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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캬라멜 Sep 25. 2023

'운세 50점'인 날의 교통사고는 우연인가? 필연인가?

'운명 결정론'에 딴지를 걸고 싶지만...

난 비과학적인 것들에 대해 딴지를 걸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 AI와 빅데이터, 챗GPT와 자율주행차의 시대에 '오늘의 운세'를 가끔은 본다. 왜 그러냐면...


scene 1. 새 차

아내는 마음에 드는 차가 없다며 고심을 거듭했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다 새 차를 계약했다. 새 차를 받는 시간은 너무도 길었다. 코로나 팬데믹이 전 세계 마스크 판매량을 연일 갱신시켰던 그 시기. 우리의 차는 최소 1년 이상의 기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 기간동안 일단 아주 저렴한 국산 중고차를 타기로 했다. 아는 동생이 중고차 딜러를 하는 까닭에 굴러만 다니면 되는 차를 부탁했다.


"형님, 저희 사무실에서 쓰던 차인데 그냥 슬리퍼 끌고 다닌다고 생각하시고 타세요."


기대를 안 했다. 그런데 이게 뭐야. 중고차는 예상 밖으로 뛰어난 성능과 가성비를 보여줬고, 그 전에 탔던 우리의 어떤 다른 차들보다도 장거리 여행을 많이 하게 됐다. 캬라멜과 함께. 그렇게 1년 반정도 지났을까...


"고객님, 너무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드디어 나왔습니다."


딜러로부터 전화가 왔다. 기다림이 길었던 만큼 새 차는 더욱 조심스러웠다. 큰 차를 모는 걸 싫어했던 아내라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은 SUV를 선택했는데 아내의 만족도도 커보였다. 그렇게 새 차는 우리의 식구가 되어 이곳 저곳으로 우리를 데려다 줬다. 차의 울렁거림을 싫어하는 캬라멜도 나쁘지 않게 생각하는 듯했다. 그런 새 차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 3박 4일의 일정으로...


scene 2. 차 사고

가평을 갔다.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며, 언제나 한결 같은 웃음으로 반겨주는 오누이가 계시고, 수십 년은 된 LP 음악을 마음껏 들을 수 있고, 삼겹살을 연기 풀풀 피우며 밖에서 구울 수 있고, 밤이면 장작불을 피워 불멍을 때릴 수 있으며, 쏟아질 듯한 별을 밤새도록 볼 수 있으며, 별자리 어플을 깔고 이름만 들어봤던 별자리가 1년 12달 달라지는 곳... 가평은 우리에게 그런 곳이다.


여행에는 우리 뿐만 아니라 아내와 친한 사업가 누님, 누님 회사 직원이자 타로 마스터인 동생이 합류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읍내 청년 정육점에서 바비큐용 고기를 샀고, 장작과 숯을 계획했던 것보다 좀더 샀다. 남더라도 모자라면 안되니까. 그렇게 사흘을 열흘처럼 보냈다. 아침부터 밤까지.


집으로 오는 날은 항상 일찍 일어나는 편이다. 우물쭈물 할수록 도로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운전대를 잡고 출발했다. 2분이 지났을까...


"앗. 방에 옷 놔두고 왔다."


아내가 옷걸이에 있었던 옷을 챙기지 않았다고 했다. 출발해서 얼마 오지 않았으니까 돌아가는게 나쁘지 않았다. 다른건 다 놔두고 와도 산지 얼마되지 않은 원피스는 가져오는게 나을 것 같다고 했다. 가평 누님과 두번째 작별 인사를 하고 이번엔 제대로 국도를 탔다. 그렇게 20여 분을 달렸을까. 라디오에서는 김신영의 정오의 희망곡이 나오고 있었다. 길게 들어선 좌회전 차량들. 서울로 가는 차들이 많았다. 서울로 가는 분깃점이었다. 깜박이를 넣고 좌회전을 한뒤 몇초 뒤...


천천히 좌회전 하는 순간 앞에 있던 대형 벤츠 세단이 거의 급정거를 했다. 김신영의 목소리에 제대로 집중했다면 나도 브레이크 밟는 속도가 늦었을 것이다. 잠시 뒤. 쿵. 서있는 우리 차량 뒤로 누군가가 제대로 받았다. 백미러를 확인하니 대형 SUV 차량이었다. 운전대를 잡은 나도 놀랐지만, 휴대전화를 보고 있던 아내는 제대로 충격을 받았다.


"아... 내 눈"


아내는 휴대전화로 눈을 쳤다. 걱정이 앞섰다. 뒷좌석의 캬라멜은 밑으로 떨어졌다. 블랙박스를 확인하니 뒤에서 따라오던 차량은 아예 브레이크를 밟지 않은 듯했다. 창문을 내리니 운전자 분이 사과부터 하며 보험사를 불러 조치하자고 했다. 자기도 여행을 와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집에 잘 가려고 했는데 이런 사고가 났다고 했다. 발이 미끌어졌다며 100% 자기 과실이라고 했다. 보험사를 부르고 그렇게 현장은 마무리됐다. 보험사가 오기까지 30분 넘게 걸렸지만 수습은 3분도 걸리지 않았다. 몸을 다친 것도 걱정됐지만, 내려서 확인한 우리 차량의 상태는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뒷 트렁크와 범퍼가 파손됐고, 번호판은 제대로 구겨졌다.


'아... 새 차인데 조심 좀 하시지...'


얼마전 차를 인도받았을 때 북어와 막거리를 사서 주차장에서 절을 했던 순간이 스쳐 지나갔다. 기도의 진심이 약해서였을까... 별의별 생각이 다들었다.


scene 3. 그날의 운세는 50점

사고 수습은 오래 걸렸다. 새 차는 다시 몇 달의 수리 기간이 필요할 거라고 했다. 목의 통증이 심했던 난 통증의학과를 다녔고, 눈 상태가 안좋았던 아내는 안과를 시작으로 통증의학과, 한방병원에서 목과 허리 치료를 받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 언제나 그렇듯이 운세 어플을 확인했다. 두 개의 어플 가운데 평소에 자주 보던 한 어플에서 확인한 사고 당일의 운세는 50점이었다.



'눈을 가리고 인내가 필요한 하루입니다. 오늘은 어려움과 고통이 사방에 있는 불길한 하루입니다. 힘든 마음 충분히 이해하나 참고 기다리는 것이 방법이니 안타깝습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새로운 것을 찾는 것보다는 자신을 뒤돌아보거나 내실을 다지는 것이 현명할 것입니다. 일이 안 풀린다고 하여 자포자기 했다가는 그때야말로 정말 끝을 보려는 것입니다.'


보통 큰 일이 있기 전에 운세를 잘 확인한다. 상품 판매와 매출이 중요한 아내는 각종 어플과 책을 통해 특정한 시기와 날을 신중하게 판단한다. 좋다고 되어 있는 날은 신경쓸 필요가 없지만 그렇지 않은 날은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기 위해서인 것 같았다.


여행이 즐거웠기 때문이이었을까. 그동안 자주 봤던 운세 어플도 요즘은 멀리하고 있었다. 일도 아니고 하물며 여행인데. 지나고 나니 또 그랬다. 뭔가 안되려고 하면 꼭 거기에 맞춰 모든 것이 이뤄진다고... 과거의 일을 가지고 가정을 할 필요가 없지만 지금 생각하니 또 그렇다.


그날 조금만 일찍 출발했더라면...

그날 조금만 늦게 출발했더라면...

그날 옷을 찾기 위해 차를 돌리지 않았더라면...

그날 내 앞의 차량이 갑자기 서지 않았더라면...

그날 내 뒤의 차량이 조금만 조심했더라면...

그날이 운세 90점인 날 이었더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행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만약, 더 큰 사고가 다른 곳에서 났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뒤 차량이 승용차가 아니었던터라 트렁크 파손이 컸지만, 만약 더 큰 트럭이나 트레일러 화물차였을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운세 50점인 날은 50점 밖에 되지 않은 날이 아니라 50점이라도 됐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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