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게도 진료를 보러 간 피부과의 의사 선생님의 피부 상태 역시 나와 비슷했다.
아토피와 햇빛 알레르기가 있고 외부 자극에 의해 쉽게 염증이 생기는.
나는 얼굴 염증은 첫 발발이라 유독 뜨겁고 습한 올여름 날씨 때문일 수 있으니 조금 더 지켜보자고 하셨지만, 의사 본인은 화장은 물론 선크림도 바를 수 없어서 평생 맨얼굴로 다녔고-다니는 중이고- 외부 활동을 극히 제한하며 피서지 같은 곳은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고 하신다. 다행히 실내에서 업무를 하는 직업이라 큰 어려움은 없지만 그런 본인도 약을 드신다고. 나 역시 비슷한 패턴으로 진행된다면 외부 활동을 최소화할 수 있는 생활이 최선일지도 모른다고 하신다. 이렇게 되고 보니 청개구리처럼 그래도 선크림 정도는 바르고 싶어진다. 딱히 그동안도 도움이 될 정도로 착실히 바르지도 않은 주제에.
하지만 (어쩌면 다가올) 미래를 바로 눈앞에서 목도하고 보니 완치는 어렵겠다 생각이 들면서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다. 지금이 삶의 방식을 바꿀 수 있는 좋은 기회처럼 느껴졌다. 외부 활동을 최소화하며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수익 구조를 어떤 방식으로 꾸려나갈 수 있을지를 고민해 봐야겠구나, 엄청나게 챙이 넓은 아방가르드한 디자인의 모자를 사야 할까? 거기에는 어떤 좌절도 절망도 없이 오히려 산뜻함이 남았다. 불과 일주일 선크림도 없는 맨얼굴 바람에 얼굴색은 벌써 짙어졌고, 안 그래도 얼굴 가득한 포인트들은 한층 신이 나 보인다. 뭐 그것도 나쁘지 않다 파리지엥의 마음으로 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