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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Jan 30. 2023

요즘 시대에 종아리까지 올라간 바지를 입는 너.

두 돌이 지난 둘째 아이에게 부치는 편지.

아침에 눈을 뜬 순간부터 절로 웃음이 나. 내 머리카락이 애착대상인 네가 곁에 꼭 붙어 자고 서야.(인형보다도 더 작고 귀여운 이 아이가 내 아이라니) 네 숨소리 하나도 허투루 듣고 싶지 않아 잠시지만 네게 귀를 기울여. 를 닮아 잠귀가 밝은 너는 형을 깨우러 가는 소리에 먼저 일어나 두 눈을 껌뻑껌뻑하고 있어. 그러다 나와 눈을 마주치면 미소를 지어줘. 내가 미소 지을 때마다 꼭 따라 웃어주기까지 하고 말이야. 사이다의 상쾌함도 네 웃음 만할까. 네가 웃을 때면 이 세상 모든 빛이 널 향하는 거 같아. 너밖에 보이지 않거든. 빛이 비친 사과처럼 반들반들, 동글동글 네가 얼마나 귀여운지 몰라. 몰랑 몰랑한 네 볼은 탱탱볼처럼 탱탱해. 나는 그런 네게 매일 잘 잤냐고 물어. 그런데 있지. 가끔 내가 묻기도 전에 네가 잘 잤다고 말해주는 거 있지. 말도 잘하지 못하는 네가 잘 잤다는 말을 하면 아침 기상의 고단함도 씻은 듯이 날아가버리는 것 같아. 네가 잘 잤다는데 엄마인 내게 그것보다 좋은 건 없거든.


너는 밤새 침대 여기저기를 누비고 자느라 무릎까지 올라간 내복을 추스를 마음도 없이 내게 달려와. 두 팔을 벌리고는 "안아줘"라고 하지. 그런 널 번쩍 안아 들면 넌 처음부터 나와 한 몸이었던 것처럼 무게가 느껴지지 않아. 네가 그만큼 익숙해서 인가 봐. 우리가 매일을 한 몸처럼 붙어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어. 코알라처럼 내게 붙어있는  안고 있으면 무가 되어 네게 그늘이 되어주고 싶어.


너는 바람과 추위에 취약해. 아무리 꽁꽁 싸매도 잠시만 찬 바람을 쐐 여지없이 말간 콧물을 흘리거든. 그럼 내게 와서 "코", "코"하는데 그 뜻은 그때마다 달라. 콧물을 닦아달란 뜻이기도 하고 코 안에 불편하단 뜻이기도 해. 그럼 난 네 얼굴을 유심히 살펴가며 뜻을 맞춰가. 이제껏 네가 말을 하기 전까지 제일 많이 한 연습이 이건대 이 정도쯤은 식은 죽 먹기야. 불편한 게 코라는 걸 알려준 것만 해도 어디야. 넌 아직 무척이나 아기라서 작은 내 행동에도 금세 마음이 편안해지나 봐. 손으로 콧물을 대충 닦기만 해 줘도 대부분 만족하며 돌아가거든.


애교가 유독 많은 너는 내가 해달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갑자기 다가와 뽀뽀를 해주기도 해. 예상치 못한 선물이 이렇게 설레고 두근거리는 거란 걸 넌 알까? 나는 뽀뽀하고 돌아서는 널 가만히 두 못 다시 끌어안 네게 뽀뽀를 해. 넌 하늘에서 내려 준 선물이야.


"안녕하세요." 해야지 하면 "안녕하세요.", "식사하세요." 하면 "식사하세요.". 이제는 제법 긴 말도 다 따라 하는데 내 말이 네 언어로 다시 빚어지면 문화재처럼 귀해져. 넌 정말 아기 천사가 틀림없어.


한 번은 볼일을 보러 집을 나서는 할머니를 현관까지 따라가서 "가지 마요."라는 말을 네가 했어. 밖에 나가는 걸 붙든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 할머니께서 다음날 일정이 꽉 차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오신 거 있지. 네가 눈에 밟혀서 도저히 오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으셨대. 그 정도면 아마 자려고 누워도 니 얼굴이 아른거릴 만큼 네게 푹 빠진 거겠지. 엄마는 자라면서 할머니를 많이 웃게 해드리지 못했는데, 네가 내 대신 할머니를 원 없이 웃게 해 드려서 고마워. 네게 그것까지 바란 건 아니었는데 널 보면 나처럼 모든 시름이 사라지는지 할머니가 참 많이 웃으시더라. 행복해하시더라.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너는 정말 뭐든지 잘 먹잖아. 세 살 때부터 김치찌개와 김치볶음밥도 먹고 비지찌개와 청국장에 밥을 비벼 먹기도 했잖아. 그중에서도 말아먹는 밥을 제일 좋아하지. 어린이집에서도 나이를 불문하고 복숭이 네가 제일 잘 먹는다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실 정도야. 먹는 양만큼 에너지도 많은 너는 잠시도 쉬지 않아 통통한 체격이 아니다 보니 다른 선생님들께 말하면 믿질 않는다고 억울해하셨어. 그런데 나는 알지. 네가 얼마나 잘 먹는지. 한 때는 네 두 손에 귤이 항상 쥐어져 있었잖아. 앉은자리에서 여섯 개씩 까먹고 했지. 집에서도 넌 밥공기에 반공기씩 세 그릇을 연달아 먹기도 하고. 나는 그게 정말 큰 복인 거 같아. 잘 먹어주는 것만 해도 네가 할 일은 다 한다고 생각하. 안 먹으면 애가 타고 맘이 쓰일 텐데 잘 먹으니 바라만 보고 있어도 얼마나 뿌듯하고 배부르겠어.


나는 네가 크는 게 무서워. 지금 이대로가 너무너무 예뻐서 눈을 뗄 수가 없어서야. 그래서 이대로 크지 않고 있었으면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자꾸 하게 돼. 너는 세상 모든 단어를 아기 말로 해. 네가 하는 "사랑해"라는 말도 "누구 새끼"하고 물어봤을 때 "엄마 새끼"라고 하는 말도 자꾸자꾸 듣고 싶어. 이제 말문이 트여 듣고 긴 문장들도 따라 하는데 나는 그게 너무나 신기한 거 있지. 볼 때마다 처음 보는 것처럼 경이롭고 신비로와.  일상적인 말들도 마법 가루를 뿌린 것 마냥 얼마나 달콤한지 몰라. 초콜릿을 귀로도 맛볼 수 있단 걸 요새 너로 인해 느끼고 있어. 그래서 자꾸 나는 너를 귀찮게 해. 네가 닳도록 바라 보고, 말을 거니까 말이야. "이게 뭐야?"하고 코를 가리키면 "코야"하고 말하고 배를 가리키면 "배야"하고 말하는데 그런 당연한 호칭들도 네가 하면 퀴즈쇼에서 마지막 관문에서 퀴즈를 맞힌 것처럼 기쁘지 뭐야. 


"할머니"라는 발음이 아직 어려운지 "어흥이"하고 불러. 맞아. 어흥이는 네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야. 공룡과 상어를 좋아하는 너는 공룡, 상어, 사자, 호랑이를 모두 "어흥이"라고 불러. 공룡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너는 공룡을 두 손에 쥐고는 공룡 흉내를 낸다고 쿵쿵 소리를 내며 다녀. 널 마주치는 사람들은 모두 "아유. 무서워."하고 숨는 척을 하고. 티브이를 볼 때 "엄마, 어흥이 틀어줘."하고 말을 하는데 나는 어흥이가 보고 싶은 널 하루종일 보고 있고 싶은 거 있지.


근데 난 네가 이렇게 이쁘다면서도 무척이나 빨리 자라고 있는 걸 몰랐나 봐. 어느 날 어린이집에 가려고 옷을 입히는데 네 바지가 거의 다 무릎까지 올라가는 거 있지. 그 깡충한 모습에 얼마나 놀랐던지. 놀라서 웃음도 나오지 않았어. '언제 이렇게 컸지.'라는 경이로움과 '둘째라 죄다 물려 입히다 보니 옷을 많이 사주질 않았는데, 그래서 이렇게 작은 옷들만 가득 하나.'하고 미안함이 느껴졌거든. 나미안한 마음을 가득 담아 네 옷을 설빔이란 이름으로 준비했어. 이제까지 못 해준 것들에 비해면 너무나 약소하고 작은 거지만 네게 꼭 필요한 걸 그것도 새 걸로 준비해 줄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새 옷들은 네가 입으니 더 반짝반짝 빛이 났는데  겹을 크게 접어서 입혀야 할 만큼 넉넉한 사이즈를 보니 묵은 체증이 내려가듯 답답한 마음이 사라졌어. 이제 너도 종아리까지 달랑 올라간 바지 대신 맘껏 접어 입는 바지를 입을 수 있겠구나 싶어서 말이야.


나는 요새 너희 형아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가 많아. 너희 형은 말을 다 알아듣는데도 내 말을 무시하거나 듣지 않는다고 여겨 오해하고 싸울 때가 종종 있거든. 그런데 이제 막 두 돌이 지난 너와는 싸울 일이 없잖아. 말을 못 알아듣는 너와 무슨 싸움이 되겠어. 저지를 해놓으면 내가 치우면 그만이고, 해달라는 요구사항이 있으면 들어주면 그만인데. 그래서 자꾸 형아 얘기를 많이 쓰게 돼. (그런 엄마를 네가 이해해 줄래?) 


엄마는 너도, 형도 티 없이 밝게 자라면 좋겠는데 이제 막 9살이 된 형한테는 자꾸 욕심을 부리게 되나 봐. 그래서 싸우는 일도 생기나 봐. 그런 이유로 나는 네가 마냥 예쁘다는 글을 쓰면서도 어느새 죄책감을 가지게 됐어. 말을 잘해 날 더 챙기고 걱정해 주는 건 첫째 복덩이인데 마냥 화내지 않고, 혼내지 않고 예뻐하는 건 너이니 말이야. 물론 형도 너무너무 예쁘지만 형한테는 적어도 혼을 내고 화를 낼 때가 있거든. 그래도 네 작고 소중한 모습을 더 많이 글로 남겼어야 하는데 엄마가 못났었어. 미안해. 이제 더 이상 죄책감 같은 거 느끼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네 글을 많이 쓸게. 네가 크는 게 무서워 하루가 지나가는 것도 아까우면서 나는 왜 그선택을 했을까.


형이 태어났을 땐 모든 게 처음이라 낯설고 어려웠지만 형을 마음 놓고 맘껏 사랑해 줬었는데. 네겐 태어나자마자 사랑을 나눠 줘야 하면서도 네 예쁜 모습들을 글로 더 담지 못했어. 이제는 정말 아낌없이 쓰고, 후회 없이 글로 남길게. 너도 아마 형아 나이가 되면 똑같이 속을 썩일 때도 있을 거고, 엄마를 속상하게 할 때도 있을 테지만 그건 그때 가서 그렇다고 쓰면 될 일 아니겠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또 고마운 우리 둘째 복숭아. 언제나 하는 말처럼 엄마 아가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부족한 게 많은 엄마임에도 늘 보고 웃어주고, 뽀뽀해줘서 고마워. 고맙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어. 앞으로 더 많이 쓸게. 너의 찬란한 일상을. 정말 정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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