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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Jan 19. 2023

울고 나니 보이는 것들.

결국 한 번 울었습니다.

아이의 방학 동안 여덟 살 첫째와 함께 출근을 했다. 때부터 수시로 나는 나를 잡다. 나는 이중인격자처럼 하나의 사건을 두고 완전 다른 생각을 했다. 한 번은 손님이 아이에게 아는 체를 했는데 인사를 받지 않고 과도한 관심을 보이는 그 사람에게 아이가 짜증투의 대답까지 한 적이 있다. 나는 바로 아이를 채근하며 잔소리를 퍼부었다. 


때를 떠올리며 참지 못한 걸 후회했다. 꼭 때때마다 인사를 잘해야만 하는 건 아닌데 너무 내 기준대로 아이를 판단하고 몰아붙인 거 같았기 때문이다. 아이는 매번 인사를 잘했고 그때만 그랬었는데. 그냥 모른 체하며 슬쩍 다른 대화로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 나는 왜 남을 의식한다고 쩔쩔매며 아이를 탓했을까. 질끈 한 번쯤은 눈감을 수 있는데 그걸 못해 아이와 자주 부딪히는 거 같아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 감정과는 별개로 아이에게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게임기와 컴퓨터, 넷플릭스, 티빙까지 모든 게 갖춰진 집을 두고 왜 날 굳이 따라와서 속만 썩이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서 따라왔으면 내가 좋아할 만한 일은 아니더라도 내 마음이 편안할 수 있게라도 도와주어야 하는데 울컥울컥 한 행동을 자주 보이니 울화통이 치밀었다. 직원분들과 손님들 앞에서 내 이름을 부르기도 하고 배고프다고 해서 갈 준비를 하는 중에도 난리를 치고. 바쁠 때 편의점에 가자고 떼를 쓰고. 신이 즉흥적으로  한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펄펄 뛰고. 매장을 맨발로 뛰어다니고.


하지만 나도 문제였다. 나만의 시간이 없으니 아이와 자꾸 거리가 두고 싶어졌다. 수시로 아이를 살갑게 챙겨야 하는데 잠깐씩 시간이 나도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잠시만이라도 혼자 앉아 멍하게 있고 싶었다. 그때마다 나를 탓했다. 인내심이 좋지 않은 나를 탓했고, 아이와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주지 못한 내 무능함을 탓했다. 너무 지쳐서, 너무 진이 빠져서 하지 못하는 거라는 생각을 했어도 됐는데 왜 하지 않았다고만 생각했을까.


나를 탓하는 동안 내 감정은 깊은 수렁에 빠져들었다. 최선을 다하면서도 아이에게 미안해서, 그런 내 마음도 몰라주는 아이에게 서운해서 자꾸만 슬픔에 빠졌다. 집에 있을 때 아이에게 소리치는 내 모습이 괴물 같았다. 껍데기만 내 그대로이고 다른 걸 데려다 놓은 것 같았다. 낯설었다. 화를 내는 나도, 혼을 내는 나도 다 다른 사람처럼 익숙해지질 않았다. 나는 내 자신을 마주할 자신도 없었다. 그랬다가는 휴대폰도 들지 않고 낯선 길로 발검음을 옮길 거였기 때문이다. 어디라도 좋으니 혼자 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절실했다.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다면 아이들은 나를 찾을 거고, 신랑 혼자 둘을 보려면 더 힘들겠지를 걱정해 정작 나를 돌보지 못했었다.


찍어 누르기만 하면 언젠간 폭발하게 되어 있다. 어제 자려고 잠자리에 누웠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동안 날 돌보지 않았던 나는 정확히 무슨 일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지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눈물이 나니 이상하게 속이 좀 후련했다.

'나는 울고 싶었나 보다. 나는 울만큼 힘이 들었나 보다.'

나를 다독였다.


처음으로 용기가 났다. 아이들과 떨어져 혼자 무언갈 해봐도 좋지 않을까 하는 용기.

'요즘 개봉 중인 영화는 뭐가 있지. 혼자서 팝콘도 사이다도 사서 영화를 볼까. 서점에 갔다 카페에 들러 책을 조금 읽을까.'

몇 년간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던, 하지 않았던 나 혼자 만의 시간을 떠올렸다. 책임감도, 내가 있고 있는 거지 내가 무너지면 그걸 수행할 힘 또한 사라질 것이었다. 나는 나를 지키기로 했다.


그러고 나니 신기하게도 보이지 않던 것들이 환한 빛줄기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내 삶을 기꺼이 받아들일 용의가 생겼다.


'그래. 사실 요새만큼 일어나기 편한 때가 언제 있었어. 학교에 데려다줄 때보다 한 시간이나 늦게 일어나도 되고. 또 아이와 함께 오랜 시간 있으며 좋았던 적도 많았잖아. 아이가 무얼 좋아하는지, 요새 어떤 것들에 관심이 있는지 더 알게 됐잖아. 보드라운 살결을 내 볼에 비비고 안아달라 할 때도 너무 이쁘고 좋잖아. 내가 혼을 내도 여전히 엄마가 최고라는 그 아이가 고마웠잖아. 마사지를 매일같이 해주고, 내 걱정을 제일 많이 해주는 것도 첫째 복덩이였잖아.'

복덩이의 행동들이 좋아 보였다. 


조만간 주머니는 무겁게, 딸린 식구는 없이 바깥나들이를 꼭 가볼 생각이다.

'처음부터 무리할 필요는 없겠지 동네를 한 시간 정도 여유 있게 걸어볼까. 정말 책을 들고 카페를 갈까. 혼자 영화관에 가서 영화 상영 시간만큼이라도 집걱정을 안 하려면 얼마나 더 담이 커져야 할까.' 두 발걸음 가벼운 상상을 한다.


가끔씩, 아주 가끔씩 울고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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