레스토랑, 광동식 레스토랑, 연회장을 겸비했으며 76m의 길이에 동시에 2,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고 문을 닫기 전까지 총 3천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방문했다고 한다.

점보를 방문한 귀빈들과 화려한 인테리어 (사진출처 : SCMP)

맛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홍콩사람들은 이 레스토랑이 가격에 비해 그렇게까지 대단한 음식들을 내놓는 곳이 아니라 관광객들을 위한 장소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해외에서 온 친구나 손님을 대접하거나 결혼식 연회 같은 행사를 치르기에 중국의 옛 황궁을 모티브로 한 으리으리한 외관과 화려한 인테리어를 자랑했던 점보만큼 어울리는 곳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종종 이용하고는 했다고 한다.


이 거대한 수상 레스토랑 점보는 1970년대 이후 홍콩 경제의 부흥기를 상징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90년대 후반부터 홍콩을 강타한 국제금융위기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일시적으로 영업중지를 선택하기도 했고 새로운 도약을 위한 리노베이션도 단행했지만 대세를 돌리지는 못했다.

점보는 2020년 3월 팬데믹과 함께 그간 누적된 적자를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는다는 발표를 했고, 이 역사적인 레스토랑을 다시 살리기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지만 이 거대하고 낡은 레스토랑을 살릴 투자자는 결국 나타나지 않았다.

배를 타야 들어갈 수 있었던 점보의 전경(사진출처 : SCMP)

2022년 6월 14일, 점보는 별다른 발표 없이 한국국적의 예인선 '재원 9호'에 의해 에버딘 항에서 견인되어 남중국해로 향했다. 4일 후 6월 18일 중국 하이난섬 남쪽 파라셀군도 근방 공해에서 악천후로 인해 침몰했다는 점보 레스토랑 측의 공식발표가 있었다.

홍콩을 상징하던 명소가 인양도 불가능한 심해 1,000m 바닷속으로 수장되었다는 뉴스를 들은 사람들은 도시의 유산이 영원히 사라졌다는 상실감에 충격에 빠졌다. 많은 언론과 사람들은 이날 악천후가 예보되지 않았었다는 이유 등을 들어 회사가 영업중지 후 길어진 정박으로 인한 비용과 철거 및 해체비용을 아끼기 위해 점보를 고의로 공해에 침몰시켰다는 의심을 감추지 않았다. 실제로 선박이 공해에 침몰할 경우 선주는 선박을 인양할 의무가 없다고 한다.

홍콩 언론이 보도한 점보 침몰당시 예인선의 항적

그 규모만큼이나 화려했던 홍콩의 황금기를 상징하던 점보 레스토랑은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오랜 기간 홍콩을 대표하는 아이콘이었던 만큼 많은 게임, 영화 등 대중문화 속에서 만나볼 수 있다.

게임에서는 아랑전설 2, 영화로는 프로텍터(1985), 고질라 vs 디스트로이어(1995), 식신 (1996), 무간도 2(2003), 도둑들(2012) 등에서 아직도 점보의 추억을 만나볼 수 있다.

대중문화 속에 남겨진 점보의 추억

이제는 홍콩을 방문해도 점보 레스토랑을 방문할 수 없지만, 어쩌면 지금은 남중국해의 용왕이 점보에서 만찬을 벌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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