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 건조기에 옷들을 낑낑거리며 넣다가 문득,
몽땅 꺼내 거대한 부직포 가방에 넣는다. 물을 머금은 옷들은 무척이나 무거웠지만 길 건너에 있는 코인 세탁소까지는 어떻게든 들고 갈 수 있을 것 같다. 두터운 외투를 걸치고 모자를 쓰고 캔버스화를 꿰신으면서 문고본 한 권을 주머니에 같이 챙긴다. 으레 코인 세탁소라는 건 그 앞에 앉아 세탁물을 기다리며 책을 읽는 곳 아닌가. 아주 오래전 본 영화 속 주인공이 코인 세탁소에서 세탁물을 기다리며 책을 읽는다. 이방인인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책 뒤에 숨는다. 그런 내용이었던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그날 이후 내게 코인 세탁소는 책과 하나의 묶음이 되었다. 하지만 코인 세탁소에 가는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았는데 내게 세탁기가 없을 때는 코인 세탁소도 보편화되지 않았고 코인 세탁소가 골목마다 생긴 후로는 내게도 세탁기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대로 긴 긴 시간이 흘러 드디어 오늘에서야 나는 코인 세탁소에 입성해 책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건 미처 예상하지 못한 순간이었고 이런 식이라면, 살면서 염원한 모든 것들을 반드시 마주치는 순간이 언젠가는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모든 염원들은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어지는데, 인간의 수명이 그 언젠가에 미치기 전에 끝나버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하며 문고본을 손에 들고 있는 수요일 오전 11시 26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