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하영 Apr 19. 2023

캠핑 가는 날이 장날

그 넓은 자연에서 그 좁은 텐트 속 우리들의 소중한 추억.

오토캠핑장에 가보는 건 처음이었지만, 자연 속 내 보금자리만드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이것만큼 자연 친화적인 활동은 없을 거라 여겼다. 텐트에 누워 위를 쳐다보면 푸른 하늘이 보일 것이고, 옆으로 고개를 돌리면 한없이 너른 바다가 펼쳐져 있을 것이다. 온갖 기대를 하며 오토캠핑장 예다.


캠핑 예약을 한 그날부터 난 이미 캠핑장에 모든 마음을 다 빼앗겼다. 예약창 사진을 보니 경사가 있는 곳에 캠핑장이 있어 바다가 풍경처럼 펼쳐져 있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던 곳이었지만, 그곳에 누워 드넓은 하늘을 보고 해변을 거니는 걸 상상했다.


오토캠핑장에 가는 당일이 되었다. 전날 일기예보에는 새벽 6시면 비가 그친다고 돼있었다. 그런데 일어나 직접 본 하늘은 몹시 우중충했으며 먹구름이 잔뜩 끼여있었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래도 나는 믿고 싶었다. 비는 우리가 출발도 하기 전 이미 그쳤고, 다시는 내리지 않을 거라는 걸.


요새 줄곧 따뜻했던 날씨를 떠올리며 큰맘 먹고 구매한 여름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다리는 맨다리였고 멋을 내기 위해 얇은 카디건을 걸쳐 입었다. 그에 걸맞게 화장도 살짝 했다. 완벽한 봄 치장이었다.


중간쯤 갔을까 차에 빗방울이 떨어졌다. 우리가 도착할 때면 개일 거라며 안심을 시켰지만 두꺼운 잠바조차 챙기지 않았기에 실은 너무 불안했다.


다행히 도착했을 때 비가 오지 않았다. 서둘러 우리의 보금자리인 텐트를 쳤는데 뭔가가 이상했다. 평소에 작다는 생각을 전혀 못했던 텐트인데 오토캠핑장 안에서는 무척이나 왜소했다. 다른 곳들은 텐트를 치면 그 구역이 꽉 차는데 우리만 같은 텐트를 한 두 개 더 쳐도 될 만큼 자리가 남았기 때문이다. 원터치의 장점도, 원터치텐트 치고는 4~5인용의 대형텐트라는 것도 다 무색하게 느껴졌다.


설상가상으로 아이는 텐트 창문에 붙어 (침만 흘리지 않았지) 다른 텐트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저건 거의 차 같다느니, 엄청 크고 좋다느니 같은 이야기를 랩 하 듯 쏟아부었다. 그때 들려오는 망치소리에 "엄청 전문가 같다."며 아이가 칭찬했다. 그 망치 소리는 잊힐 때쯤이면 다시 들려오곤 했는데 망치질 하나 필요하지 않은 우리 텐트의 처지를 일깨워주는 수단이 됐다. 이는 꽤 오래 창문에 붙어 다른 텐트를 구경했다.


 생각은 없었지만 잔다고 해도 꼿꼿이 설 수도 없는 이 안에서 어떻게 잠까지 자겠어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런 생각을 하다 신랑과 눈이 마주쳤다. 텐트 속을 가득 채울 만큼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 비록 이 캠핑장에서 가장 작은 텐트를 폈지만 첫 경험 치고는 전혀 나쁘지 않았다. 처음이 다 그렇지 그저 웃음이 터져 나오기만 했다.


풍경도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달랐다. 사진으로 봤을 때는 시야가 트여 바다까지 쫙 내려다 보였는데 차가 세워지고 텐트가 쳐지니 우리 자리에서 보이는 거라고는 양옆 텐트와 앞텐트 그리고 언덕에 핀 풀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포기가 몹시 빠른 사람이기에 그것마저도 상관없었다. 몇 발자국만 더 걸어 나가면 이어진 길 너머로 바다가 내려다 보이기에 튼튼한 두 다리로 걸어 나가면 되었다. 좀 있다 배를 채우고 나면 걸어 내려 바닷가까지 산책해야지 부푼 꿈을 꿨다.


아이의 배고프다는 성화에 순 찜닭을 시켜 놓았다. 기다리는 동안 잠시 캠핑장 옆 언덕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산책을 나갔다.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펴 있었고, 우린 그곳에서 바다 배경으로 몇 장 사진을 찍고는 배달이 올까 봐 후다닥 내려갔다.


식기들을 가득 들고 세척장에 씻으러 가는 사람을 마주쳤을 때는 '에구. 고생이 많네. 저거 다 씻고 하려면 힘들겠다.' 하며 일할 일  없는 우리 처지가 좋다 생각했다. 적어도 고소하고 기름진 삼겹살 냄새가 풍겨오기 전까지는. 그 냄새를 맡은 첫째가 자신은 개코라며 냄새를 너무 잘 맡는 자신 때문에 괴롭다고 했다. 실은 나도 그랬다. 우리는 맛있는 냄새에 코를 벌렁거렸다.


이 모든 건 배가 부르면 절로 다 해결될 일이었다. 우리에게는 단짠 조합이 우수한 찜닭이 오고 있으니 말이다. 상상만으로도 침이 고였다. 찜닭이 차려지고는 잔치 분위기였다. 한두 숟가락을 떠먹고 있는데 익숙한 그 소리가 들려왔다. 야속하게도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서둘러 일기예보를 살펴보니 저녁까지 비가 오는 걸로 바뀌어 있었다. 눈을 의심했지만 이미 벌어진 일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비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점점 거세지기만 했다. 우리는 졸지에 텐트에 난 문이란 문은 다 닫고 텐트 속에서 옹기종기 붙어 있어야 했다.


비가 오는 바람에 캠핑장이 아무리 넓어도, 그곳에서 오분만 걸어내려가면 바다가 있는 것도 다 부질없는 것들이 되어버렸다. 신발은 젖기 전 다 차로 옮겨졌다. 화장실에 가려면 신랑의 비 맞은 슬리퍼를 끌고 가야 했다. 다녀오면 나도 비를 맞아 꿉꿉해졌다.


밖이 아예 보이지 않는 텐트 속에서 서지도 못하고 앉거나 누워 있으려니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신랑이 아프다는 대도 첫째는 계속해서 아빠를 타 올랐고, 에너지가 넘치는 둘째도 그 안을 쉴 새 없이 돌아다녔다.


빗물이 들어올 만한 구멍은 다 찾아 닫았는데도 추위는 빠르게 텐트를 파고들었다. 돌바닥 위에 깐 텐트라 바닥에서까지 찬 냉기가 올라오는 모양이었다. 그때 문득 우리는 왜 굳이 돈을 내면서까지 이곳에서 이렇게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조금 더 생각이 진행되자 돈은 하나도 아깝지 않으니 따뜻하고 아늑한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무슨 겨울처럼 이토록 춥단 말인가. 예뻐 보이려 반팔 원피스를 꺼내 입던 그 순간의 내 손을 찰싹 때리고 싶었다. 두꺼운 잠바하나 준비해 오지 않은 내가 원망스러웠다. 오늘 오기 전에 혹시 몰라 꼭 챙긴다던 몇 안 되는 준비물 중에는 담요도 있었는데 그것마저 들고 오지 않았으니 추위를 피할 방법이 도무지 떠오르질 않았다.


신랑과 나는 꽤 오래전부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눈이 마주치자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집에 가자와 비슷한 말을 꺼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추위를 모른다. 아니, 모른 척한다. 한참 들뜬 첫째가 이곳에서 밤 11시까지 있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 눈앞이 아득해졌다. 가는 길에 차 안에서 핸드폰을 조금 더 시켜준다고 했던가, 아니면 이곳에서 먹지 못한 저녁 컵라면을 집에 가서 해준다고 했던가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어느 순간 순순히 집에 가겠다고 아이가 말했다. 신랑과 나는 누가 뭐라 것도 없이 춤을 추듯 신나고 빠르게 텐트 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추진 비를 맞으며 홀로 외로이 텐트를 접는 신랑을 두고 난 차 안에 편히 있었다. 히터를 틀어놔야 하는데 시동을 켠 차에 아이들만 두기에는 위험했기 때문이다. 그때 호기심이 발동해 다른 사람들이 친 텐트를 검색해 봤다. 디자인도 다양고 금액대도 천차만별이었다. 비를 맞으면 텐트를 접는 신랑이 볼 수 있을 리 없는데 나는 뭔가에 홀린 듯이 이 장소에 필 만한 텐트들의 구매 링크를 신랑에게 보내고 있었다. 첫 캠핑이 이러했기 때문에 더더욱 다음 캠핑이 아무 기약 없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그때 텐트를 뒤지던 내 모습이 절제를 모르는 그날의 날씨 같았다.


오들오들 떨다 히터가 틀어진 차 안에 들어오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예쁜 사진들을 건지겠다고 맨다리를 드러내놓은 패기는 이미 텐트 속에서 까만 고무줄 바지를 껴입는 걸로 마무리되었다. 그럼에도 몸이 오들오들 떨리고 추울 만큼 날씨가 추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요새 들어 그리 추운 날이 없었는데 정말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헛웃음이 터져 나오며 나와 같이 오들오들 떨었을 동지들을 쳐다보았다. 아직 코감기가 다 낫지 않아 콧물을 흘리는 막내의 코를 닦아주었다. 오후 11시까지 있자고 계속 이야기를 하던 첫째도 차 안에서 무척이나 따뜻하고 포근해 보였다.


아직 우리에게 캠핑은 무리인 것 같다. 집까지 갈 것도 없이 텐트 속이 아닌 차에만 타도 이렇게 편한데 굳이 이 올망졸망한 아이들을 데리고 캠핑을 오는 일은 당분간 없을 것이다. 정말 꽤 오래 생각이 나지 않을 것이다. 텐트를 접고 집으로 가는 길은 아쉬움보다는 후련함과 이제 살았다는 안정이 온몸을 뒤덮였다.


하지만 제대로 보지 못한 바다 계속 아른거렸다. 그런 내 마음을 신랑이 눈치챘을까. 차 안에서 보기 좋은 바닷가로 우리를 데려다주었다. 창문이라도 열 보려고 해도 들이닥치는 비와 바람이 거세서 얼린 창문을 닫아 버렸다. 하지만 남는 건 사진이라 비를 뚫고 바다를 배경으로 섰다. 그리고 창문을 연 채 차 안에서 신랑이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캠핑장에 도착했을 때 찍었던 사진과 돌아가며 찍은 그 사진이 그날의 사진 전부였다.


캠핑은 이제 한참 뒤로 미뤄질 것이다. 그렇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축복인 가족들과의 일과로 이 하나쯤은 남겨두는 것도 좋지 않을까.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들과 함께라면 언제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저것 재고, 낯선 것에 불편을 느끼고, 걱정부터 하고 보는 건 어른이 되며 가지게 된 습관이다. 나도 그때는 이 습관을 잠시 벗어던지고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함께 텐트 속을 누비고, 못 가본 바닷가를 거닐어 보아야지. 신이 나면 한 술 더 떠 네 발로 뛰어다닐지도 모른다.


비가 오는 바람에 첫 오토캠핑은 아쉬움을 남겼지만, 그 넓은 자연에서 그 좁은 텐트 속 우리들의 소중한 추억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찰나이기에 소중했던 기억. 그날 핀 유채꽃밭도 내려다보이던 바다도 사진처럼 기억 속에 선명하다.






 


작가의 이전글 참관수업 날 근육이완제를 먹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