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맞지 않아도 또 보게되는 심리
스포츠 신문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프로야구 경기 결과가 대문짝(족히 200폰트 크기는 넘을 뿐더러 색깔은 대부분 벌겋게)만하게 1면에 실리는 것을 기억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크게 두 가지 목적이다. 전날 야구 경기 결과를 보기 위한 순수 스포츠파다. 두번째는 스포츠 기사 만큼이나 연예인들 관련 스캔들이라고 할 만한 큰 뉴스나 시시콜콜한 소식에 관심을 두는 파다.
스포츠 열혈 광팬들은 신문 뒷쪽에 있는 퀴즈풀이(스도쿠 같은 것)를 풀기도 하고 하루 운세를 보는 재미도 있었다. 하루 운세는 대강 이렇다. 태어난 생년을 기준으로 풀이하는 띠별 운세다. 띠를 기준으로 그날의 운세를 점치는 것은 왠지 맞을 확률이 높아보이지 않는다. 가령 토끼띠의 87년생이라면 그날 모두 같은 운명의 배를 탄 셈이다. 그런데 그걸 한번 보고 나면 왠지 신경이 쓰인다. 무슨 중요한 계약이나 일, 특히 돈과 관련된 약속이라도 있다면 무시할 수 없게된다. 띠별 운세는 생년월일시를 보는 사주의 1/4만 보는 것에 불과하다. 그것만으로 나의 하루 운명을 예측할 수 있을까?
명리학에서는 태어난 일을 가장 중시하는데 띠만으로 하루 운세를 예측하는 것은 신빙성이 많이 떨어져 보인다. 비슷한 것으로 서양에서는 별자리를 많이 보기도 한다. 별자리를 태어난 달을 기준으로 매달 23일 전후에 다음달 22일 전후까지를 같은 별자리로 보는 점성술이다. 태어난 해보다는 월을 기준으로 했다는 점에서 개인의 성격이나 성향을 얘기할 때 종종 쓰기도 한다. 사실 1년 가운데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이 같은 성향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맞을까 의심도 들지만 흥미롭기도 하고 나름대로 일리도 있어 보인다.
최근에 시작해 나름 인기를 끌고 있는 OTT의 한 웹드라마를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이하는 드라마의 대사를 옮겨봤다.
극중 여주인공에게 남자친구가 갑자기 이유없이 그만 헤어지자고 한다.
여주인공에게 남자친구는 "5년이란 기간동안 서로가 익숙해진게 아니라 이제 식은거"라고 얘기한다.
여주인공은 "5년의 연애가 끝나는데 5분도 걸리지 않았다"며 받아들인다.
여주인공은 친구를 만나 하소연한다.
남자친구의 일방적인 통보를 듣고 가만 뒀냐며 친구가 버럭 화를 내자 여주인공은
"그러면 어떡하냐? 헤어지자는데, 상대는 끝났다는데. 그러면 붙잡아? 내가?"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두 친구가 꺼낸 것은 휴대폰 사주 어플.
"됐어. 그런 놈은 모두 잊고 새로 시작하자. 봐바. 내일의 운세"
어플의 운세가 "안 좋은 일에서 벗어나 안정되고 희망찬 내일이 시작됩니다..."라고 나와있자
여주인공은 "회사 잘리고 연애 끝나 빼박 백수 집순이인 마당에..."라며 허탈해하지만
친구는 "좋은거 나왔으니까 좋은 것만 생각해~"라며 이제는 오히려 위로한다.
현실이 그렇다. 좋을 때는 절대 사주나 운세 같은걸 볼 일이 없다. 보여도 그냥 지나치게 된다. 하지만, 갑자기 큰 일이 생기거나 변화의 순간이 직면하면 한번쯤 운세를 보게 된다. 태어난 생년월일시를 다보는 사주로 하루 운세나 운명을 보는 것은 얼마나 맞을까? 요즘들어 점을 보는 사람들이 많다. 만세력을 통해 점을 보는 어플을 이용하는 주변의 지인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떤 어플은 하루에 얼마나 많은 이용자가 이용했는지 통계를 보여주는데 하루에 수십만 명이 넘는다. 급기야 주식 투자를 하는 사람들을 위한 명리까지 등장했다. 과연 어플을 통한 하루 운세는 얼마나 맞을까? 2개의 명리 관련 어플(A,B)을 자주 보는 필자가 겪은 사례들을 하나씩 들어본다.
한 주의 시작일인 월요일을 두개의 사주 명리 어플 A,B는 극단적 결과를 보여줬다.
A는 50점이란다. 눈을 가리고 인내가 필요한 하루라고 총평을 내린다. 한마디로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얘기다. 그날 운세를 한번 보면, 어려움과 고통이 사방에 있는 불길한 하루로 힘들지만 참고 견디라는 것이 방법이었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 보다는 자신을 돌이켜보고 내실을 다지라면서도 자포자기할 경우 정말 끈을 보게된다고 얘기한다. 내 모습을 초라하게 하고 있을 경우 남들이 더욱 소홀히 대접할 수 있다면서 타인의 눈에 비친 내 모습도 신경쓰라고 한다. 금전운은 들어오는 것보다 나가는게 많고, 연애는 상대의 마음과 내 마음이 다르며 사업운은 그냥 조용히 할 것을 권한다. 건강은 불규칙한 생활로 깨진 우려가 많고, 학업운은 조금더 분발하라고 한다.
B는 만점에 가까운 94점을 준다. 따뜻한 남쪽 바람에 겨우내 얼었던 얼음이 녹는 상황으로 오랜 바람이 이뤄진다는 하루라고 한다. 이건 정확히 A와 반대의 하루다. 귀인을 만나게 되고, 지병은 명의를 만날 수 있는 운이라고 했다. 집안에 있는 것보다는 집 밖의 운이 좋으니 나가라고 한다. 단, 운이 좋다고 운만 믿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안되니 좀더 적극적으로 노력하라는 조언도 한다. 금전운은 수입과 지출이 원활하고 기초를 세울 수 있으니 남을 도우라고 한다. 애정운은 무심한 상대방에게 실망할 수 있으니 애정 표현을 아끼지 말라고 한다. 애정운 만큼은 A와 B가 비슷하다. 소망운은 혼자만의 생각으로 결정하지 말고 여러 사람과 함께 하는게 낫다고 한다.
2개의 극단적인 하루 운세를 본 나는 어떤 하루를 보냈을까. 반려견의 치아 치료를 위해 병원을 갔고, 마지막 수술을 마쳤다. 이제 노령에 접어든 우리 반려견은 겉보기에는 멀쩡한 치아 상태로 다른 병원에서는 나이보다 훨씬 어려보인다는 말을 종종 듣곤 했는데, 이번에 그 모든 얘기가 잘못된 진단으로 드러났다. 어금니 몇 개는 겉은 멀쩡했지만 사실상 치주가 녹아내렸고, 대부분의 치아가 치석으로 치주염을 앓고 있었다. 무려 3번에 걸친 수면 마취 수술을 했고 강아지는 폭삭 늙어버렸다. 그 반려견 보호자로 하루를 보냈다.
이번에는 A와 B가 비슷한 평가를 내려준 어느 월요일이다. 사주 명리상으로 해석의 차이가 별로 없는 하루라고 볼 수 있다.
A는 95점을 준다. 이런 날은 완벽한 하루라고 볼 수 있는데, 뿌린 씨를 수확할 때이며 순풍에 돛을 단 듯 흘러가는 하루. 오후에는 심신이 가뿐하고 좋아 학업과 일에서 성과가 나오게 된다는 날이다. 그냥 설레인다. 뭔가를 해야할 것 같다. 고민하던 일이 있다면 해답을 찾을 수도 있고, 뿌린대로 거두는 상황이 계속돼 일과 사람, 학업 모두 기쁨을 맞볼 수 있는 하루 운세다. 다만, 운이 좋은 만큼의 노력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재물운은 누군가가 도움을 청해올 수 있으며, 연애운은 오히려 좋지 않다.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나기가 어렵다고 한다. 사업운은 성장이 흐름이 좋은데, 거점이나 뿌리를 옮기면 그 흐름이 끊어질 수 있다고 한다. 지금 상황을 바꾸지 말라는 것이다. 건강은 바쁜 가운데 자칫 잃을 수도 있으니 규칙적인 식사를, 학업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고 본인 스스로 챙겨야 한다고 충고한다. 정리하면 95점의 운세는 모든 상황이 좋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조심할 것은 조심하고 노력도 게을리 하지 말고, 갑작스러운 변화도 좋지 않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날은 과연 좋은 날인가 나쁜 날인가?
B는 86점을 준 B다. 그동안 답답했던 일들이 풀리고 서서히 동이 트는 만큼 새로운 변화를 맞아 갈길이 바쁜 하루라고 한다. 변화가 핵심이라 그동안 안일하게 살아왔다면 위기가 올 수 있지만 변화를 원했던 사람은 좋은 날이다. 한번에 모든 것을 바꿀 수 없으니 끈기와 인내력을 길러서 자신감을 갖고 추진하라고 조언한다. 금전운은 평탄하고 애정운은 오랫동안 기다렸던 이상형을 만날 수 있으니 신중하게 살펴보라고 한다. 소망운은 혼자 힘으로는 벅차니 주변의 충고와 도움을 받을 것을 제안한다.
두 개의 명리 운세 풀이로부터 86점과 95점을 받은 나름 최고의 날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런 날에는 뭔가를 해야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거리두기는 계속되고 있었고 아쉽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하루가 끝났다. 중요한 것은 2개의 명리 어플이 비슷한 평가를 내렸다는 점이다.
확실히 딱 좋다고 하기에도 나쁘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그럭저럭한 점수의 운세룰 준 두 어플은 그 날의 진단도 비슷할 것 같지만 전혀 다른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이날이 그랬다.
A는 85점의 운세. 행운의 여신이 함께 하는 하루라고 한다. 바라던 바가 이뤄지고 좋은 기운이 뻗어나가는 하루이다. 역시 순풍에 돛 단 듯 흘러가는 하루인 만큼 물 들어올 때 노를 더 저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다만, 경거망동하거나 허영을 부려서는 안된다고 한다. 큰 틀에서는 좋은데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그렇지도 않다. 재물운은 한동안 큰 기대를 하기 어렵고, 연애운은 물질보다는 마음에 닿는 말 한마디가 중요하다고 한다. 사업운은 혼자서보다는 힘을 합쳐야 하고, 건강은 순간의 방심이 큰 위험을 가져올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한다. 학업은 기초가 튼튼하면 흔들리지 않는다. 종합해 볼 때 나쁘지는 않다.
B는 74점을 주며 오히려 실속없는 하루 운세라고 한다. 그 이유는 주변에서 연락도 쇄도하고 바쁘고 분주한 하루를 보내지만 빛좋은 개살구라는 격이다. 오히려 분위기에 들떠 중심을 잃으면 큰 손해를 볼 수 있다고 충고한다. 다른 사람을 챙겨주다가 내 것을 잃을 수도 있고 과분한 계획에 몸만 피곤할 수 있으니 분수에 맞게 규모를 정하고 내실을 기해야 한다고 한다. 술과 이성을 조심하라고도 했다.
결국 이 날은 두 어플이 하루종일 조심할 것을 잔뜩 늘어놨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날 뿐만이 아니라 매일 항상 조심해야할 것들이다. 위에서 충고한대로 살면 사실 실수할 일은 적고 잘 안되기도 드물다.
사주명리 어플은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는 나에게 작전을 세울 것을 명령한다. 정답은 없다. 똑같은 사주의 나에게 다른 운세를 얘기하기도 한다. 안 보면 상관없는데 보고 나면 여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하루종일 뭔가 마음에 걸린다. 운세가 100점인 날은 믿고 과감하게 실행해 옮기라고 하면서도 조심하라고 하는가 하면. 오전에 운이 좋은 날과 오후에 운이 좋은 날이 겹쳐서 나오기도 한다. 언제 움직이란 말인가? 믿을 수는 없지만 무시하기도 어려운게 하루의 운세이자 점 관련 어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주 토요일은 건너띄기가 힘들다. 왜? 로또 추첨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날 만약 100점에 가까운 운세나 재물운이 뜨면 로또 판매점으로 향한다. 필자의 지인은 그랬다. 점 어플에서 좋은 점수가 나오거나 행운의 숫자가 떴는데 로또를 사지 않았다가 만약 그 숫자가 당첨이라도 되면 평생 그 아쉬움을 어떻게 감당할수 있겠냐고...
그렇다. 아직 오지않은 미래는 항상 궁금하고,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인류는 다양한 역학을 발전시켜왔다. 왜 이런 차이가 왔을까? 사실 정답은 없다. 다만, 해석하는 사람이 어디에 방점을 두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것은 미래를 예측하는 모든 학문이 마찬가지다. 주역도 공자의 해석이 다르고 타로는 말할 것도 없다. 원래 좋다는 날은 잘 귀에 안들어온다. 하지만, 안 좋다며 조심하라는 말은 왠지 꺼림직하고 조심하게 된다. 물조심하라는 날은 말할 것도 없고 차조심하라는 날은 밖에 나가는 것조차도 겁이 난다. 조심하면서 살면 사고날 일이 적다. 사고나지 않고 평생 살 수 있다면 운 좋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