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이어지는 무더운 날씨에 어찌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요즘 저를 둘러싼 많은 것들의 유통기한이 끝나버린 듯한 조금 묘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시작은 건조기였는데요, 처음 이사를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 어디에 빨래를 널어도 영원히 마르질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르지 않은 옷을 입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라, 더 이상 짐이 들어가지 않는 구석을 쪼개고 쪼개 수건 여섯 장 정도가 들어가는 작은 건조기를 겨우 들여놓았습니다. 세탁기를 한 번 돌리면 건조기는 내리 세 번 정도는 돌려야 빨래를 모두 말릴 수 있었지만 저는 아무튼 마른 옷을 입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했습니다. 바로 그 건조기가 얼마 전 내부 통이 돌다가 멈추어 버려 건조기 속 옷들의 건조에 그만 빈부격차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아래에 있는 옷들은 누룽지가 되어 몇 개나 버려야 했지만, 위에 있는 옷들은 영원히 축축한 채로 제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그다음은 싱크대였습니다. 미룰 수 있는 데까지 외면해 둔 설거지를 20분에 걸쳐 모두 해치우고 난 뒤 난데없이 싱크대가 막혀버린 것입니다. 저는 어두운 밤, 물이 가득 찬 싱크대 앞에 서서 보이지 않는 수도관의 내부를 상상하며 하염없이 물이 내려가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지막은 의자인데요. 네 개의 다리와 네 개의 바퀴가 달린 작업 방의 의자는 이제 더 이상 저의 무게를 견디기 힘겨웠던 걸까요, 왼쪽 다리의 바퀴 두 개가 예고도 없이 부러져 저는 의자에 앉은 채로 피사의 사탑처럼 한쪽으로 기울고 말았습니다.
무엇보다 저를 기운 빠지게 한 것이 바로 이 의자입니다.
새 의자를 산다 해도, 이 집에는 이 망가진 의자를 치워둘 장소가 없습니다. 대형폐기물로 내놓기에는 엘리베이터도 없는 이 좁은 계단으로 제가 들고 내려가기는 다소 어렵지 않을까 싶은 크기와 무게입니다. 그렇다고 물론 왼쪽으로 상당히 기울어진 채로 앉아서 작업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난감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아, 쓰다 보니 기억이 났습니다. 건조기 이전에 선풍기가 있었군요. 갑자기 날개가 빠져서 분해해야 했는데요, 이제 와서 생각하니 이건 그리 큰 일도 아니어서 망가짐의 전초전 정도로 해두죠.
영문도 모른 채 저는 매주 명을 다한 사물들을 맞닥뜨리고 있습니다. 사실은 이 집의 모든 것들이 조용히 사망선고를 기다리고 있는 걸 저만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다음 주에도 또 무언가가 멈추게 될까요, 그것들의 종말을 하나씩 지켜보다가 저의 어떤 시절인가도 막을 내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정도로 사소하게 운이 없는 건 아주 큰 행운이 다가오고 있어 그쪽에 모든 운을 써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억지로 행복회로를 돌려봅니다.
그게 아니라 하더라도 몹시 거대한 하나의 재앙이 다가오는 걸 운들이 최선을 다해 제 몸을 부수어 그보다 작은 여러 개의 재앙으로 모습을 드러낸 거라 믿습니다.
주위의 많은 것들이 하나씩 멈추고 있다고 하여 저마저도 가만히 멈춰있을 수 없으니까요, 무엇이 어찌 되었든 이 시간도 지나가겠죠. 결국 시간은 흘러가고 모든 것은 빠르게 과거가 되어가니까요.
그대에게는 부디 별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운이 나쁜 건 한 사람으로 족하니까요.
다음에는 내게 찾아온(올) 행운을 즐겁게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이 망가지고 있는 원더랜드에서 의자 다리 밑에 책과 노트를 잔뜩 끼운 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