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어진 자들과 살아남은 자들
해마다 연말이 되면 다음 해를 예측하는 다양한 서적들이 출간된다. 유행과 트렌드, 대예측을 내세운 책들의 공통점은 제목에 ‘OOOO년’처럼 연도가 포함되어 있다. 1년에 책 한 권 읽지 않던 사람들도 왠지 사람들과 말도 좀 통하고, 아는 척이라도 좀 하고, TV를 봐도 세상 돌아가는 얘기가 낯설지 않고, 나름대로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책을 사게 된다.
해마다 의무감 아닌 강박에 가까운 구매를 수없이 많이 하면서 책장은 다양한 해의 각축장이 됐다. 내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내다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자극한 일종의 예언서들인 셈이다. 시대의 흐름을 내다보고 그 이면에 흐르고 있는 본질을 파악해 나름의 진단을 내린다는 점에서 독자들에게 많은 인사이트(영감)를 주기도 한다.
어떤 책들은 사람들의 행태 분석을 통해 ‘지금 당신의 이웃들은 이런 생각을 합니다.’ ‘지금 사람들은 이런 것을 먹습니다.’ ‘지금 사람들을 이런 것을 사고 있고, 앞으로 살 예정입니다.’ 진단하고 예측한다. 물건을 내다 팔고 마케팅을 본업으로 삼고 있는 개인이나 조직은 소비자들의 성향을 외면할 수 없기에 이른바 트렌드 리더들의 예언서들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읽고 배운다.
주변에 1년에 책 몇 권 읽지 않던 사람들도 그렇게 연말이 되면 다양한 예언서들을 구입하는 걸 보게 된다. 꽤 꼼꼼히 읽기도 하는 것 같다. 직업 탓에 꽤 오래전부터 각 분야의 예언서들을 미리 사보고 저자들의 연구에 공감하고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그 같은 반복적인 소비 행위의 전환점이 된 게 2018년이 지나서였다. 2018년을 예측한 수많은 책들 가운데 개인적인 생각으로 대표적인 실패이자 오류는 인구와 부동산과 관련된 책들이다. 2018년에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을까? 정확히 말하면 2018년이 되기 몇 년 전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책들 가운데 인구 감소와 관련된 글들이 많았다. 전 세계적인 인구 감소 현상으로 사회 각 분야에 많은 변화가 급격히 도래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낮은 출산율, 급속한 고령사회에 접어든 일본과 그 속도가 더 빠른 우리나라는 더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있었다.
문제는 그 시기와 속도였다. 전문가들마다 의견이 다소 달랐다. 항상 눈에 띄는 것은 과격한 헤드라인이다. 인구감소와 함께 부동산 폭락을 예측한 책들도 있었다. 급격한 속도론은 솔깃하기 마련이다. 인구구조상 베이비부머가 은퇴하고, 은퇴 후 생활비 마련을 위해 고가의 부동산을 처분하면 시장에 매물이 많아질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있었다. 미국의 금리 인상과 맞물려 부채를 안고 있는 집들이 시장에 쏟아질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다.
부채 증가, 자산 폭락에 대비해 현금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는 예언 아닌 예언을 믿고 사람들은 실천하기 시작했다. 나를 포함해 내 주변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결과는 영원히 회복할 수 없는 기회비용으로 끝났다. 기회를 준비하라는 예측에 준비를 했지만, 그 결과는 정확히 2018년을 기점으로 정반대로 나타났다. 예측은 빗나갔고 기회는 오지 않았다.
예언이 먼저일까? 지나고 보니 그렇게 보이는 것일까? 아니면 예언을 듣거나 본 사람들이 그렇게 따라가는 것일까? 미래를 예측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언젠가는 그렇게 될 일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시기에 그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쓸모없다. 하물며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단언성 예언은 더욱 조심스러워야 한다.
종종 지나고 나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책이나 글들도 많다. 사람들의 행동은 그렇게 과학적이고 인과적으로 설명하고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다면 세상에 부자 되기는 너무도 쉬워진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불확실성의 시대와 관련해 나름 설득력 있는 글을 쓴 나심 탈레브는 “우연으로 일어난 일에 바보가 되지 마라.”라고 말하기도 했다. 운은 말 그대로 행운일 뿐 실력이 아니라는 얘기다.
몇 년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언하는 사람이나 책이 있다면 이제는 의심부터 하게 된다. 어떤 근거에서 그렇게 예측하고, 어떤 생각의 틀과 방법이 동원됐는지 자세히 살펴본다. 가장 현혹시키기 쉽고 믿기 쉽지만, 오히려 제대로 들어맞기도 힘든 것은 그럴싸한 통계가 곁들여진 주장이다. 통계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타인을 믿게 하는 주요한 수단이지만 동시에 오류가 있기도 매우 쉽다. 통계는 시작점과 끝점을 어떻게 잡는지, 즉 x축과 y축의 좌표값을 어떻게 잡는지에 따라 얼마든지 추세를 왜곡할 수 있다.
10년 전에 책장 3개 분량의 책을 정리해(공공 도서관에 연락하면 비용을 지불하지 않을뿐더러 기부를 했다는 뿌듯함도 느낄 수 있다) 정말 두고두고 읽을 책만을 남겼는데, 다시 그때보다 많은 책들이 책장을 점령하고 있다. 휴대하기 편하고, 다양한 디바이스로 읽을 수 있는 e북으로 책을 많이 구입하기도 하지만, 손으로 책장을 넘겨가며 줄을 긋고 싶은 책들은 아직도 넘친다.
하지만, 그럴듯한 이론과 얘기로 포장된 예언서들 가운데 책장에서 오래 살아남지 못하는 책들이 많아진다. 설령 1~2년을 버틴다고 해도 5년을 넘기지는 못하는 듯하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 세상이 빨리 변한다고 볼 수 있다. 그 결정타는 코로나였다. 이제는 뉴 노멀 예언서가 쏟아지고 있다. 당장 오늘 들어맞고 내일 틀릴 솔깃한 예언서보다는 내 삶의 방향에 지침서가 될 만한 묵은지 같은 책들을 소유하고 싶다.
세상의 모든 예언서들이 다 틀린 것은 아니다. 짧은 주기로 시시각각 변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분석하고, 그들의 행동에서 공통된 분모를 찾아야 한다면 꼭 필요한 영양제 같은 글이나 책들이 오늘도 서점에 쏟아지고 있다. 강호의 전문가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혜안을 가지고 무릎을 치게 하는 옥석을 가려내지 못한 나의 능력을 탓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