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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Apr 03. 2023

"나가" , "나가"의 시기.

"그래. 네가 다 해보렴."

아직 세 돌도 지나지 않은 둘째의 반란이 시작됐다. 모든 걸 제 힘으로 해결하려는 시기가 온 것이다. 내 손에 있는 걸 "나가", "나가"를 외치며 가져간다든지, 앞에 있는 건 뺏기지 않으려 잽싸게 움켜쥔다.


지만 그렇게 내가 하고 싶으면 잘하면 되지. 아니, 잘하는 건 바라지도 않으니 그냥 하면 되지. 왜 꼭 정말 해야 할 것 앞에서는 튼튼한 두 리와 넘치는 체력으로 도망을 갈까.


아침에 옷을 입히는 것부터, 그전에 기저귀를 채우는 것부터 전쟁이 시작된다. 이제는 정말 힘이 세져서 다리를 버둥거리면 등을 만 불편한 자세로 한참을 씨름을 해야 한다. 겨우 한쪽 다리를 끼울라치면 다른 쪽 다리로 입고 있던 쪽도 벗겨내 버린다.


'그래서 요즘 이렇게 자주 등이 결리고 고개를 돌리는 평범한 동작조차 아플 때가 있는 걸까'


내가 발명가가 된다면 꼭 아이의 기저귀를 채우거나 옷을 입히는 기계를 만들어야겠다.


도망을 갈 때도 왜 그리 구석으로 가는지. 구석까지 아이를 찾으려 가려면 한참을 달려가야 하는데 아이의 옷을 입히기 위해 털썩 주저앉아 있던 무거운 엉덩이 일으켜야 다.


안고 올 때도 문제다. 낙지처럼 중간에 빠져나가 버리거나, 달콤한 말로 유혹을 해도 하나도 먹히지 않기 때문이다. 말이 통해야 말을 하는 사람도 신이 나서 이 말, 저 말해볼 텐데 말이 통하지 않는 아이 앞에서는 방법이 없다. 그저 말을 하다 목이 쉴 뿐이다.


거의 질질 끌고 오다 보면 하도 용을 써서 진이 다 빠져 버린다. 그게 하루에도 여러 번이니 정말 건강을 잘 챙겨야겠단 생각을 한다.


어휘와 말이 급격하게 늘었지만 아직 모든 발음이 정확하진 못한 복이가 "내가"를 똑똑히 발음하기까지는 좀 더 기다려 줘야 한다. 그 조그마한 아이가 "내가"도 아니고 "나가", "나가" 발음하면 엄마인 나는 홀딱 반해버려서 그때부터 전의를 상실해 버린다. 속으로 '그래. 네가 해라.'하고 생각해 버리는 것이다. 그러고는 그 모습이 귀여워서 넋 놓고 바라보게 된다.


요즘 콘푸레이크를 간식으로 즐겨 먹는 복숭이는 우유를 따를 때부터 "나가", "나가"를 한다. 흰 우유 잘 안 먹으면서, 콘푸레이크가 적셔진 우유는 달달하니  척을 한 후에 건더기를 양 끝으로 밀어버리고 우유 떠먹는다. 그러고도 양이 차지 으면 그대로 들이키는데 그러면 주위가 초토화된다. 저지래를 하는 동안은 잠시 다른 걸 보고 있는 게 좋다. 우유를 흘리고 튀기는 걸 보고 있으면, 당장 닦고 싶어 지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뭔가를 하나 먹으면 이제는 옷을 다 갈아입혀야 하는데 무조건 "나가", "나가"를 외치고 보니 하도록 둘 수밖에. 매일 같이 먹여달라고, 해달라고 하던 모든 일들을 자신이 직접 해보겠다는데 그 첫 발걸음이 대견해서 어지럽히고, 더럽혀도 좋으니 마냥 곁에서 응원을 해주고 은 마음도 든다.


가끔은 마음이 급해진 복숭이가 더 길게 "나가할게."라고 말할 때면 야무져 보이기까지 한다. 그렇게 아가였는데 어느새 이만큼 커서 다 나가한다니. 시간을 묶어두고 싶다. 여전히 "나가"를 외치는 복숭이와 함께 숨바꼭질을 하고, 막대기 하나로 흙장난도 더 오래 치고 싶다. 


그러다가도 그 마음이 바뀔 때가 하루에도 여러 번 있는데 예를 들면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보고 달려들 때다. "나가"라고 외치기만 하지 아직 발끝을 들어도 닿지를 않는다. 그럴 때면 아이를 번쩍 들어 올려 버튼을 누게 해줘야 하는데 안 그래도 잠투정하면 업어야지, 수시로 안아 들어야지 해서 허리가 욱신거릴 때가 많은데 그때마다 번쩍번쩍 들어 올리려니 몸이 힘이 든다.


문을 열 때도 마찬가지이다. 제일로 단단한 현관문은 어른이 열어도 꽤 많은 힘을 주어야 하는데 현관문도 자신이 열겠다고 손을 뻗는다. 그러면 나는 그 모습이 조마조마해서 손을 뻗어 문을 열고 있는 힘을 보탠다. 자칫 잘못하면 손이라도 끼일까 걱정이 되는데 뻗은 팔의 중간에 끼여 기어코 가를 외치는 복숭이는 제가 하는 것에만 온통 관심이 쏠려있다.


우리 아이는 냉장고에 사는 것도 아니면서 요즘 자꾸 의자를 끌고 가 냉장고를 열고 들어가 있는다. 두 손은 얼마나 바쁜지 이것저것 뒤지는데 대 짜요짜요를 들고 승전보를 울린 표정으로 엉덩이를 쭈욱 빼서 내려온다. 그것도 얼마나 조마조마한지. 그 짧은 다리가 혹여나 허공에서 잘 못 헛디뎌 공중이라도 밟다고 치면 정말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다.


어떤 날에는 냉장고를 양쪽으로 활짝 열어놓고 다른 일을 하러 가버려서 불 꺼진 냉장고를 발견할 때 종종 있다. 전기세는 둘째치고 냉장고 안 반찬들이 다 상할까 봐 걱정이 된다. 손이 닿는 김치냉장고와 냉동실 부분이 더 걱정되는 건 말할 것도 없다.


나갔다 올 때마다 손을 씻으러 향하는데 그때면 어없이 "나가 물 틀을 거"라는 말을 한다. 그 문장도 다 하지 못해 저렇게 말을 하는 거며, 내가를 꼭 저렇게 발음하는 거며. 진짜 귀여워 못살겠다.


이 시기가 무한하지 않다는 걸 알아서일까. "나가", "나가"라고 한 후부터 몸은 몹시 힘들어졌지만 깨기 싫은 꿈처럼 복숭이의 발음이 정확해지는 게 두려울 정도다.


'정말로 나가 다 할 수 있는 때가 오면 나는 어떡하지.' 


요새 첫째 복덩이 학교에 함께 잘 가다가도 거의 다 와서 내게 "여기서부터는 혼자 갈게."라고 한다. 나는 그 정도 커버린 것도 너무 아쉽고 아까운데. 멀어져 가는 등을 한참을 서서 바라본다. 


나는 금세 시간이 이렇게 흘러버린 게 믿기지가 않는다. 그래서 더더욱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엄마"라고 외칠 때 기꺼이 달려가 아이를 안아주고 싶다. 아니면 아이가 흘리는 밥알들을, 우유를 닦으며 힘든 기색을 지우고 싶다. 아직 어린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해줘야 할 게 너무 많은데 아이가 크는 게 날마다 아쉽다.


실은 넌 내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걸 알아. 요즘처럼 날씨 좋은 날 네 손을 잡고 놀이터 한 번, 옥상 한 번 더 가주기만 해도 넌 해 같이 밝게 웃어주겠지. 아니, 내가 널 보고 웃기만 해도 너는 내게 거울을 보고 있는 것처럼 해맑게 웃어주겠지. 네가 내게 많은 걸 바라지 않았던 것처럼 나도 그럴게. 네 서툰 말 하나, 네 서툰 몸짓 하나하나를 귀여워하고 사랑스러워할게. 그리고 널 아낌없이 사랑할게. 네가 훌쩍 큰 이후에도 있는 그대로의 널 존중하고 사랑해줄게. 사랑스러운 아가야. 엄마 아기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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