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의 미래가 궁금하지 않은 부모가 있을까?
어머니는 큰일이 있을 때마다 어디론가 가셨다. 반나절 집을 비울 때도 있었고, 새벽부터 나가서 밤늦게 들어올 때도 있었다. 그러고는 말씀하셨다.
"다 잘 된다더라. 걱정하지 마라."
어머니가 가셨던 곳은 철학관이었고, 점을 보는 곳이었다. 점집은 철학관이라고 불리는 곳들이 많았다. 대학의 철학과는 점을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건 꽤 시간이 많이 흐른 뒤였다.
어릴 때 고향에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한 명리학자가 있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총수가 자주 찾았고, 직원을 뽑을 때도 그 명리학자의 자문을 받거나 참고했다는 것은 예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 한번 예약하기도 어려운 곳이거니와 자칫 시간이라도 늦으면 다음 사람에게로 차례가 넘어가는 만큼 새벽부터 일찍 나설 때가 많았다. 당시 물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싼 복비를 내야 하니 얼마나 많은 것을 물어봤을까...
어머니의 질문은 대충 예상할 수 있다. 아버지에 대한 질문이 정해진 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했을 것이고, 그다음이 당신의 미래였을 것이다. 자식들이 어떻게 될 것인지도 빠지지 않았다. 학창 시절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어머니는 그렇게 어디론가 무엇을 물어보러 다니셨다. 그러고는 결과를 미리 알려주셨다. 이런 식이다.
어머니는 항상 조심스러우셨다. 밥상에서 하루 동안의 일을 풀어놓으셨다. 아버지에 대한 얘기도 있었고, 형과 나에게 전하는 잔소리 아닌 잔소리도 많았다. 대충 이렇다.
"이번에는 잘하면 된다더라.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준비해라."
"너는 불이 없는데, 거기는 화의 기운이 쌘 곳이라 힘들다고 한다. 마음 비우고 하는 데까지 해보자."
"나이가 들어서 결혼을 해야 잘 된다더라. 혹시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 있어도 너 짝은 아니니 너무 깊게 만나지는 마라."
"물을 조심해야 한다. 여자를 조심해야 한다."
학창 시절에는 시험과 공부, 직업에 대한 얘기가 주를 이뤘지만 나이가 들수록 주제는 다양해졌다. 그때는 몰랐다. 잘 될 때는 모두 다 내가 잘 나서 그런 줄만 알았다. 결국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이게 이렇게 맞을 일이야...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부모님은 그동안 수없이 많이 보셨던 나의 사주 풀이 가운데 한 장을 보여주셨다. 날짜는 고등학교 1학년 당시였다. 대충 몇 개만 풀어보면 이렇다.
3월의 토양 같은 운명은 옥토가 되고 샘도 있으니 마음이 너그럽고 개척정신과 창의력도 있다. 단, 화의 기운인 불이 없어서 노력해도 결과가 약하다.
입에 마이크가 있으니 언변이 출중하고 통솔, 지배력도 강하지만, 입바른 소리를 잘하니 오히려 주류가 되지 못한다.
법정 분야 고시 같은 시험보다는 타고 사회 계열로 진출해야 한다.
사실 부모님은 그 당시나 이후에도 위의 내용을 일절 알려주지 않았다. 사주만 믿고 노력을 하지 않거나 마치 운명 예정론처럼 그 나이가 되면 자연스럽게 될 것이라고 믿은 나머지 다른 길을 갈 기회를 놓쳐버리는 것도 우려한 탓이리라. 하지만, 40대 중반이 되어 비로소 알게 된 위의 내용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던 점은 상당 부분이 내가 살아온 길과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학과 직업, 결혼 등 어떤 것은 그 명리학자의 예견대로 운명의 길을 그렇게 걸어왔고, 내가 그토록 하고자 했던 어떤 것들은 그렇게 발버둥처도 이뤄지지 않았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명리학적으로 나에게 부족한 부분은 항상 결과가 좋지 않은 원인이 되어왔다는 점이다. 부모님이 가지 말라고 하거나, 안된다는 길을 언제나 나는 고집했고 그럴 때마다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 결국은 그게 나의 성향이었다. 인간이 성향대로 살기만 한다면 운명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다행인 것은 나에게 주어지지 않은 길을 가거나,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원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왔고 나이가 들면서부터는 운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조심해왔다는 점이다. 사주명리와 주역, 성명학, 그리고 타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