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이 '간판'이라면 북은 '메뉴판'... 그 다음은?
책을 내보고 알았다. 책을 낼 때 글 쓰는 게 반이라면, 나머지 과정이 반이다. 책은 글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출판사 편집장과의 첫 의견 교환은 2024년 7월에 우연히 이뤄졌다.
책을 내고 싶다는 나의 제안과 책으로 내면 좋을 거 같다는 편집장의 생각이 맞아떨어진 결과다.
최초, 나의 글은 출판을 염두에 두고 쓴 게 아니었다. 내용도 제목도. 말하자면 맞춤형 책으로 쓰지 않은 까닭에 책으로 출판되기 위해서는 후반 작업이 다시 필요한 상황이었다. 책에 맞게 내용을 다듬기도 해야하지만, 책을 읽을 타깃 독자들에 대한 설정이 필요했고, '영점 조준'이 필요했다.
에세이 쓰기가 작곡이라면, 책 쓰기는 편곡
모든 노래가 그렇다. 곡을 쓰시는 분이 그랬다. 작곡보다 중요한 건 그 가수에 맞는 편곡이라고... '따단 따라~' 하나의 주제음에서 영감을 받아 전체 작곡이 탄생하고, 거기에 맞는 가사가 쓰여지고, 그걸 불러줄 가수를 찾는다. 가수를 염두에 두고 작곡과 작사를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반대의 경우가 훨씬 많다. 노래가 그렇듯이 글도 그랬다. 평생 글 쓰는 걸 좋아했던 난 소모적으로 사라지는 글을 한 곳에 모아놓고 쓰기 시작했다. 생각이 날 때마다 쓰기 시작한 글이 언제부터 하나의 주제로 모아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브런치를 발견했다. 기자로서 20년이 넘게 글을 썼지만 기사와 에세이는 전혀 다른 음식이었다. 보도를 위한 기사체로 머리가 굳어지기 전에 에세이를 써보자며 써온 글이 주제가 비슷했던 게다. 그런 의미에서 브런치는 좋은 플랫폼이다.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매일 들르는 곳이고 글을 쓸 수 있는 도구가 편하게 준비되어 있다. 무엇보다 공급자와 수요자가 많다는 것과 그들의 수준이 운영진에 의해서 한번 걸러져 평균 이상으로 높다는 점이다.
브런치는 어떤 음식을 만들지 모르는 요리사에게 식당 메뉴판을 만들어준 곳이다.
브런치 매거진 : 식당의 간판이다. 아무 음식이나 만들지 말고, 어떤 음식을 만들 건지 고민하게 만든다. 브런치는 식당에 간판이 없이 음식을 만드려는 예비 작가들에게 간판부터 만들게 한다. 생각해보면 정말 중요한 얘기다. 브런치 글이 일기와 다른 점은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글을 쓰도록 하게 한다는 거다. 말하자면, 한식, 일식, 중식... 난 뭘 잘 만들 수 있을까?
브런치 북 : 매거진이 김밥천국과 같은 메뉴판이라면 브런치 북은 요리 전문점이다. 대표 음식만을 골라 제목을 내세운 음식점이기 때문이다. 브런치 북은 예비 출간 후보들인 셈이다. 브런치 북에서 가장 공들여 써왔던 글을 잘 쓰고, 말을 잘 하기 위한 북을 최종 출판 후보로 선정했다. 하지만, 막상 책으로 내려니 다시 생각할 것들이 많았다.
돈을 들여 책을 사서 볼 미래의 독자들을 위해 출처와 참고 도서, 인터넷 주소 등을 다시 확인하고 빠뜨린 건 없는 지 기나긴 확인과 수정이 계속됐다. 맞춤법과 이상한 표현을 교정하고 교열하는 작업은 끝이 없었다. 종이로 출력해서 일일이 대조 작업을 했지만, 오탈자는 계속 나왔다.
그렇게 마무리 작업을 하고 전자책이 나온 건 12월, 종이책이 나온 건 2025년 1월이다.
디자인 역시 마찬가지다. 책의 콘셉트에 맞춰 수십 번의 디자인 수정이 이뤄졌다.
처음엔 콘셉트 밖에 없었다.
디자인 전문가들의 시안을 받아, 출판사 편집장과 수십여 번의 수정을 거쳐 탄생한 책의 디자인이다.
핵심 메시지만 보여주며, 모든 걸 덜어내고, 서점 어디에 있어도 눈에 뛸 수 있는 책이면 좋겠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조언이었다. 하지만, 최종 완성된 책은 이 책이 아니었다.
디자인과 콘셉트에 대한 영감은 일본의 한 서점에서 나왔고, 최종 완성은 뉴욕에 있는 디자인과 영상 전문가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다시 브레인스토밍이 다시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