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1일과 1월 1일은 하루 차이일 뿐이다. 그냥 다음 날이지만 지난해와 올해로 구분된다. 우리는 그렇게 하루 차이를 일년 차이로 선을 그어서 살아왔다. 달력 때문에 아무런 차이가 없지만 열심히 달려온 한 해를 마무리하고, 내일부턴 새로운 시작을 해야할 것 같은 강박이 생겼다. 비록 지난 1년 열심히 살지 않았지만 마지막 날인 12월 31일만큼은 제대로 보낸다면 후회가 덜 남을 거 같은 그런 기분 때문이다.
서점은 엄마의 품과 같은 곳이다. 12월 31일 오후 여의도의 대형 서점엔 생각보다 많은, 정확히는 어떤 분들이 많다고 규칙성을 찾기에는 어려운 다양한 손님들이 있었다. 남녀노소가 딱 들어맞는. 벚꽃 피는 5월이면 시집이나 에세이라도 찾았겠지만, 한여름 무더위엔 평소에 도전하기 힘들었던 소설이나 베스트셀러 코너를 찾았겠지만, 가을이면 나는 못했지만 남들을 하는 성공 에세이라도 찾아서 다시 한번 심기일전을 계획했겠지만, 12월 31일 날 이끌었던 건 그 어느 것도 아니었다.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 그리고 진열대에 쌓여있는 책들. 그날 사람들의 발길과 손길이 가는 곳은 어디일까? 그게 궁금했다.
올해는 여느 해와 다르기 때문이다. 올해는 노벨문학상 '한강'을 배출한 해이기 때문이다. 한강에 열광했던 우리는 연말, 무슨 책을 보고 있을까?
# 트렌드
난 나의 내일이 어떻게 될 지 모르겠는데,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내일을 예측하는 책들이 많다. 그리고 그런 책들을 우리는 많이 찾는다. 트렌드와 유행은 다르다. 트렌드는 최소한 한 철 유행이 아니라 한 해는 버텨줘야 한다. 읽을 때는 세상 돌아가는 분위기를 잘 알 수 있게된 거 같아서 위안이 되는 책들이다.
하지만, 2025년 봄, 그리고 여름, 다음 가을, 마지막 2025년 겨울까지 얼마나 많은 책들이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을 지에 대해선 의문이다. 트렌드에 대한 책이 잘못됐다기 보다는 우리 살아가는 세상이 그만큼 '예측불허'로 빨리 변하고 있는 탓일 게다. 2024년 12월 31일 대한민국에서 트렌드 예측은 사실 위험하다.
적어도 우리는 열심히 산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는 사람들은 '자기계발'을 찾고, 오늘 잘했지만 더 잘하고 싶은 사람들도 '자기계발'을 찾는다. 베스트셀러와 신간의 자리를 놓치지 않는 '자기계발' 분야는 매너리즘에 특효약이다. 연말에도 어김없다. 그렇게 살아온 저자들을 존경하고, 그 저자들의 책을 읽고 인사이트를 얻으려고 하는 독자들 역시 존경한다.
그간 사왔던 수백여 권의 자기계발서가 쓸모없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2024년 다른 나라에선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들이 우리에겐 너무도 많았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서점을 찾은 사람들은 그런 뉴스에 지쳤고, 힘들었고, 그 속에서 치유를 원하거나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뭔가라도 해주기 위한 답을 찾기 위한 목적도 없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힘든 건 역시 먹고 사는 문제인 듯하다. 경제와 돈. 요즘 유튜브가 그렇고 주변의 관심사가 그렇고, 뉴스가 온통 그렇다. 어디를 가나 부동산, 주식, 코인 얘기가 끊이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되는 1월 20일 이후엔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뉴노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비트코인이 수십억을 간다는 책도 있고, 성공한 프랜차이즈 대표의 성공 법칙에 대한 책도 있다.
S&P, 나스닥, ETF, 비트코인... 우리 주변엔 벼락부자가 살고 있을까?
의식주는 틀렸다. 입고 먹는 거에 비해 '집'이 너무 어려워 진 탓이다.
하지만, 너무 성공한 '그들'의 얘기가 아직 시작조차 하지 못한 '이들'을 포기하게 만들지는 않았으면 한다. 각자에게 주어진 시기와 기회,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뭔가를 이룬 '그들'의 얘기에 '독자'들이 주눅부터 든다면 책을 읽지 않은 것만도 못하다.
그렇게 1시간여를 돌아 한 권을 책을 집어 들었다. 트렌드도 아닌, 주식도 아닌, 부동산도 아닌 오래된 '동양 철학'에 관한 책이다. 난 생각이 흔들릴 때마다 혼란스러울 때마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 이웃과 동료들의 얘기보다는 먼저 살아간 사람들의 얘기를 찾곤 했다.그래도 오랜시간 인류의 삶과 함께 살아남은 얘기들. 그 얘기들을 지금 이순간에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이 지금 실정에 맞게 해석한 책들.
인터넷으로 주문을 한다면 10% 할인이라도 받았겠지만 계산대에서 제값을 주고 계산한 뒤 책을 들고 카페로 향했다. 그리고 책을 펼쳤다. 10여 장을 읽었을까. 잘 샀다. 다시 내일을 살아낼 테다. 지금까지 온 것에 감사하며.